훈민정음 상주본 공개·보존 방안, 지역사회 공론화 추진

김범진 기자 2026. 10. 7. 16:5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배익기씨 “세종에 올린 어람본”…학계 검증은 과제
상맥회 접촉 이어가고 상주포럼은 공개토론·전문가 의견 수렴 추진
▲ 한글 해례본 '상주본' 화재 전 모습(화재 전). 배익기씨 제공

오는 9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가운데 지난 2008년 7월30일 세상에 처음 공개된 지 18년 2개월이 지난 상주본은 여전히 일반에 공개되지 못한 채 문화유산계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 한글 해례본 '상주본' 화재 후 모습(2015년 3월 화재). 인터넷 캡쳐

훈민정음 해례본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반포된 훈민정음과 함께 출간된 해설서로 한글 창제 원리와 과정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현재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이 구입해 현재 대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간송본(국보 제70호)과 지난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상주본' 두 점이 전부다.

▲ 배익기씨 사무실을 찾은 9월 30일 입구가 막힌 채 페문부재 상태로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김범진 기자

배익기씨에 의해 지난 2008년 세상에 알려진 상주본은 고서적 판매상 조모(2012년 사망)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복잡한 법적공방이 진행됐다.

민사와 형사로 진행된 두 가지 재판 중 민사에서는 조모씨가 지난 2011년 최종 승소해 상주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았고, 이후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에 현물 없이 기부했다.

▲ 한글 해례본 간송본(간송미술관 전시). 인터넷 캡쳐

이와 별개로 형사 재판은 배씨가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011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014년 대법원에서 그대로 무죄 확정됐다.

이에 배씨가 지난 2017년 문화재청을 상대로 소유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019년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 판결에서 상주본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최종 확정됐다.

상주본은 일부 낙장과 지난 2015년 3월 배씨의 주택 화재 과정에서 부분 훼손이 있지만 현존하는 간송본과 비교 연구가 가능한 해례본 실물자료로 평가받는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앞두고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를 만나 상주본의 가치와 공개, 그리고 지난 18년의 소회를 들어봤다.

▲ 9월 30일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배익기(63) 씨. 김범진 기자

- 상주본을 처음 확인한 뒤 왜 공개를 결심했나.

△처음 상주본을 확인했을 때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국보 지정을 받기 위해 문화재 당국에 신고했다. 하지만 중요한 사안임에도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결국 지난 2008년 7월30일 언론을 통해 공개하게 됐다.

처음부터 개인적으로 보관하기보다 국민이 알아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했다.

- 국가에 상주본을 반환할 생각은 있나.

△ '반환'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국가 소유로 귀속시키는 문제라면 상황에 따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18년 동안 겪은 일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이에 상응하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주본이 결국 국민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동시에 절차와 과정 역시 중요하다.

앞서 지난 2023년 경북일보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경북일보 2023년 11월24일 2면)에서 배씨는 "억울하게 징역살이 한 것에 대해 국가(당시 문화재청)가 유감을 표시하고, 지난 어려움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있다면 세상에 내놓을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지난달 30일 배익기 씨 자신의 집 입구에서 모습. 현판에 훈민정음부(訓民正音府)라고 쓰여져 있다. 김범진 기자.

-상주본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해 간송미술관을 찾아 간송본을 직접 확인했다. 비교해보니 상주본과 간송본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상주본은 신하들이 해례본을 작성해 세종대왕에게 올린 어람본(御覽本)으로 볼 수 있다. 반면 간송본은 상주본의 부본이라고 생각한다.

상주본에 추가로 기재된 필체 역시 세종대왕이 검토하거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긴 친필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같은 견해는 배씨 개인의 주장으로 학계의 공식적인 정설이나 검증된 결론은 남은 숙제로 해석됐다.

-국민들은 해례본 상주본의 훼손 여부를 걱정하고 있다. 현재 소유하고 있나.

△상주본의 상태보다 내 삶이 더 만신창이가 됐다. 18년 동안 각종 재판과 논란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상주본을 발견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분쟁의 당사자로만 인식되는 현실 속에서 내가 더 쇠락했다.

국가유산청의 초기 대응 과정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졌다고 느낀다.

인터뷰 과정에서 배씨는 현재 상주본의 보관 여부와 소재에 대한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언급을 피했다.

▲ 배익기씨가 생각을 정리할 때 찾는다는 휴식 장소에서 지난달 30일 모습. 김범진 기자

-상주시민과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상주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음에도 정작 상주 지역사회의 관심과 역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상주본으로 불리지만 그동안 상주의 정치·사회 지도자들로부터 의미 있는 관심이나 의견을 전달받은 적이 거의 없다.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상주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지역 차원의 논의나 움직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글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재판과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오히려 한글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전 국민과 이재명 대통령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마음을 되살리길 바란다.

백성들이 글을 몰라 뜻을 펼치지 못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한글을 만들었던 마음을 오늘날에도 되새겨 계승했으면 좋겠다.

상주본은 공개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확보와 검증이 필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앞둔 지금, 상주본은 단순한 소유권 논란에 더해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연구하며 국민과 공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한편 상주 지역단체인 상맥회(향토문화보존위원회)는 배씨를 꾸준히 접촉하며 상주본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 낼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왔다.

경북일보 상주포럼도 지난 9월8일 지면평가회의(경북일보 9월16일 13면)을 열고, 상주본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위원들은 "상주본은 상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자산"이라며 "오랜 소유권 분쟁과 법적 공방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보존과 연구, 공개 활용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경북일보 상주포럼은 앞으로 한글 해례본 상주본 문제를 지역사회 공론화 의제로 삼고 공개토론회 개최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상주본의 가치와 활용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