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주 더봄] 윤동주의 '가슴1'
답답한 가슴보다 더 깊은 한숨
시인의 고통에서 아비와 딸의 마음을 읽다
가슴 1
윤동주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
두드려 보오
그래 봐도
후-

'어여쁜 고명딸 나혜, 태어나서부터 보이질 않네. 아비는 몹시 가슴이 아파, 딸을 볼 때마다 두 눈에 눈물이 맺히네. 딸이 어느덧 자라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아비의 걱정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끊이질 않네. 그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북처럼 주먹으로 두드려 보네. 이런 아비의 깊은 한숨을, 길고 오랜 한숨을, 답답한 가슴조차 따라올 수 없네. 그 슬픔 어떤 것보다 가혹하네.'
하지만 이런 아비의 아픈 마음을 헤아린 나혜의 깊은 속마음을, 누군가 대신해 이렇게 말해 주면 좋으련만.
'아버지, 저는 괜찮아요. 아이들과 선생님이 많이 살펴줘요. 잘 이해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자세히 알려주고, 아이들이 다가와 친절하게 이것저것 도와준답니다. 또한 점자책도 있어 친구들과 똑같이 공부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누구보다 잘 들려서 아이들의 속삭임, 누군가의 숨소리나 움직임을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답니다. 저는 좋아요. 그러니 아버지 걱정일랑 그만둬요. 아버지가 저 때문에 가슴 치며 한숨 쉰다는 생각만으로도 제 가슴은 큰 북을 마구 두드리는 것처럼 아픕니다. 제 한숨도 깊어집니다. 아버지, 이제 그 깊은 한숨일랑 멈춰요. 아버지!'
시인 윤동주, 대한민국에서 이 시인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시에 눈을 떠 오직 시만을, 문학만을 품었던 청년, 윤동주! 그는 우리에게 늘 청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가지런히 갖춰 입은 교복과 모자를 단정히 눌러 쓴 윤동주, 그는 우리에게 늘 꿈 많은 고등학교 시절의 멋진 청년으로 기억된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에 윤동주는 청년에서 멈춘 걸까. 그것은 아마 그가 계속 꿈꾸고 있어서일 게다. 늘 꿈을 좇고, 꿈을 이루려 노력했기에 그는 죽어서도 젊은 것이 아닐까.
일제강점기 온갖 억압에 그는 나라를 지키려는 지식인으로 괴로워했다. 억누를 수 없는 뜨거운 조국애를 끌어안고 그는 얼마나 가슴이 탔을까. 얼마나 심한 갈증을 느꼈을까. 그 답답한 마음을 품은 시인 윤동주의 가슴은 고통에 짓눌려 깊은 한숨을 내쉰다. 실컷 두드려 봐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애가 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답답함에 두드려 보는 가슴보다 더 힘든 것은, 그 답답함까지 배가된 깊은 한숨이다. 한숨이 더 우위인 것이다. 가슴과 한숨이 동일 선상에 놓인 것이 아니라 비교 우위에 놓여, 답답한 가슴까지 끌어안은 한숨이 더 힘든 것이다. 이중의 고통을 겪는 셈이다. 나는 그의 가슴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한편, 나혜와 아비의 깊은 한숨을 모두 내려다보는, 더욱 절망적인 가슴이 있다. 그것은 먼저 하늘로 간 어미의 긴 고통이다. 마치 시인 윤동주가 그 시대를 버텨야 했던 아픔처럼, 여기 나혜 어미의 짙은 한숨이 있다. 아비와 나혜의 안타까운 생활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려다보는 어미의 답답함에 긴 한숨이, 윤동주의 한숨과 똑같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아비의 안타까움에 한숨 짓고, 딸아이의 조막만 한 가슴에도 한숨 짓는, 이 모두를 감내해야 하는 하늘로 간 어미의 한숨이, 윤동주의 한숨으로 쓴 시 <가슴>처럼 똑같이 펄떡대고 있는 것이리라.
윤동주 시인의 시는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내비치지는 않는다. 그의 시는 다 성장하지 못한 미성년의 수줍은 고백을 품고 있다. 부끄러움이 있다. 감추고픈 그러나 끝내 감추고는 견디지 못하는 절절한 애국심이 있다. 이런 간절함을 극도로 끌어올린 시, 그의 시가 곧 국가라고 한다면, 내가 좀 흥분한 탓인가. 그런 건가. 나 또한 이대로 글을 맺기 답답하여, 이 시에 못지않는 그의 시 한 편을 더 읊는 것으로 한숨을 멈출까 한다.
가슴 3
불 꺼진 화독을
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
재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화독=불을 피워 난방하거나 불씨를 담아 두는 데 쓰던 질그릇.
zoo-mouse@hanmail.net

양선주 시인·작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문단에 데뷔해 시집 <사팔뜨기>를 출간했다. 건강 문제로 인한 긴 공백기 끝에 2025년 시집 <열렬한 심혈관>, 산문집 <시는 내 곁으로 와 눕고>(공저)를 펴내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소설미학>에서 동화, <월간문학>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역량을 펼치고 있으며, 동화책과 동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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