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그냥 중성미자가 궁금했다'…집념과 호기심이 노벨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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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그렇게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나 보다.
프랜시스 할젠 교수님이 아이스큐브 실험의 제안과 고에너지 우주 중성미자 발견에 대한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올해, 다시 중성미자로 우주를 바라본 연구가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번에는 남극의 얼음 속에 거대한 중성미자 관측소 아이스큐브(IceCube)를 건설하고,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랜시스 할젠 교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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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그렇게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나 보다. 내일 있을 “우주의 이해” 교양수업에서 태양이 어떻게 타는지를 설명하려 여러 준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언론의 전화가 왔다. 아차. 오늘 오후 노벨 물리학상 발표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느낌이 왔다. 올 것이 왔구나.
프랜시스 할젠 교수님이 아이스큐브 실험의 제안과 고에너지 우주 중성미자 발견에 대한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어안이 벙벙하다. 언론에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전화가 계속 울린다. SNS와 단톡방에도 축하 메시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상을 받은 듯하다. 내일 수업은 중성미자 이야기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내가 대학 4학년이던 2002년 일본의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님과 미국의 레이 데이비스 교수님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초신성 SN 1987A에서 날아온 중성미자와 태양 중성미자를 검출해 중성미자 천문학의 문을 연 공로였다. 나는 그때 ‘중성미자’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생소한 이름의 이 입자가 훗날 내 연구 인생의 한가운데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올해, 다시 중성미자로 우주를 바라본 연구가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번에는 남극의 얼음 속에 거대한 중성미자 관측소 아이스큐브(IceCube)를 건설하고,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랜시스 할젠 교수님이다.
중성미자는 우주가 보내는 ‘내향형 전령’ 같은 친구다. 자신이 태어난 먼 우주의 소식을 품고 지구까지 오지만, 물질과 좀처럼 상호작용하지 않아 자신의 존재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매 순간 수많은 중성미자가 우리 몸과 지구를 그대로 통과하지만 우리는 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바로 그 성질이 역설적으로 중성미자를 우주를 관측하는 강력한 전령으로 만든다. 빛은 먼 우주를 여행하면서 물질에 흡수되거나 산란될 수 있고, 전하를 가진 우주선은 자기장에 의해 방향이 휘어진다. 반면 전하를 띠지 않은 이 작은 입자는 먼 우주에서 출발해 그곳의 정보를 온전히 품은 채 지구까지 날아올 수 있다.
이 내향적인 전령에게서 한마디를 듣기 위해 아이스큐브가 택한 방법은 검출기를 엄청나게 크게 만드는 것이었다. 크게 만들든지 집에 가든지. 우리 분야에서 진담처럼 자주 하는 말이다.

남극점의 약 1.5~2.5 km 깊이 얼음 속에 수천 개의 광센서를 설치해 1세제곱킬로미터의 얼음 덩어리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입자검출기로 사용한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 km인 정육면체를 상상하면 된다. 높이만 해도 555m인 롯데타워의 거의 두 배다. 중성미자가 아주 드물게 얼음 속 물질과 충돌할 때 생성되는 입자들이 내는 희미한 푸른빛을 측정해 중성미자의 에너지와 날아온 방향을 알아낸다.
할젠 교수님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분이시다. 그는 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의 지도교수, 말하자면 나의 할아버지 지도교수님이시다. 나는 2006년 대학원생으로 아이스큐브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대기에서 만들어지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내 연구 결과를 아이스큐브 협력단 전체회의에서 발표했는데, 발표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할아버지 교수님'께서 내게 다가와 말없이 내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주셨다. 평소 교수님께 말을 붙이지 못했는데, 그 토닥임의 기억이 이후 연구를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아이스큐브는 2013년 마침내 우주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존재를 보고했다. 인류는 오랫동안 주로 빛을 이용해 우주를 관측해 왔다. 가시광선에서 시작해 전파, 적외선, X선과 감마선으로 관측 영역을 넓혀 왔고, 최근에는 중력파라는 새로운 관측 수단도 얻었다. 여기에 중성미자가 더해지면서 서로 다른 전령(messenger)을 통해 같은 우주를 바라보는‘다중신호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특히 고에너지 중성미자는 우주의 거대한 입자가속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중요한 단서다. 블랙홀 주변이나 활동은하핵과 같은 맹렬한 천체에서 어떻게 입자들이 인간이 만든 가속기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엄청난 에너지까지 가속되는지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중성미자는 그 오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독특한 소식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작년 스웨덴에서 할젠 교수님을 만났을 때에는 중앙대에서 구입한 GPU를 미국 위스콘신의 아이스큐브 데이터센터에 어떻게 설치하고 연구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원생이던 내게 격려를 해주시던 분과 15년이 지나 아이스큐브의 다음 연구를 위한 컴퓨팅 자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노벨상 발표 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교수님은 자신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모든 공을 아이스큐브 동료들에게 돌리셨다. 출장 중인 호텔방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면서 자신이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질 것 같다고 하셨다. 따뜻한 분이시다.
아이스큐브의 중성미자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더 정밀한 관측과 차세대 검출기(IceCube-Gen2)를 통해 우리는 더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찾으려 한다. 국내에서도 중성미자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중성미자 관측소(KNO), 뉴아이(nuEYE)와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대형 실험들도 제안되고 있다.
10년, 20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운도 따라야 한다. 우린 맷집을 키워야 한다. 마라톤을 뛰는 근성도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중성미자 연구의 역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뜻밖의 발견과 행운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행운을 발견으로 만드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오랜 시간 이어지는 도전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입자를 보겠다는 할젠 교수님의 40년에 걸친 집념과, 그 호기심에 동참한 수많은 연구자의 노력이 쌓이는 동안 노벨상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우리 중 누구도 노벨상을 이야기하며 연구하지 않았다. 노벨상을 목표로 한 사람도 없었다.
그냥 중성미자가 궁금했다.

※ 필자 소개
하창현 중앙대 물리학과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20년 3월 중앙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하창현 중앙대 물리학과 교수 chha@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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