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가자고 조른다는 '수상한' 섬마을 도서관 [山文기행]

김세중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2026. 10. 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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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독도나 성인봉을 가려고 울릉도를 찾는 사람은 있어도, 오로지 봉래폭포 보려고 가는 사람은 없다. 강원도 묵호항에서 160km 뱃길을 마다 않고 울릉도 봉래폭포를 간 건, 폭포 가는 길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도서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이번 호 답사를 봉래폭포로 한 것도 사실은 폭포 때문이 아니라, 저동항과 봉래폭포 한중간에 있는 울릉도서관이 궁금해서였다.

저동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이 함께 쓰는 운동장 한 귀퉁이의 3층 빨간 벽돌 건물, 경북교육청 울릉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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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봉래폭포와 울릉도서관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독도전망대에서 비오는 날 내려다본 행남등대 부근(왼쪽 튀어나온 곳, 도동리 산4-1)이 '진짜 도동 1번지'와 가깝다. 

오로지 독도나 성인봉을 가려고 울릉도를 찾는 사람은 있어도, 오로지 봉래폭포 보려고 가는 사람은 없다. 강원도 묵호항에서 160km 뱃길을 마다 않고 울릉도 봉래폭포를 간 건, 폭포 가는 길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도서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우선 울릉도 얘기부터.

시 '울릉도'와 노래 '독도는 우리땅'

애달픈 국토의 막내(×)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독도전망대 케이블카 아래 약수藥水공원과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詩碑가 있다. 시는 '국토의 막내'라 했지만 천만에, 울릉도는 면적 약 73㎢로 한반도에서 아홉 번째로 큰 섬이다. 북한의 가장 큰 섬이자 한반도 최서단인 평안북도 비단섬(약 64㎢)보다 크다. 다만, 9,000명 선이 깨진 울릉군 인구는 군 단위로 전국 막내고, 끝에서 2위인 경북 영양군(약 1만6,000명)보다도 턱없이 적다.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땅'(1982) 노랫말의 태반은 울릉도 이야기다. 내용에 오류가 많다는 지적에 작곡·작사자 박인호(본명 박문영.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도 그의 작이다)도 "당시는 대충 지었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다만, 오류를 고치거나 덜어낸 새 노랫말은 처음 노랫말보다 운치가 떨어진다는 평이다.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

남면은 노래 나오기 3년 전인 1979년 울릉읍으로 승격했다. 독도가 도동 1번지였던 적은 없다. '도동리 산60번지' 언저리였다가 2000년에 독도리로 승격했고, 길이름 주소는 '울릉읍 독도안용복길'이다. 진짜 도동리 1번지에 가장 가까운 곳은 독도가 아니고 본섬의 행남등대(도동등대, 도동리 산4-1)이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과 천두산(961m) 사이 계곡으로 떨어지는 3단폭포 봉래폭포는 울릉도 남부권의 식수원이기도 하다. 

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 신라 장군 이사부(ㅇ)

512년에 이사부가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엇비슷하게 나온다. 다만, <사기>의 이사부異斯夫를 <유사>는 박이종朴伊宗으로 썼다. 울릉鬱陵·우릉이라는 이름도 이때 처음 등장한다.

13년 여름 6월에 우산국이 항복하여 복속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쳤다. 우산국은 명주溟州(지금 강릉)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혹은 울릉도라고도 부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아슬라주阿瑟羅州(원주: 지금의 명주)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순풍으로 이틀 걸리는 거리에 울릉도亐陵島(원주: 지금은 우릉羽陵이라 한다)가 있었다. (중략) 이찬伊. 박이종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행남해안산책로 한중간 '소라계단'에서 바라본 바닷길과 촛대바위, 저동항 방파제.

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셋째 줄(×)

틀린 건 다 알지만, 그럼 몇 페이지 몇째 줄인지 속시원하게 밝힌 글은 적다. '세종실록 지리지'란 <세종실록>의 권148~155이고, 울릉도·독도는 그중 권153의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 편에 '우산于山·무릉武陵 두 섬'이라고 나온다. 옛 한적韓籍 방식으로는 '제11a면'이고, 지금 식으론 '21페이지 셋째 줄'이다. 혹시 해서 국역이나 교감본들을 다 찾아봤지만 '우산·무릉'이 50페이지에 나오는 것은 없었다. 도동 독도박물관의 '독도의 역사' 코너에 실록 원문의 그 페이지를 복제해 전시하고 있지만 쪽수는 명기하지 않았다.

권153의 21페이지 오른쪽부터 셋째 줄, 강원도 울진현 '우산·무릉 두 섬'이 울릉도와 독도다.

행남해안산책로, 풍혈, 봉래폭포

큰 짐 문제만 해결된다면, 도동과 저동 사이는 차량편보다 행남해안산책로로 한번쯤 걸어 보기를 권한다. 전국 유명 해안 58곳에 조성된 '해안누리길'의 제34코스다. 도동 여객선터미널에서 바닷가 데크길로 들어서서, 초입 좀 지나 아직 공사 중인 구간은 산길로 우회해야 한다. 도중에 행남마을 해변에 내려갔다가 다시 행남등대까지 올라가면 등대 아래와 앞, 두 곳 전망대에서 저동항과 촛대바위, 봉래길(도동천)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라계단'을 빙빙 돌아 내려가면 해안절벽을 따라 비교적 평탄하면서 중간중간 아치처럼 솟은 데크와 터널이 있는 본격 바닷길이 촛대바위까지 800m쯤에 걸쳐 펼쳐진다. 행남해변과 등대까지 보고 나오면 총 거리 약 4km에 2시간 안팎이 걸린다. 전 구간 운동화로도 충분하다.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절반에 해당하는 촛대바위~소라계단~행남등대 구간을 추천한다.

촛대바위에서 도동천(봉래길)을 따라 약 1.5km 올라가면 '천연 에어컨' 풍혈風穴이 나오고, 거기서 삼림욕장을 따라 500m쯤 더 올라가면 봉래폭포다. 봉래폭포와 풍혈은 본래 '원픽' 명소는 아니다. 흔히 독도 가기로 한 날 풍랑으로 배가 못 뜨면 대체관광지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번 호 답사를 봉래폭포로 한 것도 사실은 폭포 때문이 아니라, 저동항과 봉래폭포 한중간에 있는 울릉도서관이 궁금해서였다. '학교와 유치원 쉬는 주말에 아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 가자고 조른다'는 입소문을 듣고서다.

글을 모르는 다섯 살 어린이는 흐리게 바탕글씨가 찍힌 저 페이지를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뜻도 모르고 '그렸다'. 
나도 어른용 중 하나 골라 '필사적 파도타기'를 따라 해 봤다.

'수상한 작은 도서관'에 무슨 일이

풍혈과 봉래폭포까지 보고 내려오는 길에 도서관을 찾았다. 저동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이 함께 쓰는 운동장 한 귀퉁이의 3층 빨간 벽돌 건물, 경북교육청 울릉도서관. 1974년에 개관했지만 사서직 3명, 행정직 2명이 근무하는 미니 도서관이다.

운동장 반대편으로 나 있는 현관을 들어서면 맨 먼저 필사 코너가 손님을 맞는다. 어린이용 필사책들 외에 일반인용 4종을 더 두어, 아무나 취향대로 골라 한 페이지 쓰고 감상을 적으면 다른 날 아무나 그 다음 장을 이어 쓰는, '필사筆寫적 파도타기'다.

미취학 아동이 썼다는 글씨 하나가 눈에 와 박혔다. 아직 글자를 못 읽는 다섯 살 여자아이가 흐린 바탕글씨 위에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그린' 페이지. 그 아래 감상란의 의미를 모르니, 빈칸에 부모나 알아볼 필체로 날짜와 이름 석 자를 역시 그렸다. 섬의 미래이자 사서의 보람이 고스란히 읽혔다.

나도 58년의 나이 차를 무릅쓰고 한 권을 골라 따라 해 보았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랑에 관한 연구> 한 구절이 걸렸다.

사랑을 하면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그 대상에게 가서 그 안에 존재하려 한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타인을 향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대상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이 만든 궤도를 탄다.

육지에서 부임한 지 1년 9개월째라는 김일영(49) 울릉도서관장이, 군민들뿐 아니라 나처럼 알음알음으로 일부러 도서관에 들르는 외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막상 김 관장 자신은 '필사적 파도타기' 못지않게, 3층 올라가는 계단참을 스테인드글래스풍 창문과 샹들리에로 꾸미고 편안한 의자를 놓은 '심야책방'(밤 9시까지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밖에 "규모의 한계로 어려움이 있지만, 관광객들도 예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인문학 강좌도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나도 인문학자로서 "나도 하나 맡겨 주세요!"라는 말을 목젖까지 올렸다가 도로 삼켰다.

경북교육청 울릉도서관.
지난 7월 '울릉도 한 달 살기'에 나선 경북 포항 한동대 학생들이 울릉도서관을 찾아 심야책방에 '널브러진' 모습. 사진 김일영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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