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독서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뇌에 읽기 전용 영역이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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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뇌, 얼굴 알아보는 회로 빌려 써문자가 만들어진 뒤로도 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롤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꾸준한 독서는 실제로 뇌 구조와 신경망을 바꿔 읽기 능력을 끌어올린다.
뇌 네트워크는 쓸수록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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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 뇌는 영상을 볼 때보다 책을 볼 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이 책을 대신하는 건 여러모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자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30만 년 전 등장했지만, 한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건 겨우 1만 년 전부터다. 문자는 그보다도 한참 뒤인 5000년 전에야 만들어졌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문자가 없는 인구집단이 존재한다.
뇌, 얼굴 알아보는 회로 빌려 써
문자가 만들어진 뒤로도 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문자를 배우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메르 쐐기문자, 중국 한자, 이집트 상형문자 같은 초기 문자는 외워야 할 기호가 너무 많아 문자를 구사하는 것 자체가 직업이 될 정도였다. 중국이 훗날 간자체를 개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 결과 100여 년 전까지도 인류 대다수는 문맹이었다. 이 판도를 바꾼 게 자음·모음, 즉 음소에 기반한 알파벳 체계다. 외워야 할 기호 수가 획기적으로 줄면서 20세기 들어 문맹률이 크게 낮아지는 기반이 됐다.이렇듯 문자 역사가 짧다 보니, 인류의 뇌에는 읽고 쓰는 데 특화된 구조가 진화할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뇌는 글자를 해석해낸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답은 기존 구조의 재활용에 있다. 뇌는 낯선 정보인 문자를 처리하고자 이미 갖고 있는 구조를 빌려 쓴다. 글을 읽을 때 뇌의 활성을 분석해보니, 소리를 처리하는 언어 영역과 대상을 보는 시각 영역이 함께 작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글자를 식별할 때는 얼굴을 인식할 때 쓰는 고차원적 시각 영역이 동원됐다. 우리가 눈·코·입의 미묘한 배열로 특정인의 얼굴을 알아보듯이 점과 선의 배치로 글자를 구별해내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 쓰는 뇌 회로의 효율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차이가 상당 부분 선천적으로 정해진다는 논문이 최근 국제학술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실렸다. 미카엘 롤 스웨덴 룬드대 언어·문헌센터 교수의 연구 결과다. 우리 뇌는 애초에 읽기를 위해 진화하지 않았고, 문자가 뇌 진화에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없었다. 그 결과 사람마다 타고나는 읽기 회로 능력과 효율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 다양성의 가장 극단적 형태가 난독증이다. 뇌 회로가 읽기라는 낯선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가 글을 배우지 못하는 시절이라면 난독증은 드러날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난독증은 문자와 함께 생겨난 장애인 셈이다.

읽기 능력, 타고나지만 바꿀 수 있다
그렇다고 문해력이 타고난 대로 고정되는 건 아니다. 타고난 약골이라도 꾸준히 근력운동을 하면 보통 사람보다 근육질이 될 수 있듯이, 문해력 역시 어느 정도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 롤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꾸준한 독서는 실제로 뇌 구조와 신경망을 바꿔 읽기 능력을 끌어올린다.독서가 단련하는 건 읽기 능력만이 아니다. 팔크 휘티히 독일 막스플랑크 심리언어학연구소 박사는 읽고 쓰는 일이 기존 뇌 회로를 빌려 쓰면서 소모하는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그 회로를 강화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뇌 네트워크는 쓸수록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읽고 쓸 때마다 기억력, 주의력, 언어처리 능력, 추론 능력은 물론 얼굴인식 능력까지 좋아진다. 다만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무엇을 읽느냐도 중요하다. 비슷비슷한 추리소설만 되풀이해 읽어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휘티히 박사의 설명이다.
며칠 뒤면 한글날이다. 배우기 쉬운 문자 덕분에 한국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과 글을 읽어내는 건 다른 일이다. 후자는 다양한 글을 골고루 읽어야 길러진다. 이번 가을에는 평소 손이 가지 않던 책을 한 권 펼쳐 보면 어떨까.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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