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하이닉스 누리호 탑승… '스페이스 헤리티지' 경쟁 시작
SK하이닉스 D램·UFS 우주 방사선 시험…6차 발사엔 방사선 내성 저장장치 탑재
누리호 5차 발사를 하루 앞두고 LG와 SK하이닉스가 자사 기술을 로켓에 실어 대기권 너머로 보낸다. 지난 4월 미국 유인 달 탐사 '아르테미스 2호'에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를 실어 보냈던 SK하이닉스는 이번에 주력 제품인 D램과 범용플래시저장장치(UFS)를 탑재하고, LG는 계열사 부품을 한데 모아 그룹 차원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린다.

LG는 달 탐사 로버 개발 스타트업 무인탐사연구소와 함께 준비한 큐브위성 '율리시스'에 계열사 부품 5종을 실었다. LG이노텍의 카메라 모듈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팩, LG전자의 파워모듈·자세제어 구동기·위성 통신용 안테나다. 누리호가 목표 궤도에 오르면 큐브위성은 고도 570㎞ 상공에서 약 60일 동안 부품별 작동 시험을 차례로 수행하는데, 카메라는 한반도 상공을 촬영해 데이터를 지상으로 보내고 파워모듈과 자세제어 구동기는 위성의 전력과 자세를 제어하며 배터리팩은 전원을 공급하면서 상태 정보를 수집한다.
LG 계열사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우주 전용 제품을 새로 개발하는 대신, 지상에서 신뢰성을 확인한 상용 부품을 우주 환경에 맞춰 보완하는 상용기성품(COTS) 방식을 택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번 5차 발사를 시작으로 내년 6차 발사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우주에서도 컴퓨터가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고 D램을 비롯한 메모리가 우주 방사선을 이겨내면서도 연산 중인 데이터를 빠르게 읽고 쓰는 작업용 메모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로켓에 기술을 실어 보내는 이유는 우주에서 일정 기간 기능을 유지했다는 증거와 이력, 이른바 '스페이스 헤리티지'가 곧 품질 보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LG는 그동안 우주 사업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LG사이언스파크는 2023년 국내 유일의 달 탐사 로버 개발 기업인 무인탐사연구소를 육성 스타트업으로 선정했고, 무인탐사연구소는 누리호 4차와 5차 부탑재위성 공모에 연속으로 선정된 데 이어 최근 12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오는 2027년 달 탐사 실증 임무에 나선다. LG는 지난해 1월 그룹과 계열사 기술 경영진이 모이는 LG기술협의회에서도 우주산업의 미래와 기회를 검토하며 정밀 과학 탐사 로버를 활용한 다양한 협업 모델을 논의했다.
LG가 우주 사업에 공을 들이는 것은 배터리와 카메라, 전력 제어, 통신 기술의 판로를 우주산업으로 넓혀 새로운 성장축을 찾기 위해서도 있다. 기존 연구개발·제조 역량을 그대로 활용해 위성과 탐사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소재의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우주에서의 경쟁력을 시험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LG는 2028년 자체 큐브위성을 쏘아 올려 우주 환경에서의 사업 기회를 넓히고, 2030년에는 우주 사업으로 매출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큐브위성은 가로·세로·높이 10㎝를 기본 규격으로 하는 초소형 인공위성으로 지구 관측과 기술 검증 등 다양한 임무에 쓰인다. 지난해 누리호 4차 발사 때 LG이노텍 카메라를 먼저 큐브위성에 실어 보낸 LG는 올해 5차 발사에 LG전자·LG에너지솔루션·LG이노텍 부품을, 내년 6차 발사에는 LG전자의 저궤도 위성용 부품을 싣고, 2028년에는 자체 큐브위성 발사를 추진하는 로드맵을 꾸려둔 상태다.
6차 발사에 실릴 저궤도 위성용 부품은 위성의 방향을 잡고 전력을 변환하며 지상과의 교신을 맞추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이며, 진공과 온도 변화, 방사선 속에서도 기능을 유지하는지를 시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1월 미국 사우스8 테크놀로지스와 '항공우주용 배터리 셀 연구·개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도 맺었다. 사우스8의 '액화 기체 전해질'은 영하 20도 부근에서 정상 작동이 어려운 기존 액체 전해질보다 어는점이 낮아 영하 60도 이하의 우주 환경도 견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발사에서 항우연의 '국산소자부품 우주검증 플랫폼 2호'에 D램과 UFS를 실어 보낸다. 우주 방사선과 고에너지 입자가 상용 메모리 소자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고 우주 데이터를 확보해 위성·우주용 전자장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지 가늠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6차 발사에는 방사선 내성 저장장치를 실을 예정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삼성전자와 함께 아르테미스 2호에 실린 한국 큐브위성 'K-라드큐브'에 반도체를 탑재했다. K-라드큐브는 고도 약 4만㎞ 지점에서 사출된 뒤 약 6만8000㎞ 떨어진 거리에서 신호를 보내 국내 큐브위성 가운데 가장 먼 거리에서 수신된 기록을 남겼지만, 관측 데이터를 포함한 정상 교신에는 끝내 실패했다. 우주 방사선이 반도체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확인하려던 시도가 미완으로 남은 만큼, 이번 누리호 발사는 SK하이닉스가 실측 데이터를 확보할 기회가 되는 셈이다.
우주산업이 고성능 메모리 기업을 찾기 시작한 것은 탐사선의 자율 주행과 고해상도 지구 관측 위성의 실시간 영상 분석, 인공지능(AI) 기반 임무 등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급증하면서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초고속·저전력 상용 D램 도입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D램은 이미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와 전자부품 패키징 프로그램(NEPP) 등의 시험을 거쳤다. NASA는 두 회사의 메모리를 시험한 뒤 작성한 'NEPP DDR4 방사선 평가 FY24 최종 보고서'에서 DDR4가 DDR3 이하 메모리보다 기능 중단 민감도가 10배가량 높다고 보고했다.
보고서는 우주용 D램의 신뢰성을 평가할 때 누적 방사선에 따른 열화뿐 아니라 입자 하나가 데이터 오류나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단일사건효과(SEE)가 중요한 과제라며, DDR4가 이전 세대보다 약 10배 높은 단일사건 기능중단(SEFI) 민감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마이크론 제품에서는 저장된 비트가 뒤집히는 고립된 단일 비트 오류(SBU)는 없었지만 SEFI가 상당수 발생했고 제어 쪽 오류가 두드러졌으며, 삼성전자 제품에서는 낮은 선형에너지전달(LET) 조건에서도 SBU가 다수 나타났다.

SK하이닉스는 당시 시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번 누리호 비행을 거친 뒤 NASA 검증 등을 밟을 것으로 점쳐진다. SK하이닉스 제품은 이전에도 NASA 시험대에 오른 적이 있다. 2017년에는 24Gb LPDDR4 제품이 퀄컴 스냅드래곤 820과 함께 양성자·중성자·중이온 조사 시험을 받았고, 2023년에는 512Gb 낸드플래시가 우주 환경 사용 가능성을 평가하는 NEPP 시험에 참여했다.
당시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는 중이온 시험에서 싱글레벨셀(SLC) 모드와 트리플레벨셀(TLC) 모드로 각각 10블록씩(약 225MB·675MB) 시험을 받았고, 두 모드 모두에서 단일사건 업셋(SEU)이 관찰됐다. 보고서는 SEFI 대부분이 복구 가능했지만 동작 모드와 LET 값에 따라 블록 단위로 다수 발생할 수 있다며, 실제 우주 환경에 적용하려면 시스템 설계 단계에서 SEU·SEL·SEFI에 대한 완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번 누리호 발사로 SK하이닉스는 그간의 지상 시험에 더해 우주 데이터를 보다 상세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사 D램의 방사선 취약점과 사용 가능한 조건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위성 고객의 채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우주에서 직접 얻은 데이터로 '우주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덜고, 오류 기록을 역추적해 개발 자원을 투입할지 결정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권기호 항우연 위성우주탐사전자팀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누리호 5차 발사로 본 한국 우주 기술 전망' 행사에서 국내 위성에 쓰이는 전자 소자와 부품 상당수가 여전히 해외 의존도가 높다며, 국산 부품이 실제 위성에 쓰이려면 우주에서 작동했다는 이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