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황 모드”...페루 女수감자들이 ‘레오 인형’ 만드는 이유

박강현 기자 2026. 10. 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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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레오 14세 방문 앞두고 인형·목걸이 제작
美서 태어났지만 페루서 오랜 사목
페루 국적까지 가져 ‘우리 교황’ 애정
지난 2일 페루 수도 리마의 한 여성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제작한 교황 레오 14세의 얼굴을 본뜬 인형들이 놓여져 있다. 레오 14세는 다음 달 남미 순방의 마지막 일정으로 페루를 방문할 예정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페루 수도 리마의 한 여성 교도소에서는 요즈음 수감자들이 다음 달 자국을 찾는 교황 레오 14세의 얼굴을 본뜬 인형을 만드는 데 한창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기간 페루에서 활동해 현지에서 ‘페루의 교황’으로 통하는 인물의 귀환을 앞두고 이색적인 환영 준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일 로이터에 따르면 리마의 초리요스 여성 교도소에서는 최근 수감자 70여 명이 레오 14세의 얼굴을 본뜬 인형과 구슬 목걸이 등을 만들고 있다. 다음 달 6~17일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를 순방하는 교황을 맞기 위해서다. 페루는 이번 남미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수감자는 인형에 솜을 채우며 “지금 우리는 완전히 ‘교황 모드’”라며 “지난해 교황이 페루 신분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인형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수감자들이 만드는 제품은 9달러(약 1만2000원)짜리 봉제 인형부터 팔찌와 목걸이까지 다양하다. 교도소 밖에서 판매되는 이 제품들은 수감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페루 정부의 ‘생산적 교도소’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런 ‘교황 인형’에는 수감자들의 개인적인 바람도 담겨 있다. 도리스 나칸다카리 교도소장은 “수감자들의 가장 큰 소원은 교황이 이곳을 찾아 축복을 내려주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일 페루 수도 리마의 한 여성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다음 달 교황 레오 14세의 방문을 앞두고 그의 모습을 본뜬 인형 등을 만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페루와 레오 14세의 진한 인연

수감자들이 ‘교황 인형’까지 만들며 레오 14세의 방문을 기다리는 것은 그와 페루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본명이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인 레오 14세는 195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성직자로서 삶의 상당 부분을 페루에서 보냈다. 1985년 페루 북서부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고, 1988년 다시 페루로 건너가 트루히요에서 신학생 교육과 사목(司牧) 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페루 북부 치클라요 교구의 교황청 서리로 임명했고, 이듬해에는 교구장 주교로 발탁했다. 이 과정에서 레오 14세는 페루 국적도 취득했다. 다만 페루 시민권을 딴 게 단순히 페루에 대한 개인적 애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페루와 교황청이 체결한 협정에 따라 현지 교구장 주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인 2015년 치클라요 교구장에 정식 임명됐다.

지난 4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사도궁 집무실 창가에서 교황 레오 14세가 삼종기도를 마친 뒤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렇다고 레오 14세와 페루의 인연이 단순한 ‘행정상 귀화’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랜 기간 선교사와 주교로 페루에서 사목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봤다. 특히 치클라요에서는 코로나 팬데믹과 엘니뇨에 따른 홍수 등 위기 때 주민들과 함께했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전 세계 가톨릭 주교 인사를 관장하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발탁하면서 로마로 자리를 옮겼고, 같은 해 추기경에도 서임됐다.

지난해 5월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첫 연설에서도 스페인어로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치클라요 교구를 따로 언급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미국 태생의 첫 교황인 동시에 페루 국적을 가진 교황이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에 현지에서는 그를 사실상 ‘우리 교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 페루는 국민의 70~80%가 가톨릭 신자인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 중 하나다.

교황 임명 당시 줄곧 페루에서 사목 활동을 하며 ‘글로벌리스트(세계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온 점이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 회의)의 추기경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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