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근대 교육유산 '초당의숙' 자리 확인…초당원길 59-6

유형재 2026. 10. 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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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강릉의 대표적인 민간 주도 교육 공간인 초당의숙(草堂義塾) 자리가 확인됐다.

박미현 근현대지역연구원장은 최근 율곡국학진흥원에서 열린 '제10회 강릉의 담(談)하다' 포럼에서 "초당의숙 공동설립자인 최태집의 장남 최돈철의 손자인 최종훈씨와 초당리 출신 어르신들의 증언을 통해 이곳이 초당의숙 교사(校舍)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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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이 교사 재직…1909년 최태집·최용집이 사비로 설립
초당의숙 건물 현재 모습 [박미현 원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근대 강릉의 대표적인 민간 주도 교육 공간인 초당의숙(草堂義塾) 자리가 확인됐다.

현재의 지번으로 초당원길 59-6에 위치한 구옥이 그곳이다.

박미현 근현대지역연구원장은 최근 율곡국학진흥원에서 열린 '제10회 강릉의 담(談)하다' 포럼에서 "초당의숙 공동설립자인 최태집의 장남 최돈철의 손자인 최종훈씨와 초당리 출신 어르신들의 증언을 통해 이곳이 초당의숙 교사(校舍)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태집은 강릉최씨 용연동파 초당댁 종손이자 대한제국기에 신설된 중학교 교관을 역임해 '교관댁'으로 불린 유력 인사로, 1909년 최용집과 함께 초당의숙을 공동 설립해 사비를 들여 운영했다.

초당의숙은 최태집의 서당이었던 한옥에서 운영됐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에 민족 대표 지도자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여운형은 청년기인 1909년 말부터 만 2년간 이곳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영어와 스포츠 교육은 물론 시사 토론을 벌이며 민족의식을 고양했다.

초당의숙이 폐교된 배경은 1911년 강릉경찰서장 일본인 안라쿠(安樂兼純)와 '명치'(明治)' 연호 의무 사용 문제로 갈등이 생긴 것이 발단이라는 점도 여운형이 1933년 1월 23일 발행된 잡지 '동광' 제40호에 기고한 글에서 밝혀졌다고 박 원장은 밝혔다.

초당의숙 건물은 현재는 일부 양옥으로 개조된 상태이다.

그러나 내부는 200여 년 된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이번 포럼에 참여했던 패널들은 이 건물의 보존 및 활용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그 방안을 모색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율곡국학진흥원은 밝혔다.

'동광' 제40호 여운형 기고문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박미현 발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oo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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