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셋 한꺼번에 키우는 캥거루 엄마…주머니 육아 속 진화의 비법

한겨레 2026. 10. 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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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 새끼는 태어날 때 몸무게가 1g도 되지 않는다.

이때부터 새끼는 배 속이 아닌 주머니 속에서 자란다.

주머니 속 새끼가 젖을 빠는 동안 자궁 안에서 발달을 멈춘 채 머무른다.

가뭄으로 주머니 속 새끼를 잃더라도 자궁 속에서 기다리던 배아가 곧바로 자라기 시작해 번식을 빠르게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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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몸에 새겨진 진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즈주 남부 무라마랑국립공원에서 동부회색캥거루 새끼가 어미 주머니 안의 젖을 먹고 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캥거루 새끼는 태어날 때 몸무게가 1g도 되지 않는다. 눈도, 뒷다리도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 어미는 왜 덜 자란 새끼를 낳아서 주머니에서 마저 키울까?

오늘날 포유류는 크게 세 무리로 나뉜다. 사람처럼 자궁 안에서 새끼를 키운 뒤 낳는 태반류, 캥거루처럼 몸 밖 주머니에서 새끼를 키우는 유대류, 그리고 오리너구리처럼 알을 낳는 단공류다.

태반류와 유대류는 약 1억6천만년 전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뒤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태반류는 자궁 안에서 새끼를 오래 키우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유대류는 임신 기간을 짧게 줄이는 대신 어린 새끼를 주머니 속에서 키우는 쪽을 택했다. 같은 포유류라도 새끼가 자라는 장소와 어미가 힘을 쏟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유대류의 먼 조상은 처음부터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살지 않았다. 화석을 근거로 보면 초기 유대류는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를 거쳐 남극대륙과 호주로 이동했다. 지금은 얼음으로 덮인 남극대륙도 당시에는 동물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땅이었다. 그 무렵 지구는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쌓여 지금보다 훨씬 더웠다. 극지방에도 두꺼운 얼음이 생기지 않아 남극은 숲으로 덮일 정도였다. 겨울이면 몇 달씩 해가 뜨지 않는 극지방에서도 숲이 자랄 만큼 따뜻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륙을 옮겨 가던 유대류의 조상에게 큰 재앙이 닥쳤다. 바로 약 6600만년 전 소행성 충돌로 일어난 대멸종이다. 이때 새를 뺀 공룡을 비롯해 당시 생물 종의 약 4분의 3이 사라졌다. 유대류의 조상도 이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북아메리카에 살던 유대류 계통은 포유류 중에서도 유난히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국 지질학자 리처드 리데커가 1896년 출간한 책 ‘유대류와 단공류 안내서’에 실린 왈라비 그림. 리처드 리데커/위키미디어코먼스

살아남은 동물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몸집이 작고 대사율이 낮아 에너지를 적게 쓴다는 점이다. 충돌 뒤 하늘을 뒤덮은 먼지와 그을음이 햇빛을 가리자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먹이가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게 먹고도 버틸 수 있는 동물이 유리했다. 초기 유대류 가운데 이런 조건을 갖춘 일부 계통만이 격변을 견뎌 냈다.

살아남은 유대류는 마침내 호주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호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메말라 갔고 지역과 계절에 따라 비와 먹이의 양이 크게 들쑥날쑥해졌다. 여기에는 두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는 지구 전체가 식어 간 것이다. 약 4500만년 전부터 호주는 남극대륙에서 떨어져 나와 북쪽으로 서서히 움직였고. 약 3400만년 전 무렵 두 대륙 사이에 바닷길이 완전히 열렸다. 그러자 남극 둘레를 도는 차가운 해류가 생겨 따뜻한 바닷물이 남극에 닿지 못했고, 남극은 점점 얼어붙었다. 남극이 얼음으로 덮이자 지구 전체의 기후도 서늘하고 건조해졌다. 둘째는 호주 대륙이 계속 북쪽으로 올라간 것이다. 호주는 비가 적게 내리는 아열대 고기압대에 들어섰고 약 1500만년 전 이후 내륙이 본격적으로 메말라 갔다.

유대류가 이 건조화 때문에 주머니 육아 전략으로 갈아탄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린 새끼를 낳아 주머니에 넣어 키우던 방식은 유대류가 호주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있었던 특징이었다. 다만 호주의 기후가 비가 언제 올지 예측하기 어렵게 바뀌자 이 번식 방식이 뜻밖에도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먹이가 일정하지 않은 곳에서는 새끼를 키우는 데 필요한 힘을 한 번에 쏟아붓기보다 여러 단계에 걸쳐 나눠 쓰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대류의 임신 기간은 놀라울 만큼 짧다. 캥거루과에 속하는 작은 왈라비인 타마르왈라비의 임신 기간은 약 26일에 불과하다. 갓 태어난 새끼는 비교적 잘 발달한 앞다리로 어미의 털을 붙잡고 스스로 기어 올라가 주머니 속 젖꼭지를 찾아간다. 이때부터 새끼는 배 속이 아닌 주머니 속에서 자란다.

동부회색캥거루 새끼가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주 도싯 에스크계곡을 지나고 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이 방식에는 뚜렷한 이점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임신 기간이 짧으면 어미가 한 번에 쏟는 투자가 적다. 그래서 설령 먹이가 부족해 새끼를 잃더라도 손실이 작다. 또 새끼를 젖으로 키우기 때문에 어미가 처한 상황에 맞춰 투자를 조절할 수 있다. 배 속에서 키우는 새끼는 성장 속도를 조절하기 어렵지만, 주머니 속 새끼는 어미가 주는 젖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달라진다. 먹이가 부족할 때는 젖의 양을 줄이거나 성분을 바꿔 새끼에게 들이는 에너지를 줄이면 된다.

젖의 양과 성분은 새끼 발달 단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아주 미숙한 새끼와 어느 정도 자란 새끼에게 필요한 영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캥거루 어미는 네 개의 젖꼭지 가운데 두 곳에서 성분이 서로 다른 젖을 동시에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갓 태어난 새끼는 소화 기관이 덜 자라 진한 젖을 소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새끼에게는 지방이 적고 탄수화물이 많은 묽은 젖을 먹인다.

반면에 주머니 밖으로 나온 큰 새끼는 몸집을 빠르게 키우고 뛰어다니느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새끼에게는 지방과 단백질이 많은 진한 젖을 먹인다. 이처럼 주머니와 젖은 단순히 새끼를 보호하고 먹이는 수단이 아니라 태어난 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번식 체계인 셈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임신이 잘되지 않는다. 그런데 캥거루는 다르다. 어미는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어도 짝짓기를 해서 임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아주 작은 씨앗 같은 배아는 곧바로 자라지 않는다. 주머니 속 새끼가 젖을 빠는 동안 자궁 안에서 발달을 멈춘 채 머무른다. 이를 ‘배아 휴면’(embryonic diapause)이라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 비어워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동물원’ 캥거루 공원에서 한 어미 캥거루가 주머니 속에 새끼를 품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다 주머니 속 새끼가 커서 밖으로 나올 무렵 젖을 빠는 자극이 줄어들면 배아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미 한 마리가 서로 다른 세 단계의 자손을 동시에 기를 수 있다. 주머니 밖에서 젖을 먹으며 독립을 준비하는 새끼, 주머니 안에서 자라는 새끼, 자궁 속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배아다. 이 능력은 건조한 지역에 사는 붉은캥거루 같은 종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가뭄으로 주머니 속 새끼를 잃더라도 자궁 속에서 기다리던 배아가 곧바로 자라기 시작해 번식을 빠르게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과 같다. 새끼 한 마리에게 모든 걸 거는 대신 번식을 이렇게 여러 단계로 나눠 두면 가뭄이 닥쳐 한 단계를 잃더라도 다음 단계가 남는다. 이처럼 위험을 분산하는 쪽이 결국 새끼를 끝까지 키워 낼 확률을 높인다. 캥거루에게 오래전에 우연히 생긴 이 번식 방식은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땅에서 잘 들어맞는 전략이 되었고 대대손손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노정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노정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 기후변화와 맞닿은 동물과 인간의 몸에 남은 진화의 흔적을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소개한다. 노 관장은 서울대 생물학과에서 말의 행동생태와 진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장과 동물원장을 지냈고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을 역임했다. 동물과 인간의 진화 이야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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