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3] 도배에서 창업까지

2026. 10. 6. 06:3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인생 오후로 가는 삶의 전환기에 있는 독자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는 경제학적 선택의 기술을 '욜로은퇴 시즌3'으로 전합니다.

도배 기술이 현장에 들어갈 자격을 만들어줬다면, 대기업에서 익힌 관리 능력은 일을 확장하는 데 힘이 됐다.

친구는 처음 도배를 배울 때부터 자기 경력과 기술이 이렇게 결합할 줄 몰랐다고 했다.

친구에게 도배는 그런 선택이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편집자주] 인생 오후로 가는 삶의 전환기에 있는 독자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는 경제학적 선택의 기술을 '욜로은퇴 시즌3'으로 전합니다.

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친구가 인테리어 사무실을 열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지내고, 퇴직한 후 벤처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했던 친구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마침내 자기 사업을 꾸려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출발점은 사업계획서도, 투자금도 아니었다. 도배기능사 자격을 따고 현장에 들어가 몸으로 부딪친 일이었다.

퇴직 후 현장으로 내려가 새롭게 출발

처음부터 인테리어 회사를 차리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이과를 나와 굴지의 대기업 부장으로 퇴직하고 몇 년 동안 관련 벤처 업계에서 일했지만 여의찮았다. 그 이후 뭐 하나 궁금했는데 갑자기 변신했다. 도배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도배를 시작했다. 현장에서 뛰다 보니 점차 인테리어로 영역을 넓혀가게 됐다.

기업에서 수십 년 익혀 온 관리의 노하우를 적용해 이른 시일 내에 인테리어를 완료하니 고객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마침내 안정된 근거지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OO인테리어'라는 상호로 오픈했다고 한다.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는 꿈을 도배 일을 통해서 늦은 나이에 이룬 것이다.

조직의 윗자리에서 혈혈단신의 현장으로 가는 건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 간극을 몸으로 건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직접 수행했다. 명문 고등학교를 나와 굴지의 대기업에 다닌 사람이 아닌, 그냥 도배기능사로 보는 주변의 눈길도 잘 견뎠다. 손에 익지 않은 도구보다 더 불편한 것은 마음일 수 있다.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퇴직한 주인공이 세차장에서 일하는 장면.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고 과거의 경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났다. 도배 기술이 현장에 들어갈 자격을 만들어줬다면, 대기업에서 익힌 관리 능력은 일을 확장하는 데 힘이 됐다. 일정과 비용을 살피고, 사람 사이의 역할을 조정하고, 고객의 요구를 정리하는 능력은 인테리어 사업에서도 중요하다.

도배 한 분야를 잘하는 것과 여러 공정을 묶어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자기 손으로 끝낼 수 없는 작업까지 연결하려면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친구는 현장을 배우면서 자신이 이미 갖고 있던 능력을 새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기술과 관리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이 생겼다.

이것은 중년의 경력 전환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이전 인생을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래된 경험이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쓸모를 갖는지 발견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쓸모는 책상 앞에서 고민한다고 저절로 드러나지 않는다. 새로운 일 속에 자신을 실제로 넣어봐야 확인할 수 있다. 친구는 처음 도배를 배울 때부터 자기 경력과 기술이 이렇게 결합할 줄 몰랐다고 했다.

발을 내디뎌야 세계가 열린다

우리는 선택을 앞두면 여러 가능성을 머릿속에 펼쳐놓는다. 취업할 것인가, 기술을 배울 것인가, 창업할 것인가.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가장 좋은 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선택지들은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놓여 있지 않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열의 하나도 알지 못한다. 어떤 선택은 해보는 순간 새로운 선택지가 가지 뻗어 나가듯이 전개되기도 한다.

친구에게 도배는 그런 선택이었다. 밖에서 보면 하나의 기술을 배우는 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고객과 현장, 다른 사업 구조를 만나는 입구가 된다. 일을 해봐야 고객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알 수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으며, 다른 작업자와 함께해 봐야 어떤 일을 연결할 수 있는지 보인다. 멀리서 생각하는 것과 가까이서 경험하는 것은 얻는 정보의 질이 다르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주인공이 발을 한 번 내디디면 새로운 우주가 펼쳐진다.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려면 일단 발을 내디뎌야 한다. 사진은 2022년 5월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를 찾은 시민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2' 포스터 앞을 지나는 모습. ⓒ 뉴스1 김진환 기자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다중우주(멀티버스)로 들어가는 것과 닮았다. 한 발을 디디면 이전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세계가 펼쳐진다. 사람도 달라지고, 문제도 달라지고,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그 세계에서 얻은 경험이 또 다른 문을 열어준다. 우주가 넓듯이 사람의 삶도 그러하다.

돌고 돌아 도착한 길은 멀리 돌아온 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관리 경험도, 벤처기업에서의 시간도, 도배 현장에서 흘린 땀도 지금의 사업을 이루는 재료가 됐다. 돌아간 시간이 모두 낭비가 아니었다. 서로 떨어져 있던 경험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됐다.

인생 후반을 직면한 우리는, 펼쳐질 다음 세계를 전부 이해한 뒤 출발할 수는 없다. 때로는 감당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먼저 내디뎌야 한다. 친구가 벽지를 붙이며 연 것은 방의 새로운 풍경만이 아니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자기 인생의 다음 세계였다. 알고 보면, 이 분야는 앞으로 인공지능(AI)도 침범하지 못할 분야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려면 일단 발을 내디뎌야 한다.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