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세상의 지배자가 스스로 만든 '강적'… 인텔·AMD의 '질긴 인연'

최연진 2026. 10. 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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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하면 따라붙는 이름이 있다.

시작이 바로 PC의 CPU로 쓰인 인텔의 '8088' 프로세서다. 이렇게 해서 훗날 PC 세상을 주름잡은 MS의 '윈도'와 인텔의 CPU 결합인 '윈텔'의 싹이 텄다.

IBM PC 덕분에 8088 프로세서가 잘 팔려 CPU 시장을 열게 된 인텔은 2년 뒤인 1982년 후속작 '80286'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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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스토리]
'디지털의 역사' 인텔의 도전<13>

인텔하면 따라붙는 이름이 있다. 바로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스(Advanced Micro Devices), 즉 AMD다. AMD는 인텔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드는 반도체 업체다. AMD는 인텔의 예비군 역할을 하는 2차 공급업체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CPU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강적이 됐다. 그만큼 AMD가 만든 CPU는 인텔 제품보다 저렴하면서 성능이 대등했다.

이처럼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인텔은 스스로 만든 경쟁자인 AMD와 끊임없이 겨루며 지난한 소송을 벌였지만 한편으로 서로 기술을 공유하며 협력하는 등 숙적이면서 공생하는 묘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미국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인텔 본사. AP 연합뉴스

'윈텔' 세상을 만든 IBM

개인용 컴퓨터의 기원은 애플이 1977년 출시한 컴퓨터 '애플2'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2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나왔던 개인용 컴퓨터들을 누르고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애플2의 인기 비결은 완제품에 있었다. MITS의 '알테어 8800' 등 그때까지 나온 개인용 컴퓨터는 소비자가 각 구성품을 조립해야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애플2는 자판과 저장장치 등을 완벽하게 갖춰 더 이상 소비자가 손을 댈 필요가 없어 간편했다.

하지만 애플2는 단점도 명확했다. 가격이 1,3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비쌌고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CPU로 사용해 속도가 느렸다. 여기에 기기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 애플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주변장치를 추가하거나 이용자가 마음대로 성능 개선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애플2는 대적할 상대가 없다보니 사실상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휩쓸었다. 이를 눈 여겨 본 것이 당시 컴퓨터의 제왕 IBM이다. IBM은 기업용 컴퓨터인 거대한 메인프레임으로 워낙 돈을 잘 벌어서 굳이 소비자를 상대로 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넘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애플이 애플2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키우자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뛰어 들었다.

이를 위해 IBM은 1980년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PC)라는 상표의 제품을 선보였다. IBM PC는 후발주자인데도 불구하고 애플을 누르고 순식간에 세상을 휩쓸었다. 덕분에 IBM의 상표였던 PC는 이제 개인용 컴퓨터를 뜻하는 보통 명사가 됐다.

IBM의 성공 비결은 명확했다. 바로 애플과 반대로 가는 전략이었다. 폐쇄적이었던 애플과 달리 IBM은 개방 전략을 취했다. 그동안 반도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컴퓨터의 모든 것을 직접 만들던 IBM이 처음으로 문을 열어 외부에서 주요 구성품을 공급받았다.

시작이 바로 PC의 CPU로 쓰인 인텔의 '8088' 프로세서다. 그리고 PC를 가동할 소프트웨어인 운영체제(OS)는 IBM이 통제하기 좋은 작은 신생기업(스타트업)에 맡겼다. 그 스타트업이 빌 게이츠가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는 PC용 OS로 'MS 도스(DOS)'를 만들어 IBM에 납품했다. 이렇게 해서 훗날 PC 세상을 주름잡은 MS의 '윈도'와 인텔의 CPU 결합인 '윈텔'의 싹이 텄다.

1990년대 서울의 삼보컴퓨터 매장에서 직원들이 개인용 컴퓨터 판촉행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텔 CPU가 PC 세상을 지배한 비결

IBM PC가 성공한 결정적 요인은 개방성이다.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일 정도로 IBM은 PC 설계도를 공개해 누구나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그 덕에 수 많은 컴퓨터 회사들이 복제품을 내놓으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대우전자, 현대전자 등 대기업을 비롯해 삼보컴퓨터, 고려시스템, 큐닉스 등 전문업체들이 등장해 PC를 내놓았다. 그 바람에 PC 가격이 크게 떨어져 시장을 키울 수 있었다.

특히 게임 소프트웨어가 쏟아지면서 판매가 급증한 PC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90%를 장악했던 애플을 순식간에 왕좌에서 끌어내렸다. 이후 애플은 1984년 '매킨토시' 컴퓨터를 내놓을 때까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IBM PC에 밀려 수 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IBM PC 덕분에 8088 프로세서가 잘 팔려 CPU 시장을 열게 된 인텔은 2년 뒤인 1982년 후속작 '80286'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이때 80286 프로세서의 개발을 총괄한 인텔의 앤디 그로브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바로 상위 호환 정책이다. 기존 CPU에 사용하던 소프트웨어와 주변장치 등을 다음에 나오는 더 좋은 성능의 상위 CPU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렇게 해서 기존 제품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음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연결했다.

언뜻보면 개방적으로 보이는 기술의 상위 호환성은 소비자들이 다른 제품으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묶어 두는 잠금효과(Lock-in)가 있다. 그 바람에 8088 CPU에 익숙한 사람들은 286, 386, 486, 펜티엄 등 새로운 CPU가 나와도 쉽게 이탈하지 않고 지속적인 소비자가 됐다. 이 정책 덕분에 인텔은 약 30년간 PC의 CPU 시장을 지배했다.

인텔은 8088 프로세서 개발의 토대가 된 x86이라는 반도체 설계 구조를 80286 프로세서에도 그대로 적용해 8088 프로세서용 소프트웨어가 80286 프로세서에서도 작동하는 상위 호환성을 유지했다. 이렇게 등장한 80286 프로세서는 8088과 마찬가지로 16비트 프로세서였지만 두 배 이상 속도가 빨랐다.

중국 베이징에서 한 남성이 AMD 로고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숙적을 키우다

PC의 성공은 인텔에게 CPU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주었지만 한편으로 또다른 위기를 불러왔다. CPU 분야의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인텔을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가 가장 아끼던 사람이 경쟁자가 됐다. 그 인물이 AMD를 만든 제리 샌더스다.

AMD의 창업자인 제리 샌더스는 로버트 노이스가 인텔을 창업하기 전에 만든 반도체 업체 페어차일드에서 영업이사로 일했다. 페어차일드 시절 샌더스는 활달하고 톡톡 튀는 성격과 화려한 옷차림 때문에 친구만큼 적도 많았다. 그런 그를 감싸준 사람이 노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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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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