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로 찾는 텍사스 데이터센터…中 배터리도 문 두드린다 [허란의 텍사스 인사이드]

허란 2026. 10. 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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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 게일로드 텍사스 컨벤션센터. 데이터센터 전력업계가 모이는 '데이터센터 월드 파워 2026'이 막을 올린 이날 300km 넘게 떨어진 주도 오스틴에서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주 환경품질위원회(TCEQ)에 데이터센터 관련 대기·수질 인허가를 모두 멈추라고 지시했다.

데이터센터가 전력 피크 때 배터리를 돌리거나 연산을 줄여 전력망 부담을 덜어주면 그 대가로 전력망 연결 순번을 앞당겨 받는 방식이다.

한국 정부의 대미 투자 1호인 텍사스 엔시날 가스발전소(6.3GW·223억달러)는 인근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직접 대는 구조인데 정작 전력을 살 데이터센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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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월드 파워 2026' 쇼케이스 모습 / DCWP 2026 홈페이지


지난 9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 게일로드 텍사스 컨벤션센터. 데이터센터 전력업계가 모이는 ‘데이터센터 월드 파워 2026’이 막을 올린 이날 300km 넘게 떨어진 주도 오스틴에서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주 환경품질위원회(TCEQ)에 데이터센터 관련 대기·수질 인허가를 모두 멈추라고 지시했다. 8월 전력망 신규 연결을 동결한데 이어 자체 발전소로 전력망을 비켜 가려던 사업까지 막아선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텍사스를 ‘인공지능(AI)의 진원지’로 내세웠던 애벗 주지사가 유보적으로 선회한 배경에는 11월 중간선거가 있다. 지난 8월 텍사스대(UT) 텍사스정치프로젝트 조사에서 유권자 57%가 거주 지역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했다. 공화당 지지층마저 찬성 45%, 반대 43%로 갈렸다. 지나 히노호사 민주당 후보는 ‘신규 데이터센터 전면 중단’ 공약을 내걸고 애벗 주지사를 추격 중이다.

전력망 운영기관인 텍사스전력신뢰도위원회(ERCOT)의 연결 요청은 474기가와트(GW)로 역대 최대 수요의 다섯 배를 넘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법으로 ‘빅테크 자체 발전’을 내세웠지만 같은 당 주지사가 그 문을 닫은 셈이다.

 ◆ESS·수요 유연성으로 우회로 찾는 업계

정치권이 문을 하나씩 닫는 사이 댈러스 행사장에선 ‘우회로’ 찾기가 한창이었다. 길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전력망을 아예 떠나는 것이다. 발전엔진 업체 베르겐엔진스는 데이터센터 월드파워 기조연설 제목을 ‘전력망 없는 전력’으로 잡았다. 하지만 가스 자가발전도 이번 인허가 동결로 적어도 12월 감사가 끝날 때까지 발이 묶였다.

다른 하나는 전력망에 남되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열쇠는 에너지저장장치(ESS)다. 기조연설에 나선 톰 가번스 구글 부사장은 AI 연산 수요가 1년 새 7배로 늘었다며 비상전원을 전력망 지원 자원으로 바꾸는 전략을 소개했다. GW급 캠퍼스에선 디젤발전기로 감당이 어려워 ESS가 대기전원을 맡고 전력 피크 땐 이 배터리로 전력망 부담을 덜어주는 식이다. 오하이오에 폭염이 닥치면 연산 작업을 멈추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 이른바 ‘워크로드 이동’이다.

전력 수요 조절을 중개하는 볼터스·시파워 등은 ‘자기 용량 지참(BYOC)’ 모델을 소개했다. 데이터센터가 전력 피크 때 배터리를 돌리거나 연산을 줄여 전력망 부담을 덜어주면 그 대가로 전력망 연결 순번을 앞당겨 받는 방식이다.

배터리는 가스터빈보다 인허가 부담이 적고 전력망 연결 협상에서 지렛대가 된다. 다만 스스로 전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막힌 전력망을 뚫는 해법이라기보다 연결을 앞당기는 카드다.

 ◆‘중국 배터리’ 딜레마

문제는 그 배터리를 누가 대느냐다. 지난 9월 UT 에너지심포지엄에서 디인포메이션의 배터리 전문지 ‘디일렉트릭’의 스티브 러바인 편집장은 “미국은 중국산 배터리에 문을 열어야 한다”는 도발적 주장을 폈다. 중국이 장악한 리튬인산철(LFP)은 관세를 일부 매기더라도 싸게 들여와 고부가 산업에 녹이고 정부 지원은 차세대 기술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댈러스 행사장에선 중국 사이넝전기가 배터리에 전력변환장치와 제어 소프트웨어까지 묶은 ESS를 들고 나와 ERCOT 연결 기간을 줄여준다고 홍보했다. 셀을 넘어 시스템을 통째로 팔겠다는 것이다.

워싱턴이 경계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행정명령으로 69kV 이상 전력망에 연결되는 중국 연계 변압기·인버터·ESS를 막을 수 있게 했고 세부 규칙은 12월 말 나온다. 러바인 편집장은 배터리가 네트워크 기술이 아니어서 보안 문제가 아니라고 봤지만 행정명령은 바로 인버터와 제어 소프트웨어를 겨냥한다.

그래도 중국산이 파고들 여지는 남는다. ESS는 데이터센터 투자비의 5%도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관세를 물고라도 싼 중국산을 쓰려는 유인이 크고 전력망과 떨어진 ‘오프그리드’ 데이터센터는 회색지대에 놓일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말까지 북미 ESS 생산능력을 50GWh 이상으로 늘린다. 한국 배터리 3사로선 ‘탈중국 프리미엄’이 유지되는 동안 원가를 끌어내려야 하는 게 숙제다. 러바인 편집장도 한국이 중국의 대안으로 ESS용 LFP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양극재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같은 심포지엄에서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앨빈 캄바 연구위원은 중국이 배터리 음극재인 흑연의 90%를 가공한다며 채굴보다 제련이 병목이라고 경고했다. 소재까지 중국에 기대는 한 프리미엄은 오래가기 어렵다.

 ◆데이터센터 ‘지연’ 아닌 ‘재배치’

그동안 시장은 텍사스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에 주목했지만 실상은 수요의 소멸보다 재배치에 가깝다. 변압기가 대표적이다. 발주 속도는 늦춰질 수 있어도 한국산의 몫은 커질 공산이 크다. 8월 행정명령은 중국산 변압기도 겨냥한다. 변압기 품귀 속에 납기를 줄이려 중국산을 써온 데이터센터들이 한국산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다만 통상 변수는 남는다. 미 상무부는 효성중공업·LS일렉트릭에 4.32%의 반덤핑 관세를 매겼고 두 회사는 지난 9월 미 국제무역법원에 소송을 냈다. 같은 재심에서 HD현대일렉트릭은 0%를 받았다.

구글은 서버 선반(랙) 하나가 1MW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자 서버 전원을 54V에서 800V 직류로 높여 구리 배선을 줄이려 하고 있다. 반도체변압기(SST)를 개발 중인 LS일렉트릭·효성중공업엔 새 기회지만 아직 실적 기여는 미미하다.

대형 발전 쪽 부담은 더 크다. 한국 정부의 대미 투자 1호인 텍사스 엔시날 가스발전소(6.3GW·223억달러)는 인근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직접 대는 구조인데 정작 전력을 살 데이터센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데이터센터 전용 발전소라 이번 인허가 동결의 영향권에 들 수도 있다.

새 전력망 연결과 대형 가스발전에 기댄 사업은 당분간 발이 묶이지만 ESS와 변압기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감사가 끝나면 빅테크 자금이 받쳐주는 사업부터 다시 움직일 공산이 크다. 10월 TCEQ 보고, 11월 선거, 12월 감사, 2027년 1월 주의회가 어떤 사업이 먼저 살아날지를 가늠할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돋보기] 달리는 배터리, 전력망이 될까

UT 에너지심포지엄에서 자오먀오 궈 토목공학과 교수는 전기차를 ‘가상 배터리’이자 ‘가상 송전선’으로 보자고 제안했다. 미국 차량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35마일 남짓이고 차량은 하루의 90% 이상 주차돼 있다. 충전 시간을 조절하면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가 되고 충전 장소를 바꾸면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선 역할을 한다는 논리다. 그의 분석 결과 시카고 쿡카운티 한 곳의 전기차 충전 유연성이 대형 ESS 여러 기에 맞먹었다. 이웃 전력망과의 연결이 제한적인 텍사스엔 특히 솔깃한 얘기다. 궈 교수는 가격 신호로 충전을 분산시키는 시장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봤다.

물론 양방향 충전기 비용 탓에 배터리 용량이 큰 스쿨버스가 아니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당장 데이터센터 전력난을 풀 카드는 아니지만 구글의 ‘워크로드 이동’과 궤를 같이한다. 전기를 옮기든 연산을 옮기든 전력 부족의 해법이 ‘더 짓기’에서 ‘더 영리하게 쓰기’로 옮겨가고 있다.

허란 UT 오스틴 방문연구원(한국경제 기자)

※본 기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방문학자 연구 과정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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