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의 이로운 기술, 다정한 도시] AI 기반 리빙랩으로 도시운영체제를 탈바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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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벨기에의 두 번째 수도라 불리는 안트베르펜에서는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의 연례행사인 '2026년 리빙랩오픈데이즈(OLLD 2026)'가 열렸다.
인공지능 시대의 리빙랩은 기술과 시장, 시민과 행정, 실험과 제도를 연결하는 도시 혁신의 운영체제로 진화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AI 시대에 리빙랩이 도시 운영체제가 되려면 먼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의 개입이 도시의 판단 능력이 되고, 첨단기술이 공동체 문제 해결의 도구가 되며, 기업이 납품자가 아니라 공동투자자가 될 때 리빙랩은 다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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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벨기에의 두 번째 수도라 불리는 안트베르펜에서는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의 연례행사인 '2026년 리빙랩오픈데이즈(OLLD 2026)'가 열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이지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리빙랩'은 단순히 제품을 실제 생활공간에서 실험하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리빙랩은 시민과 사용자, 정부,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이 실제 생활현장에서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만들어 실험하고, 다시 고쳐가는 혁신방법론이다.
ENoLL은 시민과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개방형 혁신 생태계인 리빙랩을 전 세계에 확산하기 위해 2006년 유럽에서 출범한 국제 비영리 독립협회다. 대구시는 대구테크노파크를 중심으로 2019년 ENoLL 멤버 도시로 가입하여 지역기업의 해외 진출 창구로 활용하고, 기업이 사용자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데 리빙랩 방법론을 적용하도록 지원해 왔다. 특히 올해는 유럽연합 연구개발 펀드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유럽 4개국 기관과 대구테크노파크 컨소시엄이 선정되어 도시 국제협력의 새로운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이는 그동안 대구시가 추진해온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와 리빙랩 기반 혁신 지원 경험이 반영된 성과라 할 수 있다.
올해 리빙랩오픈데이즈는 '변화하는 세계를 위한 리빙랩의 영향과 가치'를 주제로 열렸다. 특히 당대의 핵심 키워드인 인공지능에 대한 경각심과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두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인공지능 시대의 리빙랩은 기술과 시장, 시민과 행정, 실험과 제도를 연결하는 도시 혁신의 운영체제로 진화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도시와 시민의 데이터를 해석하고, 기업의 의사결정까지 바꾸는 시대에 도시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시민 참여는 기술의 장식이 아니라, 기술의 방향을 정하는 힘이어야 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시민의 삶에 들어오는 방식을 함께 설계하고, 검증하고, 조정하는 리빙랩을 통해 새로운 거버넌스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정책적으로 소비되어 온 리빙랩에는 어딘지 불편하다. 시민 몇 명을 불러 의견을 듣고, 설문지를 돌리고, 기업 제품을 써보게 한 뒤 사진 몇 장과 만족도 수치를 남기면 리빙랩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행정은 시민 참여라는 절차를 얻고, 기업은 실증 실적을 얻고, 사업은 성과보고서를 얻는다. 그러나 정작 시민은 문제의 공동소유자가 되지 못하고, 기업은 도시문제 해결의 공동투자자가 되지 못하며, 행정은 실험 결과를 제도와 예산으로 연결하지 못한다. 리빙랩 운영자들이 기술 변화와 시대적 담론에 공동으로 대응할 조직적 구심점도 부족하다.
AI 시대에 리빙랩이 도시 운영체제가 되려면 먼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리빙랩은 기술과 서비스를 정해놓고 시민을 실증 대상으로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의 생활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기업과 연구자와 행정이 함께 해결책을 만들며, 실패와 수정을 반복하는 학습 시스템이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이 차이가 더 중요하다. 과거의 기술은 눈에 보이는 제품으로 들어왔다. 센서, 앱, 키오스크, 교통장치처럼 만지고 시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도시 안에 들어온다. 시민 데이터를 분류하고, 수요를 예측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책 방향을 제안한다. 알고리즘은 어느 순간 도시의 보이지 않는 행정관이 된다. 따라서 AI 시대의 리빙랩은 단순한 기술 실증공간에 머물 수 없다. 알고리즘이 시민의 삶에 들어오는 방식을 함께 설계하고, 검증하고, 조정하는 거버넌스 장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리빙랩의 또 다른 확장 형태인 '정책랩(policy lab)'의 운영이 필요하다. 정책랩은 단순히 기술의 효과를 측정하는 곳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초래할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제도적 가이드라인으로 전환하는 정책 실험실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 돌봄 AI가 시민의 일상 데이터를 수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문제, AI 기반 교통 관제 시스템이 특정 지역에 미칠 자원 배분의 불평등 문제는 기술적 보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책랩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위험을 시민들과 함께 논의하고, 규제의 수준을 결정하며, 실증 결과를 조례 개정이나 예산 편성 같은 행정적 제도로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기술 실증을 넘어 정책 혁신을 완성하는 연결고리가 바로 정책랩이다.
나아가 AI 기반 도시 리빙랩이 작동하려면 도시데이터를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통합해야 한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기후위기, 고령화, 돌봄, 교통, 안전, 산업전환 같은 문제는 한 부서의 정책이나 한 기업의 기술로 풀 수 없다. 시민의 경험, 행정의 데이터, 기업의 기술, 대학의 지식, 지역공동체의 신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시민은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문제를 공동으로 정의하는 주체여야 하고, 기업은 단순한 납품자가 아니라 해결책에 공동으로 투자하는 주체여야 한다. 행정은 실증 이후의 제도화와 확산을 책임져야 한다.
리빙랩이란 용어를 사용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그 가치는 더 중요해졌다. 시민의 개입이 도시의 판단 능력이 되고, 첨단기술이 공동체 문제 해결의 도구가 되며, 기업이 납품자가 아니라 공동투자자가 될 때 리빙랩은 다시 진화한다. 이제 리빙랩은 예산 확보를 위해 소비되는 이름이 아니라, 도시 거버넌스의 운영체제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지능도시본부장·유럽리빙랩네트워크 대구창의리빙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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