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갖고 있으라더니” 솔리다임 중복상장···주주가치 보호 시험대
규제 비켜간 해외법인···“중복상장 뒷문 열어준 것”

SK하이닉스가 중복상장 논란에 휩싸였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손자회사인 솔리다임이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추진해 나스닥 상장 수순을 밟고 있어서다. 이번 논란은 대기업의 자회사 한 곳을 미국에 상장시키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이 성사되면 해외 법인을 우회한 중복상장이 타 기업에서도 확산할 수 있다. 해외 자회사 상장은 한국거래소의 직접적인 상장 심사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다. 다만 모회사인 이사회의 주주 보호의무는 사라지지 않아 SK하이닉스 이사회가 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소액주주들은 집단 반발에 나섰다. 소액주주단체인 액트는 10월 1일 솔리다임 미국 상장 재검토를 요구하며 탄원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에 내는 탄원서에는 SK하이닉스 이사회가 상장에 따른 영향을 검토하고 필요한 보호 절차를 적절히 이행했는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조대현 액트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전문위원은 “해외 상장은 국내 거래소의 직접적인 상장심사 대상이 아닌 만큼 회사가 해외 시장을 선택한 사업상 필요성과 국내 상장 시 요구되는 주주 보호 기준을 어떻게 고려했는지를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SK하이닉스가 지난 7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앞두고 미국 투자자들에게 자회사 상장 가능성과 이에 따른 모회사 주가 하락 위험을 알렸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중복상장 할인에 따른 위험 가능성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미리 알린 것으로 핵심 자회사를 별도 상장할 경우 투자자들이 제기할 수 있는 정보공개 관련 분쟁 가능성을 감안한 고지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이닉스 “모든 판단 기준은 주주가치 우선”
앞서 최근 주요 외신들도 솔리다임이 내년 미국 상장을 목표로 주관사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을 잇달아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9월 말 솔리다임이 투자은행(IB)과 이른바 베이크 오프(bake-off)라고 불리는 상장 주관사 제안 회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솔리다임은 2021년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미국 법인이다. 올해 초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설립한 투자 자회사 AI(인공지능) 컴퍼니의 자회사가 됐다. IB업계는 솔리다임의 기업가치가 최대 1500억달러(약 204조원)로 평가받을 수 있으며, 150억달러를 조달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에선 솔리다임 상장을 위한 조건과 방식, 시점을 조율하는 사전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복상장 논란이 확산하자 SK하이닉스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주주가치 희석 우려에 대해선 “모든 판단의 기준은 장기적 주주가치로, 주주보호 방안을 함께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외부 자본 활용 방안은 기존 주주의 경제적 가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살펴 판단해야 한다”며 “자본 활용에 따른 효과와 자금 조달의 재무적 영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솔리다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자금 조달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인수 후 낸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수년간 수조원의 적자로 부담을 떠안았다. 그러다 AI 열풍 확산으로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기업용 SSD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극적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현재는 제품 수요가 폭증해 미국 뉴욕주에 낸드플래시 생산 거점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수년간 낸드 불황으로 대규모 적자를 감내해온 SK하이닉스 주주들은 솔리다임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시점에 외부 투자자가 지분을 확보할 경우 기존 몫이 줄어들 수 있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성장 재원 확보와 별개로 기존 주주가 가져가야 할 솔리다임의 경제적 가치가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다.

자본시장 역사상 유례없는 복잡한 지배구조도 주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SK그룹의 반도체 지배구조는 지주회사인 SK㈜에서 출발해 중간지주사 SK스퀘어, SK하이닉스로 이어진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설립한 투자법인 AI컴퍼니를 거쳐 솔리다임에 도달하는 다단계 수직계열화 구조가 만들어진다. 상위 3개 기업은 한국거래소에 상장됐고, SK하이닉스는 미국 시장에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해 상장됐다. 이런 기형적 구조의 맨 밑에 있는 솔리다임이 상장하면, 하나의 사업 가치를 두고 5곳의 상장사가 다단계로 얽히는 ‘5중 상장’이 된다.
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금은 5단 중복상장을 모색할 때가 아닌, SK㈜–SK스퀘어–SK하이닉스 3단 중복상장 해소를 고민할 때”라며 “공정거래법의 3단 제한 규제를 피하려 해외법인으로 지배구조 피라미드를 확장하는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수출하는 행위”라고 비판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자본시장 주주들에게는 ‘중복상장 포비아’가 있다. 과거 핵심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상장시켰던 LG화학의 대표적인 선례처럼, 모회사의 핵심 성장 동력이 분리돼 독립 상장할 때마다 모회사 주가는 심각한 지주사 할인을 적용받았다.
다만 솔리다임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로부터 인수한 회사이기 때문에 물적분할은 아니다. 하지만 알짜 사업을 별도로 상장해 기존 주주 몫을 줄이는한국적 관행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년간 솔리다임 적자 감내한 주주들 반발
증권가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토스증권은 “솔리다임 분할 상장은 기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불리한 이슈”라고 평가했다. 솔리다임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현금흐름은 대부분 SK하이닉스의 연결 범위 안에 있었지만, 별도 상장 후에는 경제적 가치를 외부주주와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현금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전달되는 경로도 길어진다. 솔리다임이 별도 법인으로 상장하면 솔리다임에서 발생한 현금은 해당 법인에 남고, 배당 등 별도의 자본거래를 거쳐 상위 회사로 이동해야 한다.
이영곤 토스증권 리서치센터장은 SK하이닉스의 자금 사정을 감안하면 솔리다임 상장 목적을 단순히 투자재원 확보로만 보기 어렵다고 봤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역대급 영업이익을 창출했고, 미국 주식예탁증서 발행으로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투자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영곤 센터장은 “SK그룹은 SK하이닉스가 창출하는 막대한 현금과 기업가치를 그룹 전체에서 활용하고 싶어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며 “그래서 SK하이닉스의 사업부를 분리해 AI컴퍼니 아래에 배치하고 여기에 다른 SK 계열사들이 자본을 참여시키는 구조를 택할 수밖에 없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반면 솔리다임 상장이 오히려 SK하이닉스의 재무 부담을 덜어주는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래에셋증권은 “M&A(인수·합병) 투자금 회수 및 후속 투자재원 확충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모집할 경우 약 150억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솔리다임이 미국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SK하이닉스는 현금 유출 없이 미국 내 낸드·SSD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솔리다임 SSD 사업 중 엔터프라이즈용 고성능 제품은 대부분 하이닉스 본사 설계와 생산기술을 활용해 솔리다임 지분 일부가 외부로 출회되더라도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규제 사각지대 속 닉스 이사회 역할 관심
향후 관건은 신주와 구주의 배분 구조와 SK하이닉스의 경제적 지분이 얼마나 낮아지는지, 계열사들의 지분 참여 구조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솔리다임의 해외 상장을 통제하는 SK하이닉스 이사회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자회사가 별도 상장으로 분리되거나 신주 발행으로 모회사의 지분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사회가 어떤 보호 방안을 내놓을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부터 시행된 중복상장 관련 거래소 규정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장 모회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비상장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이사회에 5대 의무를 부과한다. 주주에게 미칠 영향 평가와 주주보호 방안 마련, 상장 찬반 결의와 자회사 통지, 관련 공시 등이다. 이는 자회사가 해외 거래소에 상장하는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 교수)은 “대기업들이 국내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 (상장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솔리다임 상장이 현실화하면 다른 기업에게도 뒷문을 열어주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단기적으로는 이사회가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주주들이 이사회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도입으로 주주가 소송할 근거는 있지만, 미국 자회사가 그런 행위를 할 경우 한국에서 어떤 제어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만큼 제도적으로 명확하게 만들어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SNS 좀 적당히? 너 유인물 뿌릴 때 기억안나”…‘집행위원장 이재명’의 꿈은 ‘이장’
- ‘팩트 보여달라’에 ‘맞다·아니다 답하라’…한동훈·곽상언 설전, 누가 맞나
- 보수단체들 유해진 집 앞 집회···관객들 관심은 더, ‘암살자(들)’ 200만 돌파
- “싸다고 일본에서 사 왔는데”…‘스시자로’ 잘못 썼다간 구토·복통
- ‘검찰 선배’ 박균택 “‘검사 한동훈’ 언론에 수사 기밀 흘려 여론화···피의사실 공표 밥
- 조국 “유해진, 북한상 아니라 의병상···70대 관객 ‘박통 시절 저랬지’ 반응”
- 진중권마저도 “주진우 유치해서 못봐주겠네···요새 얼마나 추해졌는지”
- “남은 회, 내일 먹어도 될까?”… 안전한 보관법과 상식
- “국감에서 말하겠다”던 조희대, 나흘 만에 국감 증인 불출석 의견서 제출
- 이억원 “AI활용 해킹 가능성 배제 못해…최고 수준 경각심 가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