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세계대전은 할부로 온다”…전장에 간 기자 4인의 증언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10월 이스라엘-가자 전쟁, 2026년 2월 미국-이란 전쟁. 4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3개의 전쟁이 잇달아 벌어졌다. 지역 내 분쟁으로만 보기 어려운 장면도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는 북한군이 투입됐고, 중동 내 역학관계는 이번 전쟁으로 뒤바뀌고 있다. 경제제재와 무역로 통제, 에너지 가격 급등 등 세계가 함께 치러야 하는 전쟁 비용의 청구서도 각국에 날아들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사석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할부로 오고 있다”고 했다.
한국 역시 전쟁과 무관한 나라가 아니다. 최근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으로 불거진 외교 갈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파병 압박은 한국이 전쟁 여파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동시다발적인 전쟁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전쟁 현장을 직접 취재한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최근 전쟁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전쟁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전쟁의 고통은 이를 직접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동시에 각국의 선전전이 격렬해지면서 같은 사건도 누구의 언어로 설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전쟁이 된다. 주간경향은 무력충돌이 진행 중인 지역에서 현장을 취재한 언론인 4명에게 그들이 본 전쟁의 모습을 들었다.
북한군 포로가 “맑은 하늘 보고 싶다” 했던 이유
“밖에 나가서 운동을 못 한다고 하더라.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고. 그 부분을 수용소 측에 전달했더니 다행히 들어준 것 같다.”
김영미 국제분쟁전문PD는 9월 18일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북한군 포로들의 근황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인 9월 23일(현지시간) 김 PD는 두 포로가 한국으로 송환됐다는 소식을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들었다. 지난 1월 이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보도된 지 8개월 만이었다.
송환은 두 사람의 신병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월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러시아전 참전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송환 사실을 공개했다. 러시아 언론은 이재명 대통령이 “누군가의 생명, 국익을 생각하면 이처럼 잔인하고 무책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한 것을 우크라이나 비판의 근거로 썼다. 두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선전전에 이용한 것이다.
이는 김 PD가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향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처음 우크라이나로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프로파간다가 너무 강해서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라고 말한 바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과 선전전 속에서 끊임없이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PD가 현장에서 본 것은 선전 뒤에 가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민간인들의 고통이 더 심했다”며 “그 생명을 논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PD는 특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에 주목했다. 김 PD가 만난 우크라이나 학생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고 했다. 자신의 의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다. 경보가 울려도 체념한 듯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과 무관한 전쟁도 아니었다. 그는 “대부분의 종군기자들은 자기네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취재한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선 정보의 사각지대가 생긴다”며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는 현대전 양상과 이 전장에서 습득한 전투 경험을 가지고 돌아가는 북한, 이 두 측면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군 포로 인터뷰는 한국의 시각에서 이 전쟁을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는 해외 언론과의 경쟁에서 “대한민국 언론이 그들의 안위를 알고 싶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헤어질 때 그들이 김 PD를 “엄마 같다”고 하는 장면에서 국내 여론도 반응했다. 외신이었다면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을 터다. 인터뷰가 공개된 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송환을 촉구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등 국내에서도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김 PD는 최근 세계 상황을 전쟁의 일상화로 설명했다. 그는 “지금 세태를 보면 전쟁이 유행이 됐다. 국제법도, 국제적 규범도 다 필요 없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대한 전쟁을 서슴없이 하는 시대가 됐다”며 “과거 1,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런 전쟁의 끝은 죽음뿐이라는 인류의 결론과 방지장치들이 100년도 채 되기 전에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선 전쟁이라는 위협을 국제정세 소식 중에서도 가능한 빨리, 자세히 알아야 국력에 도움이 된다”며 “인류애, 철학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드론 요격함 옆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우크라이나 북동부 최전선 포로교환식을 취재한 적이 있다. 거기에 실종자 가족들이 다 밀고 들어와서 돌아온 사람들을 붙잡고 절규하고 오열하고 그러면서 자기 남편, 아들, 친구들 소식을 물어본다. 그걸 눈앞에서 직접 보는 건 폭탄테러로 신체가 다 산산조각 난 시신을 보는 것보다 더 힘들다. ‘이게 진짜 전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철영 KBS 기자는 20년 넘는 분쟁지역 취재 중 가장 충격적인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눈앞에 내리꽂히는 미사일도,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도, 팔다리를 잃은 군인도 아니었다. 금 기자의 기억에 남은 건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상실의 고통이었다. 금 기자는 “영상으로도 찍었지만 그 광경과 당시의 분위기는 현장에서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영상에 쉽게 담기지 않는 비극은 또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지 5년째다. 슬픔이 일상의 일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금 기자는 수도 키이우 거리에 꽃가게가 많이 연 것을 보고 처음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꽃 사랑이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니었다. 금 기자는 “알고 보니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꽃을 파는 거였다. (전사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라며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걸음만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거기엔 전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키이우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드네프르강엔 저녁이면 배가 뜬다. 유람선이 아니라 드론을 요격하는 무인함정들이라고 한다. 무인함정을 곁에 두고 키이우 시민들은 강변에서 짧은 여유를 즐긴다. 밤 11시면 다시 통행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2~3일 간격으로 키이우 어느 곳에는 미사일이나 드론이 날아든다. 그러나 오랜 전쟁 속 공습경보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는 무뎌졌다. 폭발음으로 고막이 터져도 병원에 입원이 안 된다. 더 위중한 부상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전쟁이 남 이야기인 사람들도 있었다. 정·재계 유력인사의 자식은 전시 필수물자 생산을 위한 사업장에 채용돼 병역을 피했다. 심지어 해당 사업장에 출근하지도 않고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적만 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금 기자는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처럼 ‘올리가르히’(신흥 재벌)가 있는데 그런 계층의 아들 중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며 “사람 사는 게 참 똑같다”고 말했다.
금 기자는 여러 전장을 오가면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체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항구도시 오데사와 흑해를 러시아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점에 주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력을 집중한 러시아가 친러시아 성향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아사드 정권은 2024년 붕괴했고, 시리아 내 러시아의 영향력과 방공망이 약해지면서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군사적 여건이 만들어졌다.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전쟁의 파장이 다른 전장의 힘의 균형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누구의 언어로 전쟁을 읽는가…테러와 저항 사이
같은 전쟁도 누구의 언어로 설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전 성공회대 겸임교수이자 정치학 박사인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외신 중심의 전쟁보도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동 분쟁의 경우 종교나 테러라는 틀로만 설명하면 갈등이 발생한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맥락을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서 ‘팔레스타인·아프가니스탄·이라크 테러리스트’ 등으로 무작정 몰아붙이는데 그쪽 사람들 시각에서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했다. 스테디셀러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의 저자이기도 한 김 기자는 지난 20여년간 팔레스타인·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 등 20여개국 분쟁 현장을 취재했다.

김 기자는 2002년 5월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지도자 아흐메드 야신을 인터뷰한 경험을 예로 들었다. 당시 야신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알고 있는데 한국의 저항 운동 세력을 당신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느냐”라고 되물으며 “우리의 저항을 테러라고 한다면 그건 이스라엘에 의한 국가적 테러에 맞선 균형”이라고 말했다고 김 기자는 전했다. 김 기자는 무장행위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당사자들이 어떤 역사적 경험과 논리로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지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전쟁을 종교적 대립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반대했다. 그는 “전쟁의 원인을 종교의 차이로 얘기하는 건 잘못됐다”며 “전쟁이 나서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있다. 무기 상인도 있을 테고, 무기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또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쟁을 지속함으로써 누가 이익과 손해를 얻는지까지 봐야 한다는 의미다.
참상과 피해를 외주 주는 사람들
“여기에 있다 보면 텔아비브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참상과 피해를 외주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서 전쟁을 계속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 한 언론사 중동 특파원인 A 기자는 중동에 머물며 느낀 전쟁의 특징을 이같이 요약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과 전쟁을 지지하거나 결정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A 기자는 이스라엘이 느끼는 중동 내 고립감 역시 전쟁을 지속하는 여론을 만든다고 봤다. 그는 “이스라엘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왕따’라고 생각하고, 유대인·약자라는 생각을 한다.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얕보일 거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별개로 안보 문제에는 강경한 대응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설명이다.
A 기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중동 내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호르무즈 파병 문제만 해도 역내 역학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며 “미국-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질서가 계속 바뀌고 있고 미국에 대한 여론도 안 좋아지고 있다. 특히 걸프지역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완전한 의존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중동 취재가 중요해지는 상황이지만 한국 언론의 취재는 녹록지 않다. 당장 외신들은 전쟁 당사국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 언론은 외교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것부터 난항이다. 외교부의 여행금지구역 지정이 현지의 달라진 사정을 빠르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A 기자는 “현지에서 느끼는 위험과 외교부에서 지정하는 여행금지구역 사이에 괴리가 있다. 외국인 유튜버들도 자유롭게 다니는 곳이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되는 식”이라며 “현장 가서 직접 조사하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보니 취재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표적이 돼도 전장으로 향하는 이유
전쟁을 기록하는 일 자체도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언론 자유를 위한 국제기구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언론인 대상 폭력과 관련한 주간경향의 질의에 “가자지구에서 기자들은 이스라엘군에 의해 조직적이고 표적화된 공격 속에 살해됐다”며 “이스라엘군이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총 약 200명의 기자를 살해했으며, 그중 64명은 의도적으로 혹은 취재 중에 살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했다.
마르탱 루 국경없는기자회 위기데스크 팀장은 주간경향에 “기자의 안전은 최우선 사항이며, 이는 일차적으로 기자 본인과 소속 언론사의 책임”이라면서도 “다만 이런 안전 요건이 기자의 본질적 임무 수행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RSF는 전쟁을 취재하는 동시에 그 피해자가 된 현지 기자들을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등 분쟁지역 취재를 준비하는 언론인을 위한 실무 가이드도 제공하고 있다.
왜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가야 할까. 전쟁이 첨단화될수록 인간성은 설 곳을 잃고, 피해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김영미 PD가 만난 북한군 포로의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는 말은 전쟁 당사국들의 공식 발표자료에선 생략되고, 금철영 기자가 본 키이우의 꽃집이나 실종 장병 가족들의 울음소리도 소거된다.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언론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루 팀장은 “전시에 언론은 훗날 정의가 실현되고 평화가 이뤄지는 데 쓰일 증거를 수집한다”며 “‘내일의 역사’를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언론은 역사에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지속되는 인간성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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