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념 넘어 ‘통합’으로… 노무현의 꿈은 조금씩 전진한다”[월요인터뷰]

김헌주 2026. 10. 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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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말과 글을 기록하는 걸 일생의 업으로 삼은 윤태영(65)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최근 들어 노 전 대통령이 꿈에 나타나는 빈도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했다.

"2007년 말쯤 어느 식사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내가 대선에서 떨어졌으면 뭐 하고 있었을 것 같나'라고 저한테 물어보셨다. 그래서 제가 '부산에서 또 도전하셔서 이번엔 당선되시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표정이 확 밝아지시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네'라고 하시더라. 부산에서 당선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셨던 거 같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지역구도 정치, 국민 통합 절반은 해결된 거야'라고 생각하셨는데 임기 말에는 '거의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좌절하셨다. 하지만 지역구도는 많이 허물어지지 않았나. 부산에서 전재수 시장이 50%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치인 노무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의 득표율 아닌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본다."

1988년 의원 보좌관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처음 맺은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까지도 그의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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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평전’ 펴낸 윤태영 전 靑비서관

‘盧사관’이 기록한 미완의 꿈

부산 당선 도전에 통합 열망 담아
영호남 함께한 민주진영 복원 꿈
여론 타협 않고 긴 안목으로 정치
홀로 짊어졌던 대연정의 꿈

참모들도 대연정 낯설어 해 고독
지역주의·대립 정치 극복에 매진
개헌은 정치 개혁의 마지막 도전

노무현의 말과 글을 기록하는 걸 일생의 업으로 삼은 윤태영(65)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최근 들어 노 전 대통령이 꿈에 나타나는 빈도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했다. 그의 생전 삶을 다룬 책 ‘노무현 평전’을 펴내며 그간 짊어졌던 부담을 털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윤 전 비서관은 “아직도 노 대통령 말씀 속에서 벗어난 게 아닌데 희한하다”고 했다. 그래도 가끔 꿈에 나타난 노 전 대통령은 항상 쿨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재임 시절 수많은 위기에 몰렸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참모의 기억 속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던졌던 정치인’으로 남아 있었다. ‘노무현의 사관’, ‘노무현의 필사’로 불리는 윤 전 비서관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됐다. 그는 “노무현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통합”이라면서 노무현의 꿈이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무현 평전’을 펴낸 윤태영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 전 비서관은 “대통령은 대통령의 스케줄, 대통령의 시야에서 바라본다”며 “당정 간 입장이 상충되는 걸 조화시켜 내는 것도 정치력”이라고 말했다. 안주영 전문기자

-평전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어떻게 이겨냈나.

“책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면 초반 5년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유로웠다. 그 후 3년은 거의 매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산책할 때마다 ‘나는 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2년은 다시 집중해서 완성할 수 있었다. 내가 이것조차 못 하면 어떡하나라는 사명감 그리고 주변의 압박이 여기까지 이끈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기록을 중시했던 것 같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그의 말과 행동을 공식이든, 아니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셨다. 어쨌든 역사니까. 그게 자신을 스스로 긴장시키는 방법이기도 하고. 저한테 (이건) ‘적지 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

-추석 연휴 전 부산에서 북콘서트를 했다. 노무현에게 부산은 특별한데.

“2007년 말쯤 어느 식사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내가 대선에서 떨어졌으면 뭐 하고 있었을 것 같나’라고 저한테 물어보셨다. 그래서 제가 ‘부산에서 또 도전하셔서 이번엔 당선되시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표정이 확 밝아지시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네’라고 하시더라. 부산에서 당선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셨던 거 같다.”

-추석 앞두고 청와대에서 여당 의원들에게 평전을 나눠줬다. 통합의 의미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도 통합을 강조했는데.

“노 대통령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통합이다. 1988년 정치를 시작했을 때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가 영남과 호남에서 각각 주축이 돼 함께 민주 진영을 이끌던 그 시대로의 복원을 꿈꾸셨다.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듯 분열된 야당으로는 집권이 어렵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걸 굉장히 중시하셨다.”

-노 전 대통령이 뿌린 씨앗이 결실을 맺고 있나.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지역구도 정치, 국민 통합 절반은 해결된 거야’라고 생각하셨는데 임기 말에는 ‘거의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좌절하셨다. 하지만 지역구도는 많이 허물어지지 않았나. 부산에서 전재수 시장이 50%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치인 노무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의 득표율 아닌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본다.”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까다로운 현안이 많았다. 어떻게 돌파했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다 성공했던 게 아니다. 특히 임기 초 검사와의 대화는 대화와 타협으로 검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부작용이 매우 컸다. 이라크 파병, 한미 FTA를 추진할 때도 지지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 대통령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게 얼마나 성공을 거뒀는지에 대해선 지금 당장 평가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그다음 정부들에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더 컸다.”

‘노무현 평전’

-낮은 지지율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쉽게 공감하는 법이다. 임기 초 지지율이 높을 때 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지율이라는 게 개혁 추진과 함수 관계가 있긴 한데 노 대통령은 지지율 관리를 좀 안 하시는 편이었다.”

-지지율을 관리해야 국정 동력이 생기는데 왜 그랬을까.

“여론과의 일시적 타협을 거부하셨다. 지지율을 올리려고 일부러 이벤트를 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긴 안목으로 국정 운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어젠다를 제기할 때마다 지지율이 참 많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이 또 나와서 시끄럽게 하네’ 이런 식으로 반응하니 점점 (지지율 하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하여튼 지지율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한편으론 그게 존경스러운 측면이었다.”

-대통령의 말이 논란이 되곤 했다.

“대표적인 게 ‘대통령직 못 해 먹겠다’는 말이다. 당시 전후 사정 따져보면 굉장히 비유적인 말인데 어쨌든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사람들한테는 놀라움을 준 거다. 서민적 언어를 많이 써 권위주의를 던진 소탈한 대통령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통령이 너무 품위 없이 말하면 안 돼’라는 반론이 꽤 컸다. 탈권위에는 성공했지만 언어적 측면에선 많은 아쉬움을 남기셨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가장 힘들어했던 순간은.

“아무래도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다. 평소엔 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풀어놓는 분이셨다. 그런데 대연정만큼은 당신이 앞서 나가셨다고 생각했는지 섣불리 말씀을 안 하셨다. 그때 좀 고독하셨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지금 대연정? 왜 이 말씀을 하시지?’ 이런 반응이다 보니 당신 혼자만의 과제가 됐던 거다.”

-대연정 구상이 실현됐다면 정치 환경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노 대통령이 여권 수뇌부 모임에서 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보도한) 서울신문 특종<2005년 7월 4일 자 1면>을 부인해 버렸으면 대연정 논의가 그냥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열차(대연정)가 출발할까, 말까 하는 사이에 기사에 나오니 폭발력이 생긴 거다. 노 대통령도 ‘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거다. 무산됐지만 그해 7~8월 정치권도, 언론도 대연정 공부는 확실히 했다.”

-논의의 장이 마련되지 못한 게 아쉽다.

“미리 단계적으로 말씀하셨다면 정치적 타격은 좀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까운 참모부터 점점 범위를 넓혀갔으면 중간에 폐기됐거나 대연정까진 안 가더라도 ‘어느 단계까지는 가자’ 그런 변형된 모습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워낙 큰 사안이고 한국 정치를 크게 한 번 바꿔 보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임기 말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노무현에게 개헌은 어떤 의미였나.

“임기 초반 여소야대 국면일 때 ‘총리 지명권을 다수당에 주겠다’, ‘권력을 나눠서라도 국정 운영에 안정을 기하겠다’라는 기본 철학이 있었다. 대연정까지 무산돼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정치 개혁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 거니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개헌이었다. 대선과 총선이 거의 동시에 실시되면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면서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나 안정성을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다. 개헌은 대선 때 공약이고, 실현이 안 되더라도 이 시기에 제안을 하는 게 당신의 의무라는 생각이 강하셨다.”

-이 평전을 젊은 세대가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대기를 담아내려다 보니 분량이 많아지면서 가격도 비싸졌다. 자라나는 세대를 키우는 부모들이 책장에 평전을 꽂아 주시면 자녀들도 접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한국 현대사다. 역사적 격동기를 살아온 정치인이니까 그런 장면을 보면서 노무현을 조금씩 알아갔으면 좋겠다.”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1988년 의원 보좌관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처음 맺은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까지도 그의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했다. 1961년생으로 대신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보좌진으로 일했고, 출판사로 자리를 옮긴 뒤 노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출간 작업에 참여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대변인,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집필팀으로 일하며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여러 출판물을 함께 준비했다. 지은 책으로는 ‘대통령의 말하기’, ‘기록’, ‘바보, 산을 옮기다’ 등이 있다. 창의적인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20년을 앞두고 영화,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김헌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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