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수임료 들여 “위법 증거” 주장… 결국 ‘유전무죄’ 무기로 변질
전관 변호사와 대형로펌 선임하고
수사 남용 막는 원칙을 역으로 악용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주장하는 데는 시간과 돈이 든다. 수사기관의 압수수색부터 수사 과정을 전부 되짚으며 법리를 치밀하게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판·검사 출신 등 전관(前官) 변호사나 대형 로펌 정도 돼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위법 수집 증거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피고인의 방어 무기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2022년 경기 지역 경찰관 2명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이 있다. 이들은 1심에서 범죄 용의자에게 수사 기록에 담긴 증거 등 수사 정보를 알려준 혐의가 인정돼 각각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항소심에서 고등법원 판사 출신과 18년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한 변호사를 새로 선임하고선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은 애초 A씨의 허위 세금계산서 사건을 수사하다가 경찰관 2명이 A씨에게 비밀을 누설한 혐의를 추가로 포착해 기소했다. 증거는 A씨에게 제출받은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통화 녹음 파일이었다. 이 파일엔 한 경찰관이 알고 지내던 A씨에게 “사건 기록 사진을 봤는데 형은 (수사 대상에서) 빠졌어”라고 말하고 수사 대응 방안을 조언해주는 대화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기소된 경찰관들은 항소심에서 이 통화 녹음은 수사기관이 세금계산서 사건의 압수수색을 마친 뒤 삭제했어야 할 정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지난 6월 무죄를 확정했다.
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이 재판에서 위법 수집 증거를 문제 삼으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폭력 등 일반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낮추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형량을 낮추기보다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이 중요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기업인들은 다르다. 선출직 공직자는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 일반 형사 사건에서 금고형 집행유예만 확정돼도 직을 잃는다. 한 법조계 인사는 “정치 생명이 걸린 정치인들은 무죄를 받기 위해 수사기관이 제출한 핵심 증거를 통째로 무효화하려는 재판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수천 쪽 분량의 수사기록에서 수사기관이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 범위를 벗어나 압수수색을 했는지, 포렌식 단계별로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했는지 등을 확인하려면 상당한 품이 들어 변호사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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