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남편 꿈 뒷바라지했더니...아내 암투병에 지방으로 도망갔다[이수진의 이혼 이야기]

"당신이 일하는 게 맞지"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한 달 앞둔 겨울, 한참 말 없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1학년은 점심을 먹고 나면 하교합니다. 혜원 씨는 그 1년만큼은 자기가 직접 아이 곁에서 챙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혜원 씨는 대기업 10년 차 과장이었고, 그해 성과급을 더한 연봉은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두 배 가까이 됐습니다. 남편의 직장은 휴직을 해도 자리가 그대로 남는 곳이었습니다. 주말 아침이면 남편이 팬케이크를 굽고 혜원 씨가 설거지를 하던 집이었습니다. 남편은 3월에 육아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2학년이 됐지만 남편은 복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고 싶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휴직을 연장하고 웹소설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연재 페이지는 혜원 씨 휴대폰 즐겨찾기에 들어 있었습니다. 새 회차는 2주에 한 번 올라오다가, 어떤 달은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혜원 씨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팀에서 가장 큰 실적을 낸 사람이 혜원 씨였고, 일이 곧 꿈인 사람이었습니다. 남편도 혜원 씨처럼 자기 꿈을 향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해 가을 혜원 씨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뒤 항암치료를 8회 받아야 했고 회사에는 병가를 냈습니다. 치료가 길어지면 혜원 씨의 월급이 끊긴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알았습니다. 혜원 씨는 남편에게 언제까지 쉴 건지, 회사에서 따로 연락은 없는지 몇 번이고 돌려 물었습니다. 남편은 그때마다 한 숨을 내쉬며 자리를 떴습니다. 같은 대화가 몇 주를 오갔습니다. 12월 말, 남편이 복직하겠다고 했습니다. 혜원 씨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며칠 뒤 남편이 말했습니다. "지방으로 신청했어." 복직하면서 지방 사업소 전보를 함께 신청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로 두 시간 거리였습니다. 이유는 또 꿈이었습니다. "일하면 쓸 시간이 없잖아. 조용한 데 가서 쓰려고." 항암이 시작된 1월, 남편은 짐을 싸서 내려갔고 주기로 했던 생활비는 끊겼습니다. 항암 치료 2회차부터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고 지방에 사는 친정어머니가 올라와 혜원 씨를 돌봤습니다. 그해 봄까지 남편이 서울 집에 온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바람을 피운 것도, 때린 것도 아닌데 이혼이 되나요?" 혜원 씨가 제게 처음 건넨 말이었습니다. 저는 발령이 회사의 명령이었는지, 남편의 신청이었는지부터 물었습니다. 신청이었습니다. 1월 이후 통장에 남편 이름으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저는 내역서를 덮으며 말했습니다. "됩니다. 아픈 배우자를 두고 떠나는 사건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민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배우자를 버려두는 것도 이혼 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소설 쓸 시간은 그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소장이 송달되고서야 남편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혜원씨가 만남을 거부했지만 다짜고짜 집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혼은 못 해. 난 잘못한 게 없어." 혜원 씨는 현관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아빠 없는 자식으로 만들 거냐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남편이 내려간 뒤로 아이의 등굣길을 챙긴 사람은 외할머니였습니다. 혜원 씨는 소송이 이어지는 사이 다행히 마지막 항암을 마쳤습니다.
재판부는 혜원 씨의 이혼 청구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남편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항소했고 끝까지 가겠다며 상고도 했지만 모두 패소했습니다. 가족은 방치하면서 이혼은 싫다던 남편. 그에게 혜원 씨와 가족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수진 변호사·법무법인 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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