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무기’ 내세운 韓, ‘필요하고 사고 싶은 무기체계’ 내세운 獨 

송학 행정학 박사·한국방위산업학회 부회장·전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장 2026. 10. 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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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역대 최대 규모의 방산 수주로 기대를 모았던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에서 한화오션이 독일의 TKMS에 패했다.

총 사업비는 약 435억 캐나다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조 원에 달하는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획득 사업이다.

두 잠수함 모두 캐나다 해군의 요구 수준에 만족하는 우수한 무기체계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잠수함 같은 무기체계는 자동차처럼 가격표만 보고 사는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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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캐나다 잠수함 사업 통해 본 ‘K-방산 중흥’ 조건

● 가격·성능·납기 다 갖췄는데… 왜 캐나다는 독일 택했나
● 60조 원 캐나다 잠수함 도입 사업 獨에 패배
● 노르웨이·호주·루마니아·폴란드…‘K-방산’ 잇따른 고배
● 8000억 원 싸고 배수량 우위, SLBM 자랑한 韓
● 獨, NATO 잠수함 공급 실적, 기술지원 ‘승부’
● 싸고 좋은 무기 내놓은 韓, 필요한 무기 판매한 獨
● 세계 방산 시장은 운용 경험, 후속 지원, 동맹 등 복합 작용
● 가격·성능·납기로는 승자 못 돼…“수출 전략 수정 필요”
● 많이 파느냐보다는 어떤 조건 지속 공급하느냐
● 韓 ‘가성비 신화’ 벗어나 기술·지원·금융·동맹 재설계해야

도산안창호함(KSS-III)이 5월 한국-캐나다 해군 연합협력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캐나다 빅토리아 에스퀴몰트 해군기지에 입항하는 광경. 해군
지난 7월 역대 최대 규모의 방산 수주로 기대를 모았던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에서 한화오션이 독일의 TKMS에 패했다. 최근 한국 방위산업의 성적표를 살펴보면 세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는 언론보도에 비해 그 결과는 마뜩지 않다. 

2023년 2월 노르웨이 신형 주력전차 사업에서 현대로템의 K-2 전차가 탈락한 이후 2024년 11월 호주 해군 호위함, 2025년 11월 폴란드 차세대 잠수함, 2026년 5월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 2026년 6월 프랑스 다연장로켓체계 등 대형 신규 사업에서 연패를 기록했다. 총액으로 따지면 100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수출 기회를 놓친 것이다.

패인에 관한 분석도 다양하다. 대부분 우리 무기체계가 가격과 성능, 납기에서는 뒤지지 않았지만 '정치·제도와 지정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탓이라고 한다. 정말 그뿐일까. 필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국 방위산업계는 '좋은 무기'를 만드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사고 싶은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정황을 좀 더 세밀히 분석하고 준비했다면 결과를 예측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캐나다가 잠수함 12척 서두른 이유

캐나다는 대서양·태평양·북극해 등 3대양과 접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북극권 영토만 약 400만㎢로 국토의 약 40%에 달한다. 3만6000개가 넘는 섬과 약 24만3000㎞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해안선을 가진 나라다. 그런데 해군력은 이에 걸맞지 않다. 캐나다 해군의 병력은 약 8400명, 전투함은 약 50척 수준이며 대부분 초계함과 연안 방어 임무를 수행한다. 

한국의 해군이 약 6만8000명, 군함이 약 150~200척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영토에 비해 규모가 작은 해군이다. 잠수함은 1998~2003년 영국에서 도입한 빅토리아급 4척이 전부다. 취역한 지 30년에 가까운 구형 함정인 데다 정비 문제까지 겹쳐 가동률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과거에는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연방 핵심 국가인 캐나다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강력한 동맹국의 해양 전력에 의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동맹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과 자국 방위 책임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캐나다도 더는 미국의 안보 우산에 기대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러시아의 북극 군사력 강화와 중국의 극지 활동 확대가 겹쳤다. 북극해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는 북극권에 군사기지를 확대하고 냉전 이후 폐쇄했던 6개 기지를 재개방해 전함과 잠수함의 모항으로 운용하는 한편 핵추진 쇄빙선과 잠수함, 전략폭격기,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 역시 2018년 '중국의 북극정책 백서'를 통해 '북극 인근 국가'라며 북극 지분과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캐나다는 북극해를 지킬 잠수함이 필요하다. 2024년 4월 당시 캐나다 정부는 '우리의 북쪽을 강하고 자유롭게(Our North, Strong and Free)'를 내걸고 국가안보 강화 전략의 일부로 해군 잠수함 전력 현대화 사업이 포함된 종합국방정책(DPU)을 발표했다. 같은 해 7월 빌 블레어 국방부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기간 중 재래식 잠수함 12척을 해외에서 도입하는 계획을 공식화했는데 이것이 CPSP다.

총 사업비는 약 435억 캐나다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조 원에 달하는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획득 사업이다. 캐나다가 제시한 핵심 요구 사안은 명확했다. △스텔스(stealth) △지속성(persistence) △치명성(lethality) 확보다. 디젤 공격잠수함(SSK), 약 6000해리(1만1112㎞)의 항속거리, 결빙 해저 작전 능력, 미 해군 버지니아급 잠수함(원자력잠수함)과의 상호 운용성, 그리고 판매국 해군의 풍부한 운용 경험과 안정적인 후속 군수지원 능력을 요구했다.

독일 TKMS의 잠수함 Type 212CD의 개념도. TKMS 홈페이지

KSS-III, 캐나다엔 '과잉 성능'…누가 더 안전한 선택인가

최종 경쟁에는 한화오션의 도산안창호급 잠수함(KSS-III)과 독일 TKMS의 Type 212CD가 올랐다. 두 잠수함 모두 캐나다 해군의 요구 수준에 만족하는 우수한 무기체계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문제는 '누가 더 좋은 잠수함인가'가 아니라 '캐나다가 30~50년 동안 운용하기에 누가 더 안전한 선택인가'로 보였다.

한화오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격이었다. 캐나다 해군력 관련 전문 학술지 CNR(Canadian Naval Review)이 추정한 KSS-III의 단가는 척당 약 12억 캐나다달러(CAD·약 1조1170억 원)이고, TKMS의 Type 212CD(이하 212CD)는 약 20억 CAD(약 1조943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가격만 보면 한화가 유리하다. 

그러나 잠수함 같은 무기체계는 자동차처럼 가격표만 보고 사는 물건이 아니다. 핵심은 '총수명주기비용(FLCC·Full Life Cycle Cost)'이다. 일반적으로 무기체계의 FLCC는 연구개발비 10%, 획득비 30%, 운영유지비 60%로 구성된다. 초기 도입 가격은 전체 비용 일부에 불과하다. 잠수함 운용 기간을 40~50년으로 잡으면 이후 정비, 개량, 교육훈련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다. 바로 이 점에서 TKMS가 다소 비교우위에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TKMS는 전 세계 약 20개국에 174척의 잠수함을 수출한 실적을 내세웠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구매국이 기술을 이전받아 직접 잠수함을 건조했다. NATO 회원국이 운용 중인 재래식 잠수함의 70%를 TKMS가 공급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캐나다가 212CD를 선택하면 TKMS 공급 체인에 자동 편입되며 파트너 국가로서 공동 연구개발·운영유지·교육훈련 및 현대화 사업의 이익을 공유하게 됨은 물론 NATO 회원국에 대한 방산 수출도 공동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의 잠수함 수출 실적은 인도네시아가 사실상 유일하다. 2018년에 1400t급 3척을 수출했지만 건조·운용 과정에서 배터리 성능과 기술지원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고, 이후 추가 계약도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구매국 입장에서 볼 때 이 차이는 단순한 수출 실적의 차이가 아니다. '무기를 팔 수 있는 나라'와 '무기를 팔고 40년 동안 책임질 수 있는 나라'의 차이로 인식됐을 것이다. 캐나다가 초기 가격에서 약 8억 CAD를 아끼는 대신 안정적 군수지원 체계가 검증된 국가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정치적 선택이라기보다 지극히 경제적 선택일 수도 있다.

KSS-III는 약 3000t급이고 212CD는 약 2500t급이다. 체급 차이가 있는 만큼 탑재 무장과 작전지속능력 등에서 KSS-III에 높은 점수를 주는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무기체계에서는 성능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군에 필요한 능력을 정확히 충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212CD의 설계 철학이 눈에 들어온다. 독일과 노르웨이는 애초부터 북유럽·북극권 해저에서 러시아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212CD 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장기간 은밀한 작전과 낮은 피탐성을 지향하는 스텔스 기능이 설계의 핵심이다. 

미국 백악관은 8월 26일(현지 시간) 엑스(X)에 미국의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가 캐나다를 대표하는 새인 캐나다기러기를 제압하는 사진을 올렸다.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협상이 결렬되며 양국 관계가 악화됐음을 보여준다. 백악관 X 캡처
반면 KSS-III가 자랑하는 SLBM 운용 능력은 한국에는 중요하지만 캐나다 해군에도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SLBM은 북한 핵·미사일 시설을 겨냥한 킬체인(Kill Chain)과 대량응징보복(KMPR)의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캐나다가 러시아나 중국 본토를 목표로 장거리 공격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잠수함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 SLBM은 요구 수준을 다소 넘는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더 큰 선체와 더 많은 병력, 더 높은 유지비를 요구하는 능력이 오히려 '과잉 성능'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무기는 '더 많이, 더 멀리, 더 강하게'가 아니라 '임무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

가격·성능·납기보다 중요한 것

KSS-III 진영이 강조한 또 하나의 강점은 납기였다. 한화오션은 2026년 계약을 전제로 2032년 1번함을 인도하고 2035년 이전까지 4척을 인도할 수 있다는 계획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매년 1척씩 추가해 2043년까지 12척 모두 인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납기가 빠르다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무기체계 하나가 전력화되려면 함정만 확보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기지와 정비시설을 만들어야 하고 승조원을 양성해야 하며 교육훈련 체계와 탄약·부품 공급망, 지휘통제 체계도 갖춰야 한다. 

당연히 중요한 것은 조기 납품이 아니라 '적기(適期)' 납품이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미군이 중심이 된 다국적군이 '사막의 폭풍작전'을 펼쳤을 때, 쿠웨이트군 창고에는 미국에서 일찍 인수한 전차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 있었다는 일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차는 있었지만 전차병이 없었던 것이다.

무기는 빨리 들여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싸울 준비가 됐을 때 확보돼야 한다. 이 점에서 TKMS가 독일·노르웨이용 212CD 생산 라인을 활용해 캐나다 노후 잠수함 퇴역 시기에 맞춰 우선 4척을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면 한화오션의 KSS-III의 빠른 납기가 결정적 차별화 요소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외교관계도 독일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NATO 창립을 주도한 12개국 가운데 하나로서 1949년 발족 당시부터 핵심 멤버로 참여해 왔다. NATO 조약 제2조(일명 '캐나다 조약')는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정치·경제·사회적 협력체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를 강력히 주도한 나라가 캐나다다. 동시에 캐나다는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영국 국왕을 자국의 국가원수로 하는 56개 영연방의 핵심 국가로서 영국과는 역사적·군사적 관계가 매우 깊다. 

여기에 EU와의 관계까지 겹쳤다. CPSP 사업에서 결정적 변수가 된 것은 EU가 회원국의 재무장과 무기 공동구매, 방위산업 역량강화 지원을 위해 조성한 1500억 유로(약 235조 원) 규모의 '유럽안보행동(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자금이다. 캐나다는 2월 비(非)EU 회원국으로서는 최초로 SAFE 관련 방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했다. 

문제는 SAFE의 조달 제한 규정이다. SAFE 자금을 이용한 사업은 무기 완제품의 부품 및 소재 비용 중 최소한 65% 이상을 EU 및 유럽경제지역(EEA) 내에서 반드시 생산·조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SAFE 자금을 활용하려면 유럽 방산산업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캐나다가 방위 사업에 SAFE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국가가 독일이다. 그렇다면 캐나다가 잠수함을 선택할 때 독일과 한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파트너였을까. 이 질문의 답은 생각보다 명확하다.

현대로템이 개발한 K2 전차. 육군

재래식 무기 개발·수출에만 몰두하는 韓

물론 한국에도 강점은 있다. 폴란드와 이집트 등 한국 방위산업체의 대형 수출 사업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대규모 금융지원이다. 알려진 조건만 보면 계약 금액의 80% 수준까지 금융지원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엄청난 경쟁력이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하지만 안보를 위해 무기가 급한 국가에 장기·저리 금융까지 제공하면서 신속하게 무기를 공급한다면 구매국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적 조건이다. 

필자는 1980년대부터 대규모 해외 도입 무기체계 사업을 추진해 봤지만 판매국으로부터 금융지원을 제안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나라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IMF 시절에도 따박따박 현금(신용장)을 주고 무기를 사 와야 했다. 

문제는 이 장점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다. 금융지원을 담당하는 수출입은행의 자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수출 실적만 보고 박수를 칠 것이 아니라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방산 수출 금융지원의 조달 비용과 회수 상황, 기업의 실제 수익성에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밀히 따져보고 관리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술이전이다. 2008년 현대로템이 튀르키예에 K-2 전차 기술 패키지를 수출한 것은 당시에는 성공적 방산 수출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튀르키예는 이를 기반으로 자체 전차인 '알타이'를 개발했고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튀르키예의 방산 수출은 10여 년 전 약 10억 달러 수준에서 매년 급성장을 거듭해 2025년에는 10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 상반기만도 이미 58억 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대상국은 180개국에 달하며 전차·장갑차·무인기·드론·함정·유도무기·전자전 장비 등 제품군도 매우 다양하다. 기술이전이 경쟁국을 만드는 역설이다.

폴란드 역시 마찬가지다. 폴란드는 냉전시대에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핵심 방산 거점국이었다. T-52/T-72 전차와 BWP-1 보병전투장갑차는 물론 각종 무기체계를 현지 생산할 만큼 방산 측면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앞선 기술 기반을 갖춘 나라다. 폴란드와 K-방산의 2022년 대규모 계약에는 K-2 전차, K-9 자주포, 다연장로켓 K-239 천무, 경공격기인 FA-50 등이 총망라됐다. 대규모 금융지원과 현지 생산, 기술협력까지 포함하면 폴란드 입장에서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그때 폴란드는 한국의 고객일까, 경쟁자일까. 방산 수출에서 가장 어려운 계산은 '오늘의 수출액'과 '10년 뒤의 경쟁력' 사이의 균형이다. 

한국의 방위산업이 아직 '재래식 무기 백화점'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약점이다. K-방산이 지금까지 거둔 성공은 대부분 전차·자주포·유도무기·다연장로켓·경공격기 등 전통인 재래식 무기체계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드론과 무인체계, 위성정보, 전자전, 인공지능(AI), 정밀 타격이 전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대규모 드론 전력을 운용하고 있고, 전장에서는 무인 지상 체계와 드론을 결합한 새로운 전투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올해 독립기념일인 8월 24일에 벌인 '파격의 군사 퍼레이드'는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보아온 수많은 보병 행진과 대규모 무기 행렬 대신 다양한 형상의 첨단 드론, 무인체계, 로봇부대가 그 자리를 메웠다. 최전선에는 전투병 대신 위장망을 덮어쓴 로봇개가 투입돼 최장 5시간 동안 시속 10㎞의 속도로 적진을 헤집고 다니다 적군의 위치와 장애물이 탐지되면 공격 드론이 날아가 타격하는 전투 개념이 실용화된 지 오래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22년 2월 개전 이후 드론을 활용해 약 2만5700대 이상의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드론 하나로 100억 원이 넘는 전차를 파괴한 것이다. 최근 유럽 주둔 미군과 동맹국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모의 군사훈련 '콤바인드 리졸브'에서 대항군으로 참여한 우크라이나 무인체계군 소속 1개 드론 연대가 3500명 규모의 미 육군 최정예 기갑여단을 순식간에 전멸시켰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연간 드론 생산능력은 700만에서 1000만 대에 이르며, 1000~2000㎞에 달하는 장거리 공격 드론까지 개발해서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의 목표까지 타격하는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2026년 최근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중형 자폭 무인기의 해상 전투 실험에서 불과 2㎞ 떨어진 근거리 표적도 타격하지 못하고 비행 수초 만에 추락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이것이 K-방산의 실체이고 현주소일 수 있다. 미래전에서 전차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온 세계가 드론과 AI, 로봇과 자율 무기체계로 질주하는 판에 우리는 전차, 자주포, 기본 항공기 등 몇 가지 재래식 무기 수출에만 몰두하고 안주한다면 K-방산의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무기의 수출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 전장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8월 24일(현지 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35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로봇과 드론 등 무인 전투 체계로만 구성된 열병식 행사를 거행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K-방산이 나가야 할 미래

K-방산은 분명 중요한 성장산업이며 한국의 산업·기술 역량을 세계에 보여주는 대표적 분야로 성장했다. 폴란드와 이집트 등에서 거둔 대형 수출 성과는 결코 평가 절하할 수 없다. 그러나 연이은 대형 사업 탈락을 단순히 '정치·제도적 패배'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가격과 성능, 납기만으로는 국제 방산 시장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장기간의 운용 경험과 후속 군수지원 능력, 기술이전의 신뢰성, 금융 조건, 산업 협력, 동맹관계, 지정학적 이해관계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KSS-III가 우수한 잠수함이라는 사실과 캐나다가 Type 212CD를 선택한 것이 합리적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더 좋은 무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 '구매국이 왜 그 무기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제 K-방산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무조건 많은 수주를 따내는 것보다 국가적으로 가치 있는 사업을 선택하고, 핵심기술을 지키며, 장기간 안정적인 후속 군수지원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드론·AI·로봇·전자전·우주 등 미래전 분야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K-방산의 미래는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짧은 호황에 도취할 때가 아니라 냉정하게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송학 행정학 박사·한국방위산업학회 부회장·전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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