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사면 돈 벌던 시대 끝났다…월가 사모펀드 ‘황금시대’ 흔들

월가에서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버는 사업으로 통했던 사모펀드(PE)의 ‘황금 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저금리 시절 빚을 내 비싼 가격에 사들인 기업들은 금리가 오르자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코로나 전후 만들어진 펀드 상당수가 투자자에게 약속했던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권까지 사모펀드를 정조준하고 있다.
◇기업 3만3575개, 사놓고 못 판 사모펀드
코로나 시기 전후였던 2019~2021년은 사모펀드 황금기로 불렸다. 초저금리와 막대한 유동성을 등에 업고 사모펀드는 공격적으로 기업을 인수했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계산이 달라졌다. 기업을 새로 사려는 투자자는 과거보다 비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에 기업에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은 낮아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사모펀드 업계는 2021년 시장 정점 무렵 사들인 자산을 손해 보고 팔지 않기 위해 매각을 미루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모펀드의 사업 구조는 기본적으로 ‘사서 키운 뒤 파는 것’이다. 투자자에게 돈을 받아 기업을 인수하고, 통상 수년간 실적을 개선한 뒤 다른 기업이나 다른 사모펀드에 팔거나 증시에 상장시킨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인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가 막힌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기준 전 세계 사모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미매각 포트폴리오 기업은 3만3575개다. 지난해 말(3만2451개)에서 불과 6개월 만에 1124개가 늘었다. 10년 전 1만5923개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또한 2022년 이후 미국 증시에 상장한 사모펀드 투자 기업은 70곳에 불과했다. 2017~2021년에는 400곳을 넘었다. NYT는 “올해 상반기는 지난 10년 중 기업공개(IPO) 건수가 두 번째로 많았던 기간이었지만, 많은 사모펀드 회사들에게 IPO는 사업 매각을 위한 실행 가능한 방법은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투자자에게 약속한 수익률도 흔들리고 있다.
FT에 따르면, 2019~2021년 만들어진 펀드 가운데 약 90%가 당초 제시했던 목표 내부 수익률(IRR)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FT는 “당시 사모펀드들은 통상 연 10%대 후반의 수익률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이 시기에 만들어진 펀드의 최종 IRR이 연 7~8% 수준에 그칠 수 있다”며 “최근에는 돈이 묶인 부유층과 패밀리오피스가 보유 중인 사모펀드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모펀드 회사들이 저금리 시절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NYT는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 기업은 현금 흐름을 예상하기 쉬운 데다, 비용 증가 폭은 상대적으로 작아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최근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모펀드 돈 버는 공식 달라졌다
여기에 정치라는 악재도 더해졌다.
FT가 지난달 27일 미국 중간선거 접전 지역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 상·하원 후보 가운데 최소 24명이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등 기관 투자자의 주택 매입이나 보유를 제한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월가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이 대형 은행을 향했다면 최근에는 사모펀드와 기업형 임대 사업자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사모펀드의 단독주택이나 모바일홈 단지, 농지 등의 매입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공화당에서도 “대형 기관 투자자가 생애 첫 집을 사려는 일반 가계와 경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업계에서는 사모펀드의 수익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2026 글로벌 사모펀드 보고서’에서 지금의 시장을 “12가 새로운 5(12 is the new 5)”라고 표현했다. 과거에는 인수한 기업의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전 이익)를 매년 5%가량 성장시켜도 목표한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기업 자체를 엄청나게 성장시키지 않아도 ‘싼 빚’과 ‘기업 가치 상승’이 수익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두 가지가 모두 사라졌다. 베인은 “과거와 같은 투자 성과를 내려면 이제 인수한 기업의 EBITDA를 연평균 약 12% 키워야 한다”며 “사모펀드가 금융 기법만 잘 써서 돈을 벌던 시대에서 실제 기업을 잘 경영해야 돈을 버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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