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봤나 안 봤나.. 국회 자료요구에 학교 현장도 논쟁 격화

손유지 2026. 10. 4. 10:4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인선 “교육 정치적 중립 점검 위한 정당한 자료요구”
서울·전북교육청, 학교별 ‘암살자들’ 관람 현황 제출 요청
교육계 “학교 자율성 위축”…국회는 ‘교육검열’ 비판 반박
국정감사 권한과 교육 자율성 사이 적정선 논쟁 확산
[지데일리] 영화 한 편의 학교 단체관람 여부가 국회의 국정감사 권한과 교육현장의 자율성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학교 관람 현황을 국회가 요구하면서다. 교육계에서는 특정 작품을 지목한 조사가 교육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반면, 국민의힘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교육의 투명성을 확인하기 위한 정당한 자료요구라는 입장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인선 의원은 2일 국민의힘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일부 교원단체의 ‘교육검열’ 비판을 정면 반박했다. 이 의원은 국정감사가 국민을 대신해 행정과 재정 집행을 감시하는 헌법상 책무라며 교육 현장과 시·도교육청도 감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 측 요구에 따라 일부 시·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영화 ‘암살자들’의 학교 주관 단체관람 현황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서울시교육청과 전북교육청은 지난달 29일 관련 공문을 학교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전북교육청 공문에는 관람 실적이 없는 학교도 자료를 제출하도록 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에서는 특정 영화의 관람 여부를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파악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학교가 교육과정과 학생들의 교육적 필요를 고려해 선택한 활동까지 정치적 판단의 대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자료 제출 과정에서 학교별 관람 여부가 외부에 알려질 수 있다는 부담도 교육현장에서는 민감한 대목이다.

반면 이 의원은 역사적 사건에 관한 왜곡 논란이 제기된 작품을 학생들에게 단체관람시켰는지 살펴보는 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점검하기 위한 기본적인 검증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교육활동이 특정 정치적 관점이나 역사 인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사례도 쟁점으로 등장했다. 이 의원은 2015년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 의원이 영화 ‘연평해전’의 학교 단체관람 현황을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았고, 전국 298개교와 학생 4만4922명의 관람 실태가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전교조가 영화 ‘국제시장’ 단체관람을 비판하며 중단을 요구했던 사례를 거론하며 현 상황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다만 당시 자료와 관람 규모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국정감사 원자료를 통해 추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영화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아니다. 국회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학교의 개별 교육활동 자료를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국정감사의 자료요구 권한은 행정기관을 견제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지만, 학교 현장의 교육적 판단까지 정치적 검증의 대상으로 확대될 때 교육 자율성이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대로 학교가 공교육의 공간인 만큼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콘텐츠와 단체활동이 특정 정치적 메시지와 결합됐는지 살펴볼 장치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학교 예산이 투입됐는지, 관람 결정 과정에서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이 충분히 검토됐는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이 보장됐는지 등은 자료를 통해 확인할 가치가 있다.

이번 사안은 ‘암살자들’이라는 영화 한 편의 관람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국회의 감시 권한과 학교의 교육 자율성이 충돌할 때 어느 선까지 자료를 공개하고 조사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문제다. 

국정감사에서 관람 규모뿐 아니라 결정 주체와 절차, 예산 집행, 학생 참여 방식 등이 함께 공개된다면 정치적 공방을 넘어 교육행정의 적정성을 따지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영화의 성격만을 근거로 학교를 일괄 조사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교육현장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위험도 커진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국회와 교육당국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학교 자율성을 함께 지킬 수 있는 명확한 자료요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