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 가족 “이럴 줄은 몰랐다”…한국인들 집에서 못 죽는 이유 [김수호의 리캐스트]

김수호 AX콘텐츠랩 기자 2026. 10. 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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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연명의료 결정, 심폐소생술 시행, 중환자실 치료,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여부 등 죽음을 늦추는 일들은 모두 병원 안에서 결정된다.

그는 "중환자가 식사를 하지 못하면 가족은 흔히 '못 먹어서 더 나빠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이 악화해 식욕과 갈증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못 먹어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기 때문에 못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적어도 말기와 임종 단계에서는 인공영양과 수분 공급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와 의사를 중심으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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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저자
의사 겸 작가 양성관 씨 인터뷰
삶의 마지막 안내서…어떤 마지막을 원하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한국인 4명 중 3명(74.8%)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적지 않은 환자들이 임종 직전까지 연명의료 시술을 받는 ‘연명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결정, 심폐소생술 시행, 중환자실 치료,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여부 등 죽음을 늦추는 일들은 모두 병원 안에서 결정된다. 그렇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은 이러한 선택지 앞에서 쉬이 결정 내리지 못한다. 이유는 명료하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사진. 양 과장은 호스피스 진료 경험을 거쳐 현재는 요양원을 직접 찾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의사 겸 작가인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죽음 앞에서 당황하는 이들을 수없이 지켜봐 왔다. 말기 환자의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럴 줄은 몰랐어요.” 대다수 사람들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죽음 앞에서 얼어붙는다. 연명의료 시술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양 과장은 ‘삶의 끝에서의 선택’을 다루는 책을 쓰기로 했다. 연명치료부터 호스피스, 안락사 논쟁, 요양원과 요양병원, 간병과 돌봄까지. 마지막의 모든 것을 담은 책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를 출간한 양 과장을 인터뷰했다. 스스로를 ‘빛나리 의사’라 칭하는 그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마지막까지 내 삶의 핸들을 잡는 일”이라며 “생의 끝에서 ‘이럴 줄은 몰랐다’는 말 대신 ‘미리 알아두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갈 길 먼 ‘​연명의료 중단’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6명 이상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택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은 14.7%에 그친다. 양 과장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자택 사망률이 줄었다고 진단했다. 당시 보라매병원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던 한 60대 환자는 부인의 요구로 퇴원한 후 집에서 사망했다. 추후 대법원은 배우자에게 살인죄를, 담당 의료진들에게 살인 방조죄를 확정 판결했다. 이 사건 이후 연명의료는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양 과장은 “그 뒤로 병원에서는 ‘퇴원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조금 더 지켜보시죠’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2009년, 연명의료 중단 논의에 불을 붙이는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이다. 2008년 김 할머니가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그의 가족들은 병원을 상대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며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여러 논의를 거쳐 연명의료결정제도(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연명의료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35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2024년 기준 연명의료 중단 이행률은 전체 사망자의 19.5%에 불과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예시

정부는 최근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8년 만에 의료현장에서 드러난 한계를 점검하고 제도 전반을 손질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양 과장은 “죽음과 직결된 제도일수록 충분한 사회적 대화가 먼저 행해져야 한다”며 “환자와 가족, 의료진, 국가 네 박자 사이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는 가족이나 의료진이 환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의료진은 충분한 치료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쟁이나 소송에 휘말리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환자와 가족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혹시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서로 불신하기 때문에 모두의 최선보다 각자의 최선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양 과장은 삶의 마지막 순간 음식과 수분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가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영양분과 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은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는 “중환자가 식사를 하지 못하면 가족은 흔히 ‘못 먹어서 더 나빠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이 악화해 식욕과 갈증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못 먹어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기 때문에 못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적어도 말기와 임종 단계에서는 인공영양과 수분 공급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와 의사를 중심으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양 과장은 끊이지 않는 ‘간병 살인’ 비극을 막으려면 ‘간병 독박’을 없애야 한다고도 말했다. “밤낮으로 환자 곁을 지키다 보면 환자뿐 아니라 간병인의 몸과 마음도 함께 무너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간병살인 등을 단순히 ‘패륜’이라고만 봐서는 안 됩니다. 고립된 간병의 끝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비극입니다. 예방 방법은 분명합니다. 간병을 혼자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방문요양, 주야간보호, 단기보호, 요양시설과 같은 돌봄 인프라가 충분해야 합니다.”

‘좋은 죽음’은 없을지언정 ‘덜 나쁜 죽음’은 있다

양성관 의사
양 과장이 생각하는 ‘덜 나쁜 죽음’에는 네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마치고 맞는 죽음이다.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한 뒤 맞는 죽음이 그 예시다. 둘째,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오래 잃지 않는 죽음이다. ‘두 발로 서서 움직일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가’가 그의 기준점이다.

셋째, 고통이 적은 죽음이다. 환자의 고통은 환자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심한 통증과 호흡곤란, 불안과 섬망을 지켜보는 가족도 함께 고통받는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마지막 순간만큼은 불필요한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 게 낫다는 얘기다. 마지막 조건은 예측할 수 있는 죽음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할 수 있다.

양 과장은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와 가족에게 반드시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눠보라고 당부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삶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어디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지, 어떤 치료를 받고 싶은지, 원하지 않는 치료는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에게 꼭 해두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셨으면 합니다.”

환자가 낫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양 과장은 앞으로도 ‘좋은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2008년 책 ‘달리는거야 로시난테-엉뚱발랄 초보의사의 자전거 여행기’ 출간을 시작으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쓰고 싶은 글도 계속 쓰고 싶다고 밝혔다. 양 과장의 바람은 삶이라는 긴 여행이 끝나는 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번 생은 꽤 괜찮은 여행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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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 AX콘텐츠랩 기자 su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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