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 신앙이 그은 내 삶의 '낙서'를 '새'로 빚어내기 

나수진 2026. 10. 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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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심하게 아팠던 어느 학창 시절, 조심스레 증상을 말하자 아버지의 호통이 돌아온다.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주일성수'라는 의례를 그만두고, 기도를 하고 싶을 때 방석을 꺼내 백팔배를 한다.

이번 글쓰기의 가장 큰 수확은 '세상에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나는 힘들었고 여전히 힘들어.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거대한 옳음'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을 텐데,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 '정말 제대로 된 진짜 옳음'을 가져와 기존의 것을 비판하며 그 대항처로 내세우는 방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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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엔 쉽니다] <목사 딸의 백팔배> 이정은 작가
"이렇게 살다가는 죽은 상태로 살거나 실제로 죽겠구나 느껴 
균열을 통과하며 살길 만들자 생각…
부모도 너끈히가 아니라 가까스로 믿고 있구나
피해·가해 이분법에 갇혀서는 새로움 꿈꿀 수 없어"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몸이 심하게 아팠던 어느 학창 시절, 조심스레 증상을 말하자 아버지의 호통이 돌아온다. "하나님을 그 따위로 믿으니, 신앙이 그 모양이니, 이가 안 좋지! 평소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생활을 했으면 이가 왜 아프나!"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갈 수도 없어 식사를 끝까지 마치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서러움에 운다. "몸의 아픔은 인간적인 것"이고,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지 않았는가? 제대로 된 생활을 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산다면 몸의 아픔 따위는 고쳐지거나 아무렇지 않을 종류의 것"이니까(20쪽). 

결혼을 하고 맞은 어버이날에도 아버지와의 대화는 어김없이 강단 위에서 말씀 선포하듯 흘러간다. "부모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녀를 낳아야 한다." 용기를 내어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목사 정체성이 더 먼저인 분이었다'고 반문하자,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다. 부모와 자녀의 자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목사 딸의 백팔배: 어느 종교학자의 자기 배려하기>(온다프레스) 저자인 이정은 작가는 이제 이 말을 '복음'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자녀다. 그냥 자녀다. 인간적으로 좋아 보이는 모습을 갖추든 그렇지 않든,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갖추든 아니든 그냥 자녀인 것이다. 나는 그(아버지)를 놓고 나 또한 그냥 존재하기로 했다." 

서울대 종교학 박사인 이정은 작가는 금욕적이고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진보적인 신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 교회를 개척했지만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께 있다며 철저한 금욕주의 신앙으로 전향했다. 그 밑에서 자라난 저자는 대학에 진학해 종교학이라는 미로 속에서 헤매고, 신천지에 빠졌다 나오면서 개신교계 신종교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가 됐다.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주일성수'라는 의례를 그만두고, 기도를 하고 싶을 때 방석을 꺼내 백팔배를 한다. 이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책의 부제인 '자기 배려'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오랫동안 자기 포기적이고 금욕적으로 작동해 온 기독교 문화의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쾌락주의와 달리, '자기와 관계 맺는 방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또 다른 엄격성을 갖추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부모로부터 탈출하거나 단절을 선언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지지부진한 관계를 이어 간다. 이정은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너무 힘들었다고 진실되게 고백하면서도 아버지의 삶과 그 관계에서 받은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있을까? 매일 새벽기도부터 자기 전 개인 경건까지 예배와 교회·공부방 일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공간과 시간과 감정까지도 통제당했던 억압적인 삶은 가히 가스라이팅이라고도 판정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근본주의적 신앙에 대해 저자는 손쉬운 이분법과 구별 짓기를 끝내고 다른 길을 모색한다. 부모의 신앙을 내던져 버리고 반대편에 있는 신앙으로 건너가는 대신 하나님·기독교 중심주의라는 대전제에 물음을 던지는 방식으로. 

이 과정이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이었던'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머나먼 여정이 '될' 것"(269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깊이와 통찰에 접하고, 가능하면 그 안의 '갈망'을 두드려 소통하기 위해" 여전히 부모님 댁에 가고, "공존이라는 것은 '나'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259쪽) 부모님 댁을 떠나온다. 근본주의 신앙이 그은 내 삶의 '낙서'는 내가 '새'로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추석 연휴가 지난 9월 29일, 서울 필동에서 이정은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목사 딸의 백팔배>(온다프레스) 이정은 작가를 만났다. 독립 전까지는 아버지가 목회하고 어머니가 지역 아동 센터를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조그마한 교회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똑같은 시간 노방 전도를 나가는, 그야말로 말과 행동과 신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인간 중심적인 것을 배제하는 아버지의 '자기 포기 테크놀로지'와 금욕적인 성장 환경에 기꺼이 연루되고 틈새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첫 책이다. 책을 낸 뒤 소감은. 

출판사 대표님께 좀 죄송한데, 주변에 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 조심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다. 근데 기사를 열심히 써 준 기자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어, '대체 언제 이런 책을 쓴 거야?' 같은 놀라움이 담긴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다. 미리 알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답변을 일일이 드리는 시간을 보냈다. 학위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첫 책을 학술서 종류로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인적인 이야기가 듬뿍 담긴 에세이로 냈기 때문에 놀란 반응을 보인 것 같다. 그 외에는 남편과 고양이랑 놀고 쉬면서 다음 글쓰기를 위한 예열 독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 부모님 이야기를 담은 책인 만큼 두 분께도 보여 드렸나. 부모님에게는 처음 꺼내 놓는 이야기라 반응이 두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께는 책을 냈다고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고, 말씀드릴 생각이 없었다. 영원히 모르셔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추석 직전에 엄마가 우연히 알게 되셨더라. 엄마가 통화 중에 "너 혹시 책을 냈니?" 물으셔서 속으로 엄청 떨다가 이실직고했다. 조심스러워 차마 말씀을 못 드렸다. 내용에 대해서는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엄마는 그래도 단단한 분이시니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책에 대해 모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엄마가 어쨌든 당신에게라도 책을 주었으면 하셔서, 추석에 몰래 드렸다. 그에 대한 반응은 아직 없다.

사실 반응은 없어도 있어도 모두 괜찮다. 부모님이 나의 신앙생활 지속 여부를 비롯해 결혼 이후 내 삶의 다양한 변화들(백팔배, 타투 등)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시는 상태여서, 부모님의 입장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내용, 언짢은 정도를 넘어서 기함할 수도 있는 내용의 글을 쓴 만큼 다양한 반응에 대한 각오는 하고 있다. 다른 한편 부모에게 과거의 일들이나,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쓴 글이 아니다. 부모님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고, 읽고도 마치 안 읽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부모님이 불현듯 엄청난 대인의 풍모를 보여 주신다면 굉장히 멋지겠다는 꿈을 깊은 곳에서 뜨겁게 품고 있긴 하다.

- 어렸을 때부터의 내밀한 경험이 낱낱이 책에 담겨 있다. 참 집요하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언제였나. 

언젠가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분명하게 한 것은 20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어떤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낼 수 있는 소재가 되는 사건들이 내 삶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경험을 어떻게든 꼭 써먹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현실'이 '내가 다룰 수 있는 무엇'이 되어 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이렇게 생각해야 억울함이 덜어질 것 같다는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소재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 사회에 필요할지 모르는 '좋은 이야기'로 엮어 내기에 아직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한 사람으로서 지금보다 훨씬 무르익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종의 때를 기다리면서 힘들 때마다 더 좋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모님과의 삶을 후회 없이 마주해 보자,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난 후, 이제는 한 번 쓰기를 시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충분히 무르익은 사람이 되었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그런 것은 아니고, 적어도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이들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 고생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삶과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이를 구조화한 근본주의 신앙을 돌아보는 과정이 괴롭지는 않았나. 

그러한 과정은 글을 쓰기 전에 이미 수도 없이 했던 것이었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것을 어떤 관점과 톤으로, 얼마만큼의 소재를 활용하여, 얼마만큼의 깊이를 담아 쓰는 것이 좋을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의 가장 큰 고민은 '나의 경험이 정말 사회에 공개할 하나의 이야기가 될 만한가'였다. 어떤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야기로 구성이 되려면 '고난 또는 역경'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내가 고난을 겪었다고 할 만한가, 힘들었다고 말해도 될 만한 일을 겪은 게 맞는가'에 대답을 잘 못 하겠더라. 이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이면 어떡하지? 나의 과민함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오해하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글을 쓰는 거면 어떡하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다. 

그런 마음의 갈등 속에 초고를 쓰고 출판사 대표님께 보냈는데, 그 글에 대한 대표님의 반응이 마음을 좀 안정시켜 줬다. 나도 모르게 부모님의 입장을 고려하여 그들의 시선에서 내 생각과 행동을 머뭇거리며 설명한 대목마다, 대표님이 굉장히 커다란 의문을 표하셨다. 글쓴이의 이런 반응과 생각은 좀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그 의문들을 읽으며 '어쩌면 내가 일반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힘들다고 할 만한 일을 겪은 것이 맞을 수 있겠다. 그러니 힘들다고 해도 괜찮겠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 더 확장된 시선에서 냉철하게 서술해도 괜찮겠다. 아니, 더 좋은 이야기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만 하겠다'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관점에서 글을 다시 써서 지금의 책을 완성하게 되었다.

- 이런 내용으로 책을 쓰면서도 여전히 '내가 고난을 겪은 게 맞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는 게 놀랍다. 그럼 글쓰기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이번 글쓰기의 가장 큰 수확은 '세상에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나는 힘들었고 여전히 힘들어.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퇴고를 하면서 글을 남의 글처럼 멍하니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이 사람은 여전히 너무 애를 쓰고 있다. 어디 저 구석에 나가떨어져 있어도 그럴 수 있겠다 할 정도인데, 자꾸만 나는 이미 괜찮아졌다며 스스로를 다그치듯 다독이고 있구나. 이렇게 자기 아픔을 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아픔이라고 감각할 수 있을까. 이 정도는 돼야 아프다 할 만하지 같은 스스로의 빡센 기준 속에서 남의 아픔 또한 저도 모르게 판단하려 들지 않을까.'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아팠다고 해도 괜찮나, 자기 연민 아닌가 계속 반문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반문에 덧붙여, 내가 나의 아픔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하면 남의 아픔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 속에 나의 마음을 잘 살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꼭 한다.
책을 쓰는 데는 4주가 걸렸다.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해 해당 출판사에도 투고했지만 결이 달라 불발됐다. 이후 지금의 출판사, 온다프레스를 만났다.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를 만나 부모와 있었던 일 중 사소한 일을 가볍게 이야기했는데 박 대표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졌다. 그때 "이게 힘든 이야기가 맞구나, 힘들다고 해도 되겠다"고 느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요즘에는 가부장적·성차별적인 원가족과 관계를 단절하는 사람들이나 이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이전보다 늘어난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의 신앙)와 단절하기를 선택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떠나는 대신 끝까지 들여다보는 쪽을 택한 이유는. 

우선 나는 '떠나는 것'보다 '끝까지 들여다보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 '왜 너는 이토록 버거워하면서 떠나지 못하는가. 용기가 없는 것 아닌가'라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냥 내가 잘하는 것 또는 지금 수용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길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아직 떠나지 못하겠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돌파구를 마련해 보자고.

어릴 때 정말 힘들었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입 밖에 내뱉어도 된다는 생각을 감히 못 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이 힘듦으로 '절대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정말 간절히 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힘듦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보니, 내가 무언가가 힘들다고 그것을 피하고 거부할수록 그것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것 같더라. 그래서 그 무턱대고 거부하는 마음을 멈추기로 한 거다. 이 힘듦, 그리고 이것과 엉켜 있는 미움의 마법을 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이곳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끝까지 들여다보기'를 선택한 거다. 정말로 나로 숨 쉬면서 살고 싶었다. 

- 반대편에 있는 진보적인 신학을 공부하거나 교회에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 

나는 모든 질문과 의문을 자기 식으로 흡수하는 것 같은 '거대한 옳음'이 언제나 숨 막혔다. 그에 반하는 어떤 이야기도, 생각도, 의문도 모두 그 강력한 '옳음'으로 빨아들여진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다. 가지각색의 온갖 고통도 기쁨도 어려움도 어긋남도 모두 하나님 뜻인 것으로 수렴된다. 이와 같은 '거대한 옳음'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을 텐데,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 '정말 제대로 된 진짜 옳음'을 가져와 기존의 것을 비판하며 그 대항처로 내세우는 방식인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진정으로 올바르게 해석된 하나님, 사상, 가르침'이라는 것.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이러한 종류의 싸움은 내가 잘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다. '너의 옳음'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며, '나의 옳음'이야말로 진정으로 옳다는 것은 또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나의 옳음'에 너를 굴복시키는 것은 같은 종류의 폭력을 되돌려주는 행위가 아닌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아갔다.

도대체 '옳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님 신앙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그곳을 깊게 탐험하고 더듬는 방식으로 길을 찾아보자. 그들의 강력한 대타자(삶의 기준과 질서를 부여하는 사회적 질서·언어·권위―기자 주)에 나의 새로 찾은 대타자를 대응시키기보다, 이 대타자 구조 내의 균열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살길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부모의 세계 외부에서 길을 개척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부모의 세계를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들의 세계를 전혀 모른 채 미워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제고 부모의 세계를 궁금해하며 또는 후회하며 뒤를 돌아보게 될 것 같았다. 또 부모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외부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 그 '외부'와의 관계에서 부모와의 관계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새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우선 부모의 세계와 피 터지게 마주해야 했다.

- 그렇다면 부모의 신앙과 기꺼이 연루된 이후 독립은 어떻게 할 수 있었나. 

그런 마음으로 예배 자리에 참석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따라가다 보니, 아, 이들도 '너끈히'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모순을 적당히 감추고 그 사이의 틈을 애써 기워 가며 '가까스로' 믿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에 쓴 내용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엄마는 하나님이 내렸다는 권위에 순종하라는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전통을 어떻게든 붙들며 살고자 했음에도, 마음의 다른 한편에서는 '누구 앞에서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모순되는 생각 속에서도 엄마는 하나님을 믿기로, 어쨌든 그에게 순종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이란 존재도 수많은 이들에 의해 가까스로 기워진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믿음'이라는 것은, 애써 기워진 것을 말끔하고 매끄름한 것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매혹적이고 때로 위대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거구나. '옳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인간적인 것이라면 나는 이제 나만의 인간적인 길을 만들어 가도 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해방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 결혼이 마침내 물리적·정서적·신앙적 독립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닌가.

맞다. 결혼은 나의 물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신앙적 독립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 주었다. 결혼이라는 결정적인 구실이 없었다면 '독립' 과정이 지지부진하고 더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반문했다. 나는 지금 정직하게 맨몸으로 맞닥뜨릴 필요가 있는 독립을 결혼을 통해 쉽게 달성하려는 것 아닌가. 도피성 결혼 아닌가. 한참 그러고 있다가, 아이고 정은아. 그만 좀 해라. 그만 좀 스스로를 괴롭혀라. 무언가를 회피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이 포착되면 이 좋은 사람을, 자연스러운 계기를 모두 포기할 거니? 그건 누구를 위한 것이니? 그만 좀 다그치고 제발 우선 살고 보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무튼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부모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했을 거다.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겠지만, 결국은 했을 거다. 부모는 한다면 꼭 하는 분이다. 부모의 자녀인 나도 그렇다.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결심이 서면 돌아보지 않는 면이 있다. 20대 후반부터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죽은 상태로 살거나 실제로 죽겠구나. 지금과 같은 삶을 그만두거나, 온통 배배 꼬인 마음으로 미친 듯이 힘겹게 살다가 죽거나, 지금 죽거나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 책에서 부모와 나의 관계를 피해와 가해 구도로 배치하지 않는 것, 근본주의적 신앙을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피해·가해의 구도와 옳고 그름의 이분법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장 꼭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 경우까지는 모르겠고, 나에게는 필요했다는 조건이 붙어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고민했던 주제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가'였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지 않나. 나는 어떻게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오랜 화두였다. '온전한 거듭남'이 매일같이 요구되었던 성장 배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화두가 된 것이었지만, 스스로도 기꺼이 이 화두를 내 것으로 삼았다.

그런데 피해·가해 구도나 옳고 그름의 이분법에 갇혀서는 양자 사이에서 뱅글뱅글 돌 뿐 도저히 새로움을 꿈꿀 수 없겠더라. '새로움'을 꿈꾸는 것, 내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일에는 커다란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오랜 시간 내가 피해자고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그것은 그때의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나의 모든 힘을 오로지 그곳에만 쏟게 했다. 그런 시간을 오래 보내다 보니,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분법적 게임은 내가 거부하고 싶은 세계의 게임이지 않나. 그러니 내가 그 게임에 계속 머물면서 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드는 것은 그 세계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되는 거다. 옳으니 그르니 하는 문제는 그게 중요한 사람들이 따지게 놔두고, 나는 내가 '좋다'고 상상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데 남은 힘을 모두 사용하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정은 작가의 몸에는 다양한 타투가 있다. 염색도, 화장도, 귀 뚫기도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내 몸이 내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난 후 새긴 것들이다. 이 작가가 생명운동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사람 얼굴을 닮은 난초' 수묵화 타투를 보여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대학 시절 신천지에 빠졌다가 나오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개신교계 신종교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됐다. 한국교회는 보통 신천지를 경계하거나 '올바른 신앙'으로 돌려놓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데, 작가의 시각은 다른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시각과 윤리적 태도를 정립하기 위해 신천지까지 갔던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신천지 신도들의 면밀한 전도를 받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그곳에 폭 빠져들었다. 신천지 경험은 당연히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긴 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웠다. 개신교와 그 믿음의 형태와 구조가 매우 닮아 있었지만 그 강도는 훨씬 강렬했다. 그곳에 소속되어 있던 당시에는 기성교회에서 개신교인으로 막연히 꿈꾸었던 '진짜 체험, 진짜 신앙, 진짜 믿음'이 이곳에서 드디어 온전히 현실화된 것 같다는 느낌과 감정에 강하게 사로잡혔었다. 물론 그곳에서 나오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 감정의 꺼풀이 너무도 순식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며 그 뒤에 있던 현실, 내가 맞닥뜨리며 차근차근 마주해 가야 할 지지부진한 삶의 모습들이 한가득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말이다. 나는 개신교인들이 '신천지 현상'의 어떤 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경계한다면, 신천지를 낳고 기른 주요 양육자가 한국 개신교회라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그 고민의 내용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교회를 자발적으로 떠난 뒤 백팔배를 시작했다. 이전에 했던 '기도'와 다르게 경험하는 감각도 있나. 

백팔배 경험은 개인적으로 무척 울컥했고 경쾌했다. 나의 몸 마디마디를 새롭게 발견하고 되살리고 되찾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백팔배를 할 때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 이전까지 오랜 시간 말에 기반한 기도를 하면서 왠지 마음이 헛헛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할 말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으면 기도 시간은 채워야 하니 방언 기도를 하곤 했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보다 차라리 무슨 의미인지 모를 암호 같은 소리를 뱉는 방언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백팔배를 시작한 초반에는 백팔배가 말없이 온몸으로 하는 기도 같아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기도니 뭐니 생각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삶을 가다듬는 자세로 하고 있다. 물론 생존을 위한 운동의 의미도 크다. 

- 이런 경험들을 한국교회 안에서는 공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다. 종교 다원주의·상대주의가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자성하고 성토하는 등의 운동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그와 같은 운동이 자칫 반발적 차원에서 그 '배타적 태도'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힘을 실어 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여러 개신교인이 그렇게 살고 계시듯이 전략적으로 그와 같은 태도들에 일절 관심을 주지 말고 그냥 '다원적이고 상대적으로' 재미있고 풍성한 삶을 마구 살아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아버지 같은 매우 엄격한 개신교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대부분의 개신교인은 이미 지나치게 그 신앙생활이 상대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큼 세상 것들도 다양하게 열정적으로 섬기며 살고 있으니까. 그런 모습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처럼 자신의 신앙생활 내에 허용하고 있는 그 한없는 너그러움을 부디 외부로도 널리 널리 확장하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 형태와 정도는 다르지만 근본주의적 신앙이 미치는 개인적·사회적 해악이 있다. 이렇게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가능할까. 

나는 종교학 연구자로서 '어떠한 현상이 개인적이고 사회적 차원에서 그 자체로 해악을 끼치고 있다'와 같은 특정 가치판단에 근거한 주장을 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와 같은 판단이 해당 현상의 다양한 면모를 살피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주의적 신앙인들이 이렇게 변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기본적으로 갖지 않으려 한다. 여러 가치판단이 최대한 배제되어야 상대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이해를 선보이는 것까지가 종교학 연구자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 사회 속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나의 역할은 예를 들면 '근본주의적이라 칭해지는 신앙인들이 이 사회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그런 입장에서의 나는 예를 들면 '근본주의적 신앙인들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표출하고 있는 각종 혐오'에 작은 일부터, 길게 보며 대응하려 한다. 나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이 사회에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당장 앞장서지 못하더라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크고 작은 차별의 목소리들에 다른 목소리를 드러내고, 혐오의 발언을 다양한 지혜로운 방식으로 멈칫하게 하거나 멈추게 하고, 그저 버겁고 싫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를 그럼에도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 등을 통해서다. 

좀 우스울 수 있는데 나는 부모와의 관계 맺기 실천을 거창한 차원에서 생각한다. 가정을 한 사회로 생각하고, 이곳에서의 실천이 사회적 의미가 있다는 생각 속에 그분들을 만난다. 수용하기 힘든 다른 목소리를 지닌 사람, 같은 자리에 있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이 사회를 내가 꿈꾸는 사회에 더 가깝게 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한다. 나는 작아 보이는 관계 속에서 하는 실천 하나하나가 이 사회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이 작은 관계 속에서 내가 계속해서 새로워진다면, 그로 인해 이 관계에 작게나마 변화가 생겨난다면, 사회 또한 조금이나마 새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변화란 원래 미치도록 지난한 것이다, 쉬운 변화는 모두 가짜다, 라는 굳은 결의 속에 살아가고 있다.

- 책에서 푸코의 '자기 배려' 개념을 통해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예술 작품처럼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주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새롭게 삶을 다듬어 가는 부분이 있나. 

요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다. 책 교정 작업에서 문장을 수정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 같은 내용의 문장을 어떻게 바꾸냐에 따라 글의 생동감이 많이 달라지더라. 글은 살아있구나 하고 느꼈다. 그러면서 내용도 문장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찰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 그와 같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스스로와 주변을 정직하면서도 깊게 살피고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지내고 있다.

- 지금도 계속 교회를 나가지 않나. 작가에게 기독교 신앙, 더 나아가 '믿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를 나가지 않은 지 7~8년쯤 됐다. 신앙의 의미를 생각할 만큼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한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자신의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지, 그것이 현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등이 궁금하다. 만약 그가 개신교인이라면, 아무래도 개신교인들은 '하나님'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속에서 자신의 서사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서사로 인해 가려진 삶의 모습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니까 '믿음' 같은 것보다는 그냥 삶이 궁금하다. 
책의 각 장마다 나오는 그림도 이 작가의 몸에 새긴 타투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책에 나오는 남아메리카 부족민이 그린 그림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한국 개신교의 변두리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요즘 주목하는 개신교 현상 혹은 다음 집필·연구 주제는. 

지금 우선은 박사논문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해서 논문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로 수정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논문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단적이고 사이비적이라 여겨지는 '피갈음'이라는 가르침과 실천이 어떠한 인간적인 고민과 질문, 행동들 속에서 그 형태를 갖추고 제각기의 모양으로 뻗어 나갔는지에 대한 글이다. 가르침의 내용이 자극적인 만큼 그에 따른 호기심과 흥미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고 생각한다. 피갈음 실천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나, 이를 주창한 신종교 공동체 관련 사회적 현상으로 분석한 후, 인문학적인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글로 완성하고 싶다. 

앞으로도 문제적으로 여겨지는 종교적 현상들과 관련하여 다양한 종류의 대중적인 글을 쓰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에서 1995년에 옴진리교가 일으킨 지하철 사린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쓰고, 그로부터 1년 후에 옴진리교 신자였거나 여전히 신자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언더그라운드 2: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을 썼다. 이 두 번째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와이 하야오라는 심리치료사와 대담한 내용을 실어 놓았다. 그 대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옴진리교 창시자였던 아사하라의 종교적 이야기가 그 신도들에게 어쩌면 그토록 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 있었을까? 일본 사회는 그와 같은 아사하라식 이야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루키는 스스로가 던진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이 문제는 이른바 전문적인 컬트 해체자처럼 '이쪽이 옳다, 저쪽은 틀렸다. 그러니 이쪽으로 돌아와라'라는 식으로 이론적으로만 밀어붙여 봐야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중략) 그런 부정적인 영역을 삼키는 더 큰 긍정적인 영역이 있다면 더 잘될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를 수용하는 더 큰 이야기 말입니다. 결국 그것은 선악의 승부라기보다 스케일의 승부가 될 것 같기도 하군요." 나는 앞으로 하루키가 말한 의미에서 "이야기를 수용하는 더 큰 이야기", 아픔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잘 수용하여 더 넓고 깊은 이야기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사람이고 싶다.

-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부모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생각했다. 무언가를 버거워하고 미치도록 힘들어하는 것은 아주 좋은 신호다. 이 힘듦 안에 나의 가장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무엇에서 도피하고 있고 무엇을 거부하고 있는지, 이 가운데 내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고, 선을 그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낱낱이 알아 가 보자. 변태처럼 그 아픔을 거꾸로 비집고 들어가자. 

굉장히 압축적으로 온갖 재앙을 경험한 욥이 끔찍한 아픔 속에서 그 고통의 의미를 묻지만 하나님은 이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신약에서도 바울이 그러지 않나.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은 토기장이에게 있다고. '내가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나 자라게 된 것인가'에 대한 답은 하나님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주 기쁜 소식이다. 이제 내가 놓인 환경은, 내 앞에 차려진 밥상인 거다. 아주 소화하기 버겁고 전혀 손대고 싶지 않은 종류의 밥상일 수도 있겠지만, 살려면 어떡하나. 우선 먹고,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굵다란 똥이든 묽은 설사든 배설도 해야 한다. 물론 다른 밥상을 찾아 떠나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이제 이 상황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는 거다. 이제 내 앞에 놓인 현실은 내 것이다. 부모의 것도 하나님의 것도 아니고,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미치도록 버거운 가운데서도 발가락부터라도 조금씩 꼼지락거릴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남들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아직 그 모든 '좋은' 조언들을 수용하기 버겁다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이 신앙을 옹호하고 싶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된다. 이왕지사 근본주의 가정에서 태어난 거 더욱 철저하게 근본주의적으로 살며 그 세계를 본격 탐험해 볼 수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이, 그렇게 살기로 한 이는 바로 '나'라는 자각 속에 살아간다면 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자신과 주변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이 책을 통해 어떠한 독자들과 만나고 싶나.

어떤 분이든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책이 발간된 이후 남편이 가끔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구매자 분포'를 보여 줬는데, 오랜 시간 알라딘에서 60대 이상 남성의 구매율이 가장 높아서 조금 당황했다. 농담을 섞어 말씀드리면 '아버지 살해 과정'이라는 추천 문구에도 덥석 책을 들어 주시다니, 역시 아버지들은 강하시구나 생각했다. 또 생각 외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분들이 글을 두루 깊게 읽어 주셔서 무척 감사했다. 최현숙 선생님과 이라영 선생님이 추천사를 써 주셨는데,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무척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글을 읽어 주신다는 생각에 한동안 엄청 두근거렸다. 아무튼 이미 읽어 주셨고 지금 읽고 계시고 앞으로 읽어 주실 분들에게 모두 깊이 감사드린다.

나수진 sjnah@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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