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 수필 ] 외쪽 사랑, 자연 그리고 산

[<사람과 산> 황대연 객원기자]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강아지를 사랑하고 누군가는 장미를 사랑하며 달이나 별을 사랑하기도 한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삭막한 삶의 여정에 사랑하는 거라도 있어야 작은 행복이라도 맛보며 살아갈 수 있 지 않을까. 그 사랑이 외쪽사랑이라도 말이다.
사랑 하나, 가을 산
산은 계절에 따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나를 끌어당긴다. 봄은 새싹이 움트는 생동감과 녹색 향연으로, 여름은 수목의 짙푸른 녹음으로, 가을은 색색으로 물든 고운 자태로, 겨울은 그림 같은 상고대와 설경으로 나를 매료시킨다. 사계절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가을 산을 꼽는다.
가을이면 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산을 만든다. 그러나 가을 산이 아름다운 것은 단풍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훌쩍 높아진 하늘이 있고 숨 쉴 때마다 온몸에 스며드는 달콤한 공기가 있어서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숲속을 걷는 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사랑 둘, 다람쥐
산에 들어서면 다람쥐를 자주 만난다. 청설모가 아닌 동요 속에 나오는 '산골짜기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 가는' 다람쥐 말이다. 자그마한 몸에 줄무늬가 선명한 토종 날다람쥐. 복실대는 꼬리를 들어 올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주 위를 부지런히 살피며 요리조리 나무를 오르내리는,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녀석은 사람을 자주 봐서인지 도망가지도 않는다. 어느 땐 가까이 다가와 먹이를 달라며 재롱을 떨기도 한다.
"사람님, 먹을 거 있으면 조금만 나눠주세요."
"그래 다람쥐야, 이리 가까이 오렴"

사랑 셋, 홍 공작단풍 나무
가장 사랑스러운 동물이 다람쥐라면, 가장 사랑스러운 나무는 공작단풍 나무다. 그중에서 홍 공작단풍 나무. 이 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다르게 봄부터 붉은 옷을 차려입는다. 어찌 보면 이미 단풍이 든 모습이다. 물론 봄부터 잎을 붉게 물들인 나무가 더러 있지만, 홍 공작단풍 나무야말로 단연 군계일학이다.
새의 깃털처럼 가늘게 쪼개진 잎이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늘어져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날개를 펴고 있는 한 마리 공작새다. 그래서 공작단풍 나무로 불리지만, 내 눈에는 붉은색 드레스를 차려 입은 고귀하고 기품 있는 여인으로 보인다. 그 자태가 어찌나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바로 바라보기는커녕 숨조차 멎을 것만 같다.

사랑 넷, 코스모스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하고, 그 천지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꽃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 가장 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다. 그래서인지 코스모스에는 때 묻지 않은 소박함과 순수함이 깃들어 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불볕더위를 밀어 내기 시작하면, 여름이 서둘러 떠나갈 채비를 하고 그 자리에 가을이 들어서려 한다.
그즈음에 피어나는 꽃 코스모스. 길가의 노랑, 분홍, 하양, 색색의 코스모스가 스치는 산들바람에 살랑인다. 그 모습은 마치 청순가련한 사춘기 소녀의 수줍은 미소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꽃말도 '소녀의 순결과 순정'이라 했으리라. 가냘프면서도 고운 꽃이 실바람에 살랑거린다고 하여 '살살이꽃'이라고도 부른다.

사랑 다섯, 일출
일출, 떠오르는 태양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끝자락에서 빨간 점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점점 커지면서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사라지고,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느린 듯 빠르게 소리 없이 떠오른다. 나는 종종 산에서 솟아오르는 태양과 마주한다.
언제 어디서 봐도 아름다운 게 일출이지만, 산에 올라 마주하는 일출은 가슴마저 벅차오르게 한다.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뻗어 내린 산줄기의 곡선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구름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쪼릉~쪼르릉'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어둠 속에 잠들었던 온갖 나무와 풀, 산짐승과 풀벌레 등 하늘 아래 모든 생명체가 기지개를 켜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아름답고도 장엄한 대자연 앞에 넋을 잃는다.
일출은 매일 거듭되나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지구가 자전을 멈추거나 태양이 사라지지 않는 한 태양은 계속 뜨고 질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장엄한 일출을 언제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좋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시간에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에 있어야 한다.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할 때마다 행복과 기쁨이 뒤범벅 되어 가슴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앞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뒤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아래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둘레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글.사진 황대연 객원기자 │ 백두대간 종주 등 2,900여 개의 국내 산과 킬리만자로 등 9개의 해외 산에 올랐다. 저서 『백두대간에 서다』, 『은퇴산꾼 고산에 서다』, 『헤어날 수 없는 사랑』, 『맹물에 조약돌을 삶아 먹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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