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일의 여행] 팬시 아시안, 정글 아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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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난타전이 벌어졌다. 베트남 네티즌들은 북한 핵공격을 운운하며 한국을 조롱하기 시작했고, 한국 네티즌들도 베트남전을 들먹이면서 "원숭이의 외침"이라며 받아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경제력 격차를 운운하며 상대를 동물에 빗대어 비하했고, 베트남인들은 서구 인종주의의 오래된 기호인 '눈 찢기'를 차용해 동아시아 전체를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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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난타전이 벌어졌다. 배틀그라운드 운영사 크래프톤이 주최한 게임 대회 'PUBG 아시아 스타즈 2026'에서 베트남 국가대표 선수 두 명이 '방플(경기 중계를 보며 플레이를 하는 행위)'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주최 측이 경기 취소와 자격 박탈이라는 초강수를 둔 직후였다. 베트남 네티즌들은 북한 핵공격을 운운하며 한국을 조롱하기 시작했고, 한국 네티즌들도 베트남전을 들먹이면서 "원숭이의 외침"이라며 받아치기 시작했다. 교민 사회에서 "해당 게임을 금기어로 하자"는 얘기가 돌만큼 양국 감정의 골은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8월에는 그림 한 장이 '겸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 누리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식사 시 주로 젓가락을 쓰는 문화권인 한·중·일·베트남 4개국을 비교하며, '한국만 왜 밥그릇을 들고 먹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글은 별안간 한국과 베트남 간 상호 비방전으로 번졌다. 일부 한국 네티즌이 "동북아 비교에 왜 동남아가 끼느냐"고 지적했고, 이에 베트남 네티즌들은 한국의 분단·성형 등으로 맞받아쳤다.
게임 하나가, 그림 하나가 이렇게 쉽게 혐오에 불을 댕기는 것은 이런 논쟁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K팝으로 묶인 한국과 동남아 팬덤 사이에서는 이런 신경전이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월 말레이시아 데이식스 공연에서 카메라를 꺼내들다 퇴장당한 한국인 팬이 거칠게 항의했고, 이를 접한 동남아 팬덤이 '시블링(SEAbling·동남아시아를 뜻하는 SEA와 형제자매를 뜻하는 sibling의 합성어)'을 자처하며 반한 여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런 논쟁을 지켜보며 가장 씁쓸했던 점은 서로를 공격하는 언어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모와 경제력이 서로를 찌르는 무기가 된다. 한국인들은 경제력 격차를 운운하며 상대를 동물에 빗대어 비하했고, 베트남인들은 서구 인종주의의 오래된 기호인 '눈 찢기'를 차용해 동아시아 전체를 조롱했다. 이는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다. 상대방을 동등한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굴복시키고 타격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의사소통의 파멸이다.
문명과 야만, 선진과 후진을 가르는 잣대는 한때 서구 제국주의가 아시아 수탈을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표현만 바뀌었을 뿐 그 논리가 재생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동북아계를 '팬시 아시안(Fancy Asian)', 동남아계를 '정글 아시안(Jungle Asian)'으로 구분하는 말도 서열화의 수단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아시아인들이 외부의 잣대를 들고와 서로를 겨누는 꼴이다.
올 3월 타계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마지막 당부는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평생 비이성과 맞서 싸워온 그는 말년에 SNS가 만든 왜곡된 소통 환경을 깊이 우려하면서도, 인류를 향해 '이성적인 대화의 힘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고 외쳤다.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일구어 온 것은 '나와 타자'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학습해 왔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조롱, 비난이 아닌 오직 '더 나은 논거'에만 기대라던 그의 주문이 무겁게 다가온다. 잠시라도 키보드에서 손을 떼는 일, 이 퇴보의 낭떠러지 끝에서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켜낼 유일한 길일 것이다.
[박태일 오피니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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