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구의 세옥'에 숨겨진 뒷 얘기…파리의 럭셔리 호텔은 왜 한식을 택했나 [김인애의 한입 프랑스]

김인애 2026. 10. 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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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보석 브랜드가 모여 있는 파리 명품의 1번지, 방돔 광장. 광장 옆 '파크 하얏트 파리-방돔' 호텔에 지난 달 17일 한식당 '세옥(SEOK)'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파리 최고급 호텔이 한식당을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년 전만 해도 파리의 고급 호텔이 한식당을 들이는 건 모험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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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프랑수아 후케트
하얏트 방돔 총괄 셰프 인터뷰
미슐랭 3스타 강민구 셰프
파크 하얏트 파리-방돔에 ‘세옥’ 오픈
미쉐린 3스타의 시선으로 선보인 한옥
‘서울의 집’ 같은 환대의 공간 으로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가 모여 있는 파리 명품의 1번지, 방돔 광장. 광장 옆 '파크 하얏트 파리-방돔’ 호텔에 지난 달 17일 한식당 ‘세옥(SEOK)’이 문을 열었다. 국내 유일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서울 '밍글스'의 강민구(42)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파리에 낸 첫 레스토랑이다.

파리에 한식당은 이미 많다. 그러나 파리 최고급 호텔이 한식당을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옥이 문을 열기까지는 준비에만 3년이 걸렸다. 3년 전만 해도 파리의 고급 호텔이 한식당을 들이는 건 모험에 가까웠다.

세옥이라는 이름에는 강민구 셰프의 개인적인 기억이 담겼다. 아버지의 이름 '석(SEOK)'을 '세'와 '옥'으로 나눠 읽게 했다. 강민구 셰프의 고향인 서울의 ‘Se’와 집을 뜻하는 ‘옥’.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서울의 집을 파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강 셰프는 오픈을 앞두고 "오랜 시간 품어온 두 가지 목표는 미쉐린 3스타 획득과 미식의 본고장 파리에 한식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 목표는 파크 하얏트 방돔의 총괄 셰프 장프랑수아 후케트(Jean-François Rouquette), 총지배인 고르카 베르가레체(Gorka Bergareche)와 손을 잡으면서 현실이 됐다. 후케트는 2005년부터 이 호텔 주방을 이끌며 메인 레스토랑 ‘퓌르(Pur)'를 맡고 있다. 강 셰프와 함께 세옥을 연 후케트 셰프에게 한식을 선택한 이유와 식당을 준비한 과정을 직접 물어 봤다. 다음은 1문 1답.

파크 하얏트 파리-방돔의 장 프랑수아 후케트 총괄 셰프 ©Park Hyatt Paris Vendôme


▶ 왜 한식을 선택했나요.
“저희가 조금 앞을 내다본 거죠. 우선 한국 문화가 세계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K-뷰티와 음악, 음식까지 여러 분야가 아주 역동적이죠.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두각을 나타낸다는 건 그 바탕에 상당한 지혜가 있다는 뜻입니다.

한식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더군요. 그런데 아직은 주로 바비큐로 떠올리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잘 몰라요. 저희는 또 하나의 스타 레스토랑을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별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한국 3스타 예술가의 시선과 솜씨로 한국 요리를 더 잘 알리고 싶었습니다.”

▶ 처음 한식당을 열겠다고 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지금이야 유행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죠. 하지만 3년 전만 해도 한식당을 연다고 하면 ‘한식이라고요? 정말 괜찮을까요?’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래도 또 하나의 일식이나 이탈리안을 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 한식을 어떤 요리라고 보나요.
"한식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알던 일본이나 중국 요리와 견주면 언제나 한국 요리에는 늘 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닮았다는 건 아니지만, 프랑스로 치면 남부 요리에 가까워요. 마늘과 향신료, 풍미가 있잖아요. 그래서 제게 한국 요리는 흥겹고 햇살 같은 요리입니다. 한국에 가 보니 노래하고 맥주 마시기를 좋아하는 명랑한 분위기더군요. 요리가 사람을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Park Hyatt Paris Vendôme


▶ 한국 사람들은 어땠나요.
“제가 만나본 한국인들은 엄격한 면도 있지만 잘 웃고, 정말 부지런합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고 중국의 영향도 받았지만 뚜렷한 문화적 정체성이 있죠. 저와 20년 넘게 일한 조영실 셰프가 몇 년 전 한국의 좋은 발효장을 맛보게 해줬어요. 한국인들에게는 자기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미쉐린 3스타 셰프 야닉 알레노가 연결 고리가 되었다고요. 
“저희가 새 레스토랑을 구상하고 있을 때, 알레노 셰프가 고르카 총지배인에게 알려줬어요. 알레노 셰프는 '강민구는 한국에서 자기 세대 가운데 가장 재능 있는 셰프라고 생각한다'고 했죠. 강민구 셰프가 언젠가 파리에서 레스토랑을 열고 싶어 한다고요. 그게 시작이었죠. 당시 미쉐린 2스타였던 강 셰프를 두 셰프가 함께 요리하는 포핸즈 디너로 초청했어요.”

▶ 언제 마음을 정했나요.
“민구 셰프는 영리하고 체계적으로 일해요. 포핸즈 디너 이후 강 셰프가 저희를 서울로 초대했어요. 고르카 총지배인과 48시간 일정으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저기 살펴보느라 잠은 거의 못 잤죠. 파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고르카와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할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구나’.”


▶ 호텔 안에서는 어떻게 설득했나요.

“호텔 프로젝트에는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저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현할 준비를 모두 마쳐놓고 다가가면 얘기가 달라지죠. 무엇보다 스스로 그 프로젝트를 믿어야 해요.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믿어야만 그 생각을 믿는 사람이 한 명 생기고, 또 한 명이 늘어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좋은 생각이네’ 라고 말하기 시작하죠. 아이디어는 그렇게 실현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저와 고르카, 민구 셰프 세 사람이 시작했어요. 강 셰프에게는 의지가 있었고, 저희는 그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에 밍글스가 3스타를 받았습니다. 
“맞아요. 민구 셰프는 ‘여러분과 약속했으니 계속 함께 하겠습니다.’고 뜻을 전했어요. 그래서 저희도 오픈에 속도를 냈죠.”

▶강 셰프가 파리에 오려는 이유에도 주목 하셨다고요. 
“외부 셰프와 계약을 맺는 건 매우 복잡한 일이에요. 대개 열에 여덟은 돈 때문에 하죠. 그런데 민구 셰프에게서는 돈보다 더 강한 동기를 느꼈어요. 아직 아무도 자리 잡지 않은 곳을 찾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뉴욕에는 아토믹스가 있고, 런던에도 다른 곳들이 있죠. 파리는 그 자리가 준비돼 있었던 셈이랄까요. 다음은 푸아그라 파리에서 어떤 한식을 내야 할지가 풀어야 할 문제였죠."

▶ 처음 시식 때는 서양식 요리도 꽤 있었다고요.
"제가 강 셰프에게 말했습니다. ‘손님들이 원하는 건 서양 요리가 아닐 거예요, 푸아그라를 먹으러 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자 강 셰프가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더군요. ‘한식의 소프트파워로 나는 무엇을 알리고 싶은가'에 몰두했죠.”

▶ 가장 좋았던 요리를 꼽는다면요.
“애호박 새우전이요! 평범하고 단순해 보이는데, 먹어보면 재료의 맛이 풍성해요. 바비큐 뿐 아니라 갑각류나 해산물 요리도 입에 잘 맞았습니다. 고추장으로 살짝 매콤하게 맛을 낸 굴, 방어에 곁들여 내는 묵은지. 제철 지롤 버섯을 넣은 잡채도 인상적이었어요. 살짝 투명한 면이 일품이었고요. 먹는 즐거움이 가득했죠.”

브르타뉴산 굴에 고추장으로 맛을 낸 굴 ©Park Hyatt Paris Vendôme


▶ 아버지의 이름을 쓰자는 생각은 어떻게 나왔나요.

“실은 고르카 총지배인의 아이디어였어요. 식당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고르카가 민구 셰프에게 아버지 존함을 여쭤봤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석 달밖에 안 됐을 때였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이름을 떠올리게 됐고, 민구 셰프가 고민 끝에 이름을 나눠 표기하기로 했지요. 그대로 두면 영어에서 좀 상스러운 말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요. 여러 언어에서 모두 잘 통하는 이름을 찾아야 했습니다. ‘새옥’으로 읽으면 새로운 집이라는 뜻도 되겠죠.”

▶세옥의 아늑한 인테리어는 꼭 스피크이지 바를 연상케 합니다. 
“바로 그거예요. 음악이 있는 스피크이지. 그런 곳들이 음식까지 늘 훌륭하지는 않거든요. 이곳에는 미쉐린 3스타 셰프의 시각과 엄격한 기준이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정말 맛있고, 한국적인 음식을 만드는 거에요.”

[좌] 한국의 처마를 연상시키는 세옥의 천장 [우] 세옥의 디자인을 맡은 건축가 위고 토로 ©Park Hyatt Paris Vendôme
강민구 셰프 ©Park Hyatt Paris Vendôme


▶하얏트가 사업적으로 한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 
“식음 부문에서 큰돈을 벌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하얏트는 늘 존재감 있고 탄탄한 레스토랑을 원했어요. 그래야 호텔이 계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니까요. 호텔은 한번 문을 열면 크게 달라질 게 없지만, 레스토랑은 날마다 새로워지죠. 계절이 바뀌고 식재료가 달라지고, 창의성이 더해지거든요.”

그는 제이의 아들 톰 프리츠커가 요리를 좋아해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개인적인 관심 역시 하얏트가 식음을 중시하는 배경이라고 봤다. 프리츠커가 호텔로 확장한 집의 환대는 이곳에서 '강민구의 서울 집 식탁'과 만난다. 

 세옥은 어떤 레스토랑으로 남을 것인가

파리에 한식당은 많지만 자신 있게 권할 곳은 손에 꼽는다. 한식이 돈이 된다고 보고 뛰어든 중국계 업주가 적지 않다. 주방은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고된 노동을 견뎌야 하는 일터여서, 그 자리는 주로 한국인이 아닌 이주 노동자들이 채운다. 한식을 제대로 배운 요리사가 자리 잡기 어려운 여건이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이런 음식이 프랑스인에게 한식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세옥 발코니 모습 ©Park Hyatt Paris Vendôme


세옥은 서로 다른 주방에서 실력을 다진 한국인 여성 셰프들의 손을 거친다. 김혜연 셰프는 한국에서부터 강 셰프와 함께 일했고, 파리의 세토파를 거쳐 밍글스에서 쌓은 경험을 세옥으로 잇는다. 호텔의 김나래 셰프, 그리고 조영실 셰프도 있다.

취재 당시 오후 5시 반부터 7시 사이, 이른 저녁 자리는 한국인 손님들이 먼저 채웠다. 9월 28일 시작된 파리 패션위크를 맞아 파리를 찾은 이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다. 세옥이 한국인 뿐 아니라 프랑스인에게도 한식이 당기는 날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지인에게 권하고, 다시 찾는 식당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식당은 주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함께 간 프랑스인 지인은 어떤 메뉴를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문을 기자에게 맡겼다. 코스 요리인 차림도 있지만, 여러 접시를 골라먹고 싶은 손님은 메뉴판 앞에서 머뭇거리기 쉽다. 음식은 물론 그 안에 담긴 한국 문화와 강민구의 요리 세계까지 손님에게 건네는 것이 홀의 일이다. 그 역할이 자리를 잡는다면 세옥에서의 한 끼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세옥의 메뉴에는 한국에서 흔히 먹는 요리들이 놓인다. 디저트는 2024년 고에미요 ‘올해의 파티시에’로 선정된 김나래 셰프가 맡는다. 첫 메뉴는 무화과 찹쌀도넛이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익숙한 맛에 기억을 더듬게 된다. 서양인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단팥 대신 제철 무화과가 속을 채웠다. 한국인에게는 향수를, 외국인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주는 맛. 계절 과일 본연의 맛에 한국적인 손길을 더하는 김 셰프다운 선택이다

식사를 마치고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이 음식들을 ‘강민구의 요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익숙한 한식을 세련되게 담아내는 것을 넘어, 한국의 맛을 지키면서 재료와 조리, 맛의 구성에 그만의 시선을 담아내는 일일 것이다. 후케트가 말한 '3스타 예술가의 시선'이 세옥의 접시에서 어떻게 무르익어 갈지 궁금해진다.

세옥 ©Park Hyatt Paris Vendôme

이름 있는 셰프의 새 식당은 그를 찾아오는 손님 뿐 아니라 그 주방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 요리사들에게도 하나의 목적지가 된다.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한 세옥에 유럽 무대를 꿈꾸는 한국 요리사들이 모여드는 것. 파리에 새로 문을 연 이 식당에 남기는 가장 큰 기대다.
 


세옥(SEOK)
-위치: 파크 하얏트 파리-방돔 (5 Rue de la Paix, 75002 Paris, France)
-영업시간: 수~일, 오후 5시 30분~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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