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경영’ 전통 무너뜨린 한국투자 3세의 고속 승진…첩첩산중 승계 가도 [재계 후계자들]

허인회 기자 2026. 10. 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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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기업 오너 3·4세들이 속속 경영 일선에 나서며 본격적인 세대 교체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기술 혁신과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이 요동치는 대격변기를 맞아, 이들 젊은 후계자의 리더십과 신(新)성장동력 발굴 여부는 개별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명운을 가를 핵심 시험대로 꼽힌다.

증권가에선 김 상무의 승진을 놓고 오너 3세 경영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추가 자본 투입이 불가피한 KDB생명 인수 등으로 배당 확대 여력은 더욱 줄어들었다"면서 "성장을 위한 재투자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주주들 눈에는 오너 3세의 지분 매입 단가와 증여세를 낮춰주기 위해 회사 전체의 시가총액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비칠 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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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7년 만에 역대 최연소 임원 등극…대리에서 상무로 직행
‘주주환원’ 업계 최하위…주주들 “의도적 주가 누르기” 의혹도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국내 주요 기업 오너 3·4세들이 속속 경영 일선에 나서며 본격적인 세대 교체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기술 혁신과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이 요동치는 대격변기를 맞아, 이들 젊은 후계자의 리더십과 신(新)성장동력 발굴 여부는 개별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명운을 가를 핵심 시험대로 꼽힌다. 시사저널은 주요 기업 후계자들의 행보와 승계 구도,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쟁점들을 차례로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최근 재계에 '30대 임원' 발탁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여전히 그 문턱은 높다. 업무 숙련도와 조직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 인사 관행 탓이다. 그런데 최근 증권가에서 '대리'에서 '상무'로 수직 상승한 파격적인 30대 임원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한국금융지주) 회장의 장남 김동윤 한국투자증권 상무(33)다. 역대 최연소 임원 타이틀과 함께 '3세 경영'의 닻을 올렸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1%도 안 되는 미미한 지분율과 천문학적인 증여세 부담에 더해 '초고속 벼락 승진'이라는 세간의 의구심을 뛰어넘을 압도적인 경영 능력을 시장 앞에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 한국투자증권 사옥 ⓒ시사저널 박정훈

과장·부장 다 건너뛴 33세 황태자

한국금융지주의 모태는 동원그룹이다. 2004년 동원그룹 계열분리 당시 김재철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회장이 금융 부문(당시 동원금융지주)을 맡았고, 이듬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지금의 진용을 갖췄다. 범(汎)동원그룹 일가는 대대로 '현장 중심'의 가풍을 이어왔다. 말단 선원으로 시작해 원양어선 선장을 거쳐 그룹을 일군 김 명예회장의 철학이 짙게 밴 결과다. 후계자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김 명예회장은 대학 졸업을 앞둔 김 회장을 1986년 북태평양 명태잡이 어선에 태워 반년간 하루 18시간씩 갑판에서 일하게 했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역시 참치 통조림 공장 생산직과 청량리 도매시장 영업사원으로 3년 넘게 경험을 쌓았다.

김 회장은 졸업 후 동원산업에 입사해 2년 동안 근무한 뒤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1991년 한신증권(옛 동원증권) 명동지점 대리로 입사해 채권부, 기획실, 뉴욕사무소, IT본부 등 회사의 최일선 부서를 13년간 묵묵히 돌며 실무를 익힌 뒤에야 경영 전면에 나섰다.

장남인 김 상무의 시작도 겉보기엔 비슷했다. 1993년생인 그는 대학생이던 2016년 동원F&B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한 달간 근무했다. 2017년 영국 워릭대를 졸업하고 해병대 전역 후인 2019년엔 해외대 공채로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했다. 강북센터지점에서 평사원으로 시작해 이듬해인 2020년 대리로 승진했다. 이후 본점으로 이동해 기업금융(IB) 1부와 경영전략실 등을 거쳤으며, 2024년부터 최근까지 미국법인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그의 '현장 체험' 유효기간은 짧았다. 대리로 진급해 미국법인에 머물던 그는 과장, 차장, 부장이라는 허들을 단숨에 건너뛰고 입사 7년 만에 상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한국투자증권 역대 최연소 임원 기록이다. 기존 기록은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이다. 2007년 상무 승진 당시 38세였다. 김 상무가 배치된 경영기획본부는 그룹의 중장기 전략과 신사업 방향을 수립하는 핵심 컨트롤타워다.

증권가에선 김 상무의 승진을 놓고 오너 3세 경영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는 경쟁사인 미래에셋그룹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과거 "2세 경영은 없다"며 자녀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창업자·전문경영인·이사회 역할을 분리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는 흐름과도 유사하다. 다만 자녀들은 향후 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해 투자 판단과 전략 논의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박 회장의 구상이다. 실제로 김 상무와 동갑인 박 회장의 장남 준범씨는 미래에셋증권 수석매니저로 일하고 있으며, 장녀 하민씨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국 자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초고속 승진으로 경영의 중심에 섰지만, 김 상무가 보유한 지주사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다. 김 상무는 2023년 7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장내 매수를 통해 한국금융지주 주식 33만6739주를 매수했다. 총 지분율은 0.60%다. 주식 매입자금은 약 180억원으로 추정된다. 다만 자금 출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김 상무의 매집 행보는 멈춰선 상태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왼쪽 사진)과 김동윤 한국투자증권 상무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사진 자료

쥐고 있는 지분은 단 0.60%

한국금융지주의 최대주주는 김 회장으로 지분 20.7%를 확보하고 있다. 지주사가 한국투자증권과 한국투자캐피탈을 비롯해 핵심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소유가 분산된 여타 금융지주와 달리 단순하고 수직적인 지배구조로, 지주사 지분만 확보하면 그룹 전체 경영을 통제할 수 있다.

김 상무가 그룹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거나 부친의 지분을 물려받아야 한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세금이다. 최근 주가(약 19만원 선)를 기준으로 김 회장의 지분 가치는 2조원을 넘어선다. 이를 김 상무에게 전량 증여할 경우, 최대주주 할증(20%)과 최고세율(50%)을 적용하면 납부해야 할 증여세만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매년 막대한 배당수익을 올린다 해도 개인의 자금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액수다. 향후 주가가 오른다면 감당해야 할 증여세는 더욱 늘어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한국금융지주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누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형 증권 상장사 가운데 가장 낮은 주주환원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3월 한국금융지주가 발표한 현금 배당 등 주주환원율은 25.1%다. NH투자증권(52%), 미래에셋증권(40.4%), 키움증권(36.5%), 삼성증권(35.5%) 등 경쟁사에 비해 현저히 낮다. 지난해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의 당기순이익은 2조135억원, 영업이익은 2조3427억원을 기록해 증권 업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으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주주환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더해 자사주 소각 내용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한국금융지주만 유일하게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은 지분율을 낮추는 흐름이다. 지난해 5월 국민연금의 한국금융지주 지분은 12.86%였다. 하지만 올해 3월엔 12.03%까지 지분을 축소했다. 밸류업 이행 정도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탓에 투자 규모를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말 기준 국민연금 지분은 12.16%다.

김 회장은 "주가 부양책을 비롯한 밸류업은 배당보다 성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밸류업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익 확대 등 기업 가치 제고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추가 자본 투입이 불가피한 KDB생명 인수 등으로 배당 확대 여력은 더욱 줄어들었다"면서 "성장을 위한 재투자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주주들 눈에는 오너 3세의 지분 매입 단가와 증여세를 낮춰주기 위해 회사 전체의 시가총액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비칠 뿐"이라고 꼬집었다.

"탈세 안 한다"던 선대…김남구의 선택은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에 더해 금융 당국의 엄격해진 지배구조 개선 잣대도 승계 가도의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김 회장은 한국금융지주와 핵심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에서 20년 넘게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 중이다. 이는 KB증권, 메리츠증권 등 주요 경쟁사들이 이사회 독립성을 위해 의장직을 사외이사에게 넘기는 최근의 흐름과 역행하는 행보다. 회사 측은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통해 독립성을 보완하고 있다고 해명하지만, 당국의 생각은 다르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최고경영자(CEO)의 이사회 의장 겸직을 문제 삼고 있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조직인 만큼 CEO가 의장까지 맡으면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김 상무의 초고속 승진으로 승계 작업이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당국의 현미경 검증과 관리·감독 수위는 앞으로 한층 더 깐깐해질 전망이다. 견제 장치가 부실한 '오너 1인 체제' 속에서 꼼수 지분 매집이나 편법 승계 징후가 포착될 경우, 당국의 강력한 제재와 철퇴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1991년 김 명예회장은 장남인 김 회장에게 동원산업 주식을 증여하며 당시 사상 최대 금액인 62억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신고했다. 훗날 김 명예회장은 "절세를 가장한 탈세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김 회장은 부친의 위치에 서있다. 투명한 승계를 택했던 선대회장의 길을 김 회장 역시 따를 것인지에 증권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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