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병기’ 힘실은 英학자, 6·25 전사자 후예였다

박세영 기자 2026. 10. 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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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한국과 일본을 가르지만, 수천 년 동안 두 나라를 이어 온 바다이기도 합니다."

1일 동해연구회 국제세미나에서 발표한 가이 퓨지(42·사진)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가 말하는 동해의 의미다.

퓨지 교수는 "한국전쟁의 영향은 우리 가족에게 깊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퓨지 교수는 이를 두고 "이름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기억의 다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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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 퓨지 에든버러대 교수
소수언어 지명 연구 사례 들어
“포용적 이름짓기, 관계 잇는일”
70여년 만에 외조부의 묘 찾아
“이제야 제대로 禮 갖출수 있어”

“동해는 한국과 일본을 가르지만, 수천 년 동안 두 나라를 이어 온 바다이기도 합니다.”

1일 동해연구회 국제세미나에서 발표한 가이 퓨지(42·사진)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가 말하는 동해의 의미다. ‘포용적 지명을 향하여’를 주제로 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데 대한 학술적 의미를 분석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소수언어 지명 연구자인 그는 여러 이름이 공존하는 다리의 대표 사례로 북사미어·핀란드어·노르웨이어 세 이름을 얻은 핀란드·노르웨이 국경 다리를 소개했다. 퓨지 교수는 “세 이름을 붙인 포용적 접근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소개했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포용적 이름 짓기는 우리를 가르는 것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라며 “외교의 한 갈래로서 과거 긴장이 있던 곳의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다”면서 동해와 일본해 표기 병기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날 양복의 왼쪽 가슴에 태극기와 스코틀랜드 국기가 엇갈린 배지를 달고 나온 그는 6·25 참전용사의 후예다. 외조부 패트릭 앤지어 소령은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 중대장으로 1951년 4월 23일 설마리 전투에서 전사했다. 1950년 12월 평양 철수 때 대동강 다리를 지키며 아내에게 보낸 일기에는 ‘겁에 질린 아이들의 슬픈 모습을 많이 보았다. 혼란의 땅에서 그들이 어디서 안식처를 찾을지 생각했다’고 적었다. 퓨지 교수는 “한국전쟁의 영향은 우리 가족에게 깊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외조부의 유해는 부산 유엔묘지에 신원 미상으로 묻혀 있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퓨지 교수는 영국 국방부 조사관에게 매장 기록을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그 일대에서 묘가 없는 연대 장교는 한 명뿐이었고, 한 묘에 묻힌 다른 전사자와는 편지 속 ‘빠진 치아 충전재’와 1943년 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부상 때 찍은 X선 사진을 대조해 최종 구별했다. 73년 만인 2024년 11월 묘비에 이름이 새겨졌다. 앤지어 소령의 딸인 그의 어머니는 그전에 그 묘를 모르고 지나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묘 앞에서 비로소 할아버지께 제대로 예를 갖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방한에서 외조부가 전사한 칠중성 고지를 찾은 그는 “걸어 보니 할아버지가 왜 그 고지를 지켰는지 알겠더라”고 감회에 젖었다.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들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선 6·25 전사자 추모록이 마침 외조부 이름이 적힌 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는 “일로 찾은 지구 반대편에서 우연히 할아버지 이름을 마주하니 믿기지 않았다”며 감격해 사진에 담았다.

그는 다른 참전국에서 잊힌 전쟁을 기억하려면 “망각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며 파주시의 ‘글로스터 영웅의 다리’와 글로스터시의 ‘파주길’을 ‘지명 외교’로 소개했다. 퓨지 교수는 이를 두고 “이름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기억의 다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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