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터미널 된 새마을금고, 목욕탕 품은 농협…지방 소멸 속 상호금융권의 따뜻한 변신

신무경 기자 2026. 10. 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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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경북 봉화군에 사는 김분희 씨(73)는 추석을 맞아 구깃구깃한 지폐를 신권으로 교환하러 인근 춘양버스터미널을 찾았다. 김 씨가 새 돈을 바꾸러 터미널을 찾은 이유는 터미널 대기실이 곧 은행 점포여서다.

그중에서도 정산면은 인구가 더 적어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점포는 한 곳도 없다.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 상호금융은 점포 문을 닫기보다 지역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형하고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전국 곳곳의 점포를 줄이며 부동산을 매각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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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손주)들 용돈 줄라꼬 캐서 그라는데 새 돈으로 몇 장 바꿔 줄 수 있니껴?”

지난달 23일, 경북 봉화군에 사는 김분희 씨(73)는 추석을 맞아 구깃구깃한 지폐를 신권으로 교환하러 인근 춘양버스터미널을 찾았다. 김 씨가 새 돈을 바꾸러 터미널을 찾은 이유는 터미널 대기실이 곧 은행 점포여서다. 1층 면적 238㎡(약 72평)의 7할은 터미널 대기실로, 나머지는 새마을금고 영업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공간은 원래 춘양공용버스정류장이었다. 봉화군 인구가 줄며 경영이 악화되자 2022년 2월 문을 닫았다. 정류장 폐쇄에 주민들은 상실감이 컸다. 서울과 대구 등 대도시와 연결되던 관문이 사라지니 고립되는 느낌이었다. 이때 봉화군새마을금고가 이곳을 사들여 전면 리모델링해 2024년 7월 터미널과 금고가 ‘동침’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바꿔놨다.

터미널 겸 금고 영업점은 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효재 봉화군새마을금고 대리는 “새마을금고가 터미널을 인수한 뒤로 운전이 어려워 버스를 이용하려는 고령자, 터미널을 오가는 외국인 근로자 고객들이 영업점을 더 많이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공간은 교통과 금융의 복합 허브 역할을 하며 유동 인구를 더 늘렸다. 일일 평균 이용객이 100명을 넘는다. 특히 명절 연휴 기간이나 터미널 바로 앞에서 열리는 5일장이 열릴 때는 영업점과 대기실이 북적거린다.

썰렁했던 공간에 유동 인구가 늘자, 지역 노인들에게 일터도 생겨났다. 노인 일자리 전담 기관인 한국시니어클럽협회가 춘양면사무소로 파견한 지역 노인들이 매일 6시간씩 이 터미널을 찾아와 이용객들의 전자티켓 발권을 돕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뱅킹이 늘고 대면 업무가 줄자 수익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점포 수를 줄이면서도 점포의 기능을 진화시키고 있다. 점포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 계좌 개설과 대출 상담 등 전통적 의미를 넘어서 지역의 일상을 지탱하는 생활 인프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이나 교육센터 같은 문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미래형 점포로 탈바꿈한다.

●돈을 맡아주던 공간, 생선 보관소로

수협중앙회는 올해 5월 인천시 제물포구 축항대로 인천항 인근에 있었던 수협은행 경인 본부 건물을 ‘활어유통센터’로 변신시켰다. 과거 돈을 보관하던 공간이 생선들을 맡아두는 곳으로 바뀐 셈이다. 활어유통센터는 어업인들이 대량 양식으로 기른 어류를 유통할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찾는 곳이다. 어업인들은 판로가 하나 더 생겨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활어를 구매하는 호텔이나 대형 할인점도 활어유통센터에서 다른 유통 채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은행의 기능과 함께 안전관리 기능까지 맡는 점포도 있다. 삼천포수협 점포는 우리 선박의 안전한 통신과 교신을 진행하는 어선안전조업국을 두고 어업인들의 등지기가 되고 있다.
지역 내 문화·커뮤니티 거점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눈길을 끈다. 신협중앙회는 점포나 신협 건물 내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문화·복지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지역 기반 금융협동조합이라는 신협의 특성을 살려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 취지다. 일례로 경기 용인에 있는 수지신협은 2019년 5월 1488㎡(약 450평) 규모의 문화센터를 개관해 매 학기 200여 개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문화센터는 7년여간 운영되며, 연간 약 5000명이 이용하는 지역 대표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금융회사가 점포와 별도로 아예 지역 생활시설을 마련하기도 한다. 상호금융기관 정산농협은 2016년에 충남 청양군에 보유하던 땅에 건물을 지어 목욕탕을 개업했다.

청양군은 지난해 인구가 2만 명대로 무너진 인구소멸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정산면은 인구가 더 적어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점포는 한 곳도 없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사업성을 따진다면 목욕탕을 연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지역에서 금융과 경제 사업을 하는 정산농협이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역민들이 목욕탕에서 몸 한 번 풀려면 인근 부여군이나 공주시로 원정을 가야 하는 딱한 사정 때문이었다.

청양군에서 만 65세 인구 비율은 올해 8월 기준 43.4%로 높다. 정산농협이 주고객인 고령의 주민 필요에 맞춘 생활 기반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덕분에 주민들은 정산농협 건물 반경 100m 남짓한 거리에서 금융부터 목욕, 쇼핑(하나로마트)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목욕탕은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 관광객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청양군 내 관광지인 칠갑산을 찾은 방문객들도 정산농협 목욕탕을 이용하고 있다.

정산농협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금융, 경제 사업을 도맡고 있는 전국의 단위농협들은 목욕탕뿐만 아니라 장례식장이나 요양원 등 지역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점포 사라지며 ‘은행 사막’ 가속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부채 관리 목표를 기존보다 2배로 높이면서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공급 여력도 최대 7조5천억원가량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17일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 2026.08.17 뉴시스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 상호금융은 점포 문을 닫기보다 지역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형하고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전국 곳곳의 점포를 줄이며 부동산을 매각하는 분위기다.

KB국민은행은 서울 5곳, 경기 2곳, 대구·대전 각 1곳 등 유휴 부동산 매각을 진행 중이다. 매각 금액이 약 1500억~1600억 원 규모다.

신한은행은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영업점 건물 ‘익스페이스’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직원 합숙소를 매물로 내놨다. 익스페이스는 최근 1200억 원대에 매각됐다.

우리금융그룹은 서울 중구 명동 ‘우리금융디지털타워’와 전국 39곳의 유휴 부동산 매각을 진행 중이다.

은행들은 점포 문을 닫으며 유휴 건물이 생기자, 부동산 매물을 내놓고 있다. 실제 점포 수가 많이 줄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16개 은행 점포 수(지점, 출장소 등)는 올해 6월 말 현재 5505개로 3년 전인 2023년 6월 말에 비해 4%(235개)가량 줄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은행 업무를 보지 못해 불편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특히 고령자가 많은 지방일수록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지 않아 점포에서 직접 거래하길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3월 발표된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이 모바일 금융을 사용하는 비율은 18.7%에 머문 반면 직접 점포나 ATM 등을 찾는 비율은 80.7%나 됐다. 반면 20대나 30대는 모바일 금융 이용 비율이 각각 70%대였다.

은행 점포가 적은 지역 주민들은 높은 금리 등 혜택이 좋은 금융 상품에 가입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산 형성의 기회에서 소외되는 셈이다. 예컨대, 국민 자산 형성에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국민성장펀드는 주요 시중은행 10곳, 증권사 14곳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은행 점포가 없는 지방 지역에 거주하면서, 디지털 가입에 익숙하지 않은 금융 소비자들은 가입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은행 점포 폐쇄로 인한 금융소비자 불편을 줄이고자 점포 폐쇄 문턱을 높이고 나섰다. 예컨대 은행이 반경 1㎞ 내 점포를 통폐합하려면 사전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지방 점포 폐쇄 시에는 지역 재투자평가 점수가 감점된다.

한편으로는 점포 감소를 막을 수는 없으니, 당국은 대안을 찾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체국이 은행 대출 업무를 대리하도록 했다. 이동 점포 확대, 공동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확대 등 대체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체 인구의 10%가 ‘은행 사막’에 거주하고 있고 이는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이라면서 “이는 비도시지역, 디지털 취약계층의 금융 소외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관, AI 미래 점포로 진화

신한은행 전경. 신한은행 제공
시중은행들은 점포를 줄이면서도 일부 기능을 잃은 점포를 다양한 실험 공간으로 삼고 있다. 예컨대 신한은행은 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신한은행 인공지능(AI) 지점’를 운영 중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AI 은행원이 계좌 개설과 환전 등 금융업무를 맡는다. 방문객들은 디지털데스크와 무인 단말기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아울러 전국 65개 디지털 라운지에서는 평일 오후 9시까지 화상 상담이 진행된다. 하나의 은행 점포가 AI 실험실과 저녁 상담 창구, 디지털 교육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점포의 주 고객층인 중장년층을 위한 공간으로 특화해 은행 점포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우리은행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50세 이상 우수고객을 위한 특화 점포 ‘살롱 드 원더라이프’를 열었다. 프로기사를 초청해 지도 대국을 열고 대학 입시전략이나 포도주 강좌, 미술 명화 해설 등 인문·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은행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KB 골드 앤드 와이즈 더 퍼스트 센터’를 열었다. 이곳은 점포의 기능을 하면서도 미디어아트 전시와 전용 서가, 카페 등 문화공간이 됐다.

은행들은 폐쇄한 점포를 지역 사회의 문화시설로 남겨두기도 한다. 하나은행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었던 옛 을지로기업센터 지점을 2022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이자 미술품을 보관하는 개방형 수장고 ‘H.art1(하트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약 200점 이상의 예술 작품이 상시 보관된다. 주기적으로 소장품 기획 전시도 열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앞으로 점포는 단순 입출금 창구보다 디지털로 해결하기 어려운 금융상담과 지역 생활 서비스를 결합한 공간으로 운영해야 한다”면서 “은행은 단순 업무를 AI로 처리하되 자산관리·대출·취약 고객 상담은 사람이 맡고, 상호금융은 지역 특성에 맞춰 생활 편의를 지원하는 거점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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