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최초 한족 정권은 조선 도공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 [장준영의 ‘지피지기’ 일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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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첨단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서 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는 세계 반도체 제조역량의 핵심 거점이자 첨단 기술의 패권 지역으로서 입지를 굳히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성공은 일본 나가사키 일대에서 조선 도공들이 제조한 도자기를 동남아시아와 유럽에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쌓으며 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만에 최초로 한족 정권을 세운 인물이다.
이때 정성공 일족과 일본의 히라도번을 비롯한 번주는 거금을 손에 쥐었지만, 조선의 도공들은 사실상 강제노동에 내몰려 혹사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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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한족 정권의 시조, ‘혼혈 왜구’ 정성공. [출처 : 위키백과]](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2/ned/20261002111104295ysat.jpg)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첨단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서 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는 세계 반도체 제조역량의 핵심 거점이자 첨단 기술의 패권 지역으로서 입지를 굳히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지난 400여 년 전에도 당시로서는 최첨단 산업인 도자기 산업을 견인하고 주도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중심 인물이 정성공이었는데, 그는 중국계 왜구 두목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 왜구’였다. 정성공은 일본 나가사키 일대에서 조선 도공들이 제조한 도자기를 동남아시아와 유럽에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쌓으며 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만에 최초로 한족 정권을 세운 인물이다. 이번 회에서는 400여 년 전 동아시아에서 도자기 무역을 견인했던 정성공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대만 최초의 한족 정권 시조, ‘혼혈 왜구’ 정성공
일본과 대만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정성공은 17세기 중반 서구 열강 네덜란드를 축출하고 역사상 최초로 대만에 한족 정권을 수립하여 ‘대만 해방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정성공이 세운 정씨정권은 영국 동인도회사와 통상조약을 체결하며 독립국가로서 인정받았다. 오늘날 대만에서 그는 손문, 장개석과 함께 대만의 3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특히 그는 한중일 3자 분업체제를 형성하며 당시 최첨단 산업인 도자기 산업을 동아시아에 꽃피운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중국인 해적 두목과 일본 왜구 맹주의 결탁
정성공의 조부를 비롯한 중국인 해적이 일본 히라도에 건너오게 된 것은 1540년대 초반에 명왕조가 벌인 해적 소탕 작전 때문이었다. 두목들이 차례로 체포되어 처형당하자 명 관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히라도를 피난처로 삼았다. 이때 히라도의 왜구인 맹주 마쓰라 다카노부는 중국 해적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결탁하였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후기 왜구’라고 부른다.
다카노부의 장남 시게노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과 울산성 전투 등에 참전해 조선 침공의 선봉대로 나서며 전과를 올렸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경상남도 웅천 일대에서 조선 도공 100여 명을 납치해서 그의 영지 히라도로 끌고 왔다. 한편 정성공의 외조부, 다가와 시치자에몬도 조선 침공 당시에 시게노부 부자와 함께 참전했다.
![대만 해상에서 벌어진 정성공 군대와 네덜란드군 해전. [출처 : 야후재팬 화상]](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2/ned/20261002111104804abmc.jpg)
왜구 두목에서 명왕조에 귀순, 청조에 대항한 정씨 일족
도쿠가와 막부시대 초기인 1624년에 일본 히라도에서 출생한 정성공은 중국인 왜구 두목 출신의 부친 정지룡과 일본인 모친 다가와 마쓰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1624년, 1000여 척의 선단과 수천 명의 부하를 이끌고 히라도에서 대만으로 본거지를 옮겨 중국 동남해안과 대만 해협 일대에 강력한 해상 세력을 구축했다.
정성공도 부친을 따라 7살 때 중국으로 건너갔다. 왜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명왕조는 정지룡을 귀순시켜 복건성 도독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1644년에 명왕조가 멸망하자 명왕조 재건을 꾀하다가 막판에 청왕조의 계략에 빠져 체포된 뒤 처형당했다.
정성공은 부친이 사망하자 명왕조 재건 운동에 나서며 청에 대항했다. 그는 청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대륙에서의 거점을 잃자 반격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2만 5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대만에 진출했다. 이때 대만을 점령 통치하고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공격하여 이들을 대만에서 축출했으나 이듬해인 1662년 병으로 사망했다. 정성공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과 손자 3대에 걸쳐 정씨 정권이 대만을 통치하다가 1683년 청의 공격을 받고 굴복하면서 정씨 일족에 의한 대만 통치는 3대, 22년만에 막을 내렸다.
![조선 도공이 히라도에서 제조하여 정성공이 유럽으로 수출한 히라도도자기. [출처 : 미카와치야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2/ned/20261002111105092zded.jpg)
한중일 3자 분업체제로 동아시아 도자기 무역을 견인한 정성공
청왕조는 1657년 무렵, 청에 저항하는 정성공 일족의 자금줄을 조이기 위해 도자기 산지 경덕진과 복건성 일대의 도자기 제조공장 가동과 수출을 금지했다. 이 조치는 중국에서 도자기를 입수해서 동남아시아와 유럽으로 수출하여 군자금을 확보하던 정씨 일족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정성공은 새로운 도자기 생산지 확보가 절실해졌다. 그래서 눈길을 돌린 곳이 나가사키 히라도였다. 그곳에는 조선 웅천과 남원 등지에서 끌려온 이삼평을 비롯한 도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중국의 기술 수준에 버금가는 뛰어난 도자기 제조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생산자 조선 도공, 생산 거점 일본, 수출 판매망 대만이란 3자 분업체제가 가동되며 대량생산에 나섰다. 정성공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중국 선박들이 나가사키항에 몰려들어 도자기를 싣고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일본의 도자기 산업은 1640~1690년 50년간에 걸쳐 전성기를 구가하며 정성공의 군자금 조달원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때 정성공 일족과 일본의 히라도번을 비롯한 번주는 거금을 손에 쥐었지만, 조선의 도공들은 사실상 강제노동에 내몰려 혹사당했다. 이 점에서 대만의 정씨정권은 조선 도공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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