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딥페이크…인기 잃은 졸업앨범에 담긴 '사회의 민낯'

김하나 기자 2026. 10. 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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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양장본 '대학 졸업앨범'이 캠퍼스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같은 변화 속에 과거 대학 생활의 피날레이자 필수 기념품으로 꼽히던 두꺼운 양장본 '대학 졸업앨범'은 빠르게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허창덕 영남대(사회학) 교수는 "장기화한 취업난으로 휴학이나 졸업유예를 택하는 학생이 늘면서 같은 학번이라도 졸업 시점이 달라지고 있다"며 "과거처럼 같은 시기에 입학한 학생들이 함께 졸업하고 그 순간을 하나의 앨범으로 기록하는 문화가 약해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했다.

수십년간 대학 졸업식의 통과의례로 여겨졌던 두꺼운 졸업앨범은 이렇게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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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사라지는 대학 졸업앨범
졸업앨범이 사라진 캠퍼스
한자릿수로 떨어진 구매율
딥페이크가 키운 사진 불안
취업난이 바꾼 졸업 풍경

두꺼운 양장본 '대학 졸업앨범'이 캠퍼스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신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졸업을 기록한다. 혹자는 '사진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았냐'며 이런 변화를 단순하게 해석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요가 급감한 졸업앨범의 이면엔 좁아진 취업문, 딥페이크 우려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다.

한때 대학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졸업앨범이 외면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지난 8월 2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후기 학위수여식. 졸업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학사모를 공중으로 던지며 늦여름의 '코스모스 졸업'을 만끽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연신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졌다. 친구나 가족이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 사이로 젊은 프리랜서 스냅 작가들도 눈에 띄었다. 작가들은 졸업생을 따라 캠퍼스 곳곳을 오가며 포즈를 잡아주고, 잔디밭에 몸을 낮춰 각자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 이보다 나흘 앞선 8월 21일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하계 졸업식장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졸업 가운을 휘날리며 교정을 누비는 학생들의 손에는 꽃다발과 학교 캐릭터 인형, 손거울이 들려 있었다. 그 곁을 따라붙은 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직접 섭외한 프리랜서 스냅 작가들이었다. 학생이 걸음을 멈추면 작가도 멈췄고, 학생이 포즈를 바꾸면 카메라 앵글도 함께 움직였다.

졸업사진을 남기는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학교가 정해준 규격에 맞춰 단체 앨범에 얼굴을 싣던 관행은 옛말이다. 이제는 학생 스스로 장소와 구도를 정한다.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거나 가족·친구에게 맡기고, 스냅 작가를 섭외해 '나만의 순간'을 기록하는 식이다.

이같은 변화 속에 과거 대학 생활의 피날레이자 필수 기념품으로 꼽히던 두꺼운 양장본 '대학 졸업앨범'은 빠르게 설 자리를 잃고 있다.

■ 한자릿수로 주저앉은 구매율 = 변화의 기류는 수치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2월 대학별 전기 학위수여식 데이터(연간 공식 집계 기준)를 살펴보면, 고려대의 경우 전체 학부 졸업생 3885명 중 앨범을 구매한 인원은 350명(9.0%)에 그쳤다. 졸업생 10명 중 9명꼴로 앨범을 구매하지 않은 셈이다.

고대만이 아니다. 같은 시기 학부 졸업생이 2833명이었던 연세대는 졸업앨범을 997권 제작했다. 전체 졸업생의 35.2% 수준이다. 졸업생 2769명을 배출한 성균관대는 앨범 판매량이 100권 안팎(약 3.6%)에 불과했고, 서강대(졸업생 1100명)의 구매율은 1% 수준에 머물렀다.

대학들이 손을 놓고 있던 것도 아니다. 서강대는 2021년부터 기존 단체앨범 대신 개별 맞춤형인 '개인앨범' 형태를 도입했고, 성균관대 역시 2024년부터 같은 방식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부쩍 줄어든 앨범 수요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졸업앨범 밀려난 현실적 이유 = 그렇다면 졸업앨범은 왜 외면받기 시작한 걸까. 원인은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사진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스마트폰으로 고화질 사진을 손쉽게 찍고 클라우드에 저장하거나 SNS로 공유하는 환경이 자리 잡았다. 이런 환경에서 부피가 크고 무거운 종이 앨범의 실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명호 단국대(심리학) 교수는 "젊은 세대는 종이 인쇄물보다 디지털 파일로 정보를 확인하고 보관하는 데 훨씬 익숙하다"면서 "대학가에서 종이 교재의 출력물을 보기 힘들 정도로 인쇄물의 쓰임이 줄어든 만큼, 종이 앨범 선호도가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짚었다.

여기에 디지털 성범죄 확산에 따른 불안감도 앨범 기피를 부추겼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악용한 딥페이크 등 불법 합성 범죄가 확산하면서, 얼굴 사진 노출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 범죄 발생 건수는 2023년 168건에서 2024년 550건, 지난해 1300건으로 급증했다. 관련 처벌 조항이 처음 신설된 2020년에는 31건에 불과했지만 2023년 이후 증가폭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졸업앨범은 이런 불안을 키울 수 있는 구조다. 한번 인쇄돼 불특정 다수의 동문에게 배포된 종이 앨범 속 사진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쓰일지는 개인 차원에서 관리하기 어렵다. 이름·학과 등 기본정보까지 함께 실려 사진과 개인정보가 함께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실제로 최근 대학을 졸업한 정나윤(26)씨는 "불특정 다수가 보는 졸업앨범을 굳이 비용까지 들여 만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사진을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없다는 점도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 졸업앨범 급감의 이면 = 사회구조적 요인도 졸업앨범의 해체를 앞당겼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인턴, 자격증 취득 등을 이유로 휴학과 졸업유예를 택하는 학생이 몰라보게 늘어났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 대졸자(전문대 포함)의 평균 졸업 소요 기간은 4년 5.7개월로 나타났다. 전년 동월 대비 1.3개월 늘어난 수치로, 2007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장 기록이다. 졸업장을 바로 받기보다 학교 울타리에 머물며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동기' 개념도 옅어졌다. 입학은 함께했더라도 휴학과 유예 기간이 제각각이다 보니 한날한시에 모여 졸업하는 풍경은 드물어졌다. 얼굴조차 낯선 선후배나 동문의 사진이 빼곡한 단체 앨범에 돈을 쓸 이유가 사라진 배경이다.

[사진|뉴시스]
허창덕 영남대(사회학) 교수는 "장기화한 취업난으로 휴학이나 졸업유예를 택하는 학생이 늘면서 같은 학번이라도 졸업 시점이 달라지고 있다"며 "과거처럼 같은 시기에 입학한 학생들이 함께 졸업하고 그 순간을 하나의 앨범으로 기록하는 문화가 약해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나아가 종이 형태의 대학 졸업앨범이 캠퍼스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기술 발전과 사회구조의 변화, 개인정보 노출 우려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졸업앨범의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학 졸업앨범은 일부 학교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다 결국 역사 속으로 퇴장하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임명호 교수 역시 "일부에서 복고풍 유행으로 아날로그 앨범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종이 앨범이 줄어드는 흐름 자체를 막기는 힘들다"고 내다봤다.

수십년간 대학 졸업식의 통과의례로 여겨졌던 두꺼운 졸업앨범은 이렇게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다만, 우리가 진지하게 봐야 할 건 사진을 보관하는 방식의 변화, 금전적 이유 등 표면적 요인이 아니다.

졸업앨범 수요 급감의 밑단에 깔려 있는 딥페이크 우려, 좁아진 취업문 등 복잡한 문제의 심각성을 살펴야 한다. 가치가 약해진 졸업앨범은 그저 '사진첩'이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담긴 '사회의 자화상'이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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