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불의의 사고”… 北책임 안 물었다
DMZ 폭발 관련 지뢰 언급 없어
“남북, 평화 위해 신뢰 쌓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얼마 전 비무장지대에서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당하신 우리의 장병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7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빠른 쾌유를 빌며 가족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1일 경기 파주시 우리 측 비무장지대(DMZ)에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가 폭발해 우리 군 3명이 부상당한 지 열흘 만에 돌아온 국군의 날이었지만, ‘지뢰’란 말조차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합참의 폭발 현장 조사에서는 군사분계선(MDL) 이남에 매설된 북한군의 플라스틱 대인 지뢰가 발견됐고, 유엔군사령부도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북한’의 책임을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지뢰 폭발 당일부터 11일간 이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북한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대통령은 이날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더 확실한 안보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남과 북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이기는 길’을 찾아내고 신뢰를 쌓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도 이제는 함께하기를 기대하고, 또 촉구한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날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우리 군이 바로 열흘 전 북한 지뢰에 전우의 발목을 잃었는데, 어떻게 남과 북이 함께 이기는 길을 찾겠다는 말이 나오느냐”며 “우리 국군이, 국민이 불법 대북 송금의 인질이 됐다”고 했다.
◇李 “군사 긴장 완화 조치 계속”… 대북 확성기 재개 없을 듯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은 지뢰 폭발 현장 조사 도중 군사분계선(MDL) 이남에 북한군이 매설한 플라스틱 대인 지뢰 1발이 발견된 지 이틀 만에 열렸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열흘 전 발생한 지뢰 폭발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MDL 이남 우리 측 지역에 북한군 지뢰가 최소 4발 매설돼 있었다는 사실도 아예 거론하지 않았다.
◇“군사 긴장 완화 조치 계속”
이날 이 대통령 기념사의 초점은 ‘자주 국방’과 ‘남북 신뢰 회복’에 있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국방비만 북한 연간 GDP(국내총생산)의 1.4배에 달하는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이라며 “전시작전권 환수로 그 마침표를 찍어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자주 국방의 그 꿈을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기념식 직후 오찬에서도 이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를 조속히 완수해 진정한 자주 국가, 독립 국가,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지뢰를 전혀 거론하지 않은 이 대통령은 대북 문제에 대해 “남북 관계의 매듭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앞으로도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얽힌 매듭을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낮추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일관되게 이어 나가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2015년 목함 지뢰 때처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 취임 후 우리 정부가 취한 대표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해 6월 11일 군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지할 것을 지시한 뒤 “남북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 외에 이재명 정부가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로 추진해 온 것은 9·19 남북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이다. 여기에는 MDL 일대 비행 금지 구역 설정과 실기동 훈련 중단, DMZ 내 감시초소(GP) 철수 등이 포함된다. 국방부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며 지난해 10월부터 우리 DMZ 내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도 시작했다. 그런데 유해 발굴을 하려면 우리 측 지뢰 제거가 선행돼야 해 군의 대비 태세를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북한군 지뢰 폭발로 우리 군이 부상당한 이후에도 이런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경우,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앞으로 軍내란 없도록 할 것”
이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국민 주권 정부는 불법 계엄의 잔재를 청산해 왔다”고 12·3 비상계엄을 다시 거론하며 “결단코 군에 의한 불법적 내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군이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를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육·해·공사 통합에 대해서도 “군심을 하나로 모아 국군사관학교 창설 추진에 신속, 과감하게 매진할 것을 당부한다”며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이처럼 여러 현안을 두루 거론하면서도 ‘북한 지뢰’는 언급하지 않는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는 와중에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한 이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변경하기 어렵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 국가정보원은 오는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50%라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하지만 야권은 이 대통령이 공범으로 기소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북 송금 약점 잡힌 건 이재명 개인”이라며 “왜 자기 약점 때문에 대한민국을 저당 잡히고 부끄럽게 하나”라고 했다.
여권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 군 장병이 작전 중에 크게 다쳤는데 국군통수권자로서 북한에 해야 할 말은 해야 민심이 동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의원도 “북한이 의도적으로 매설한 지뢰가 폭발한 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대통령이 신중하게만 접근하는 건 옳은 판단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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