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아버지들 아직 골짝마다 누워 계셔”…10월항쟁 80년 만에 첫 추념식

김규현 기자 2026. 10. 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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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아부지."

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 10월항쟁 위령탑 앞에서 열린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두 노인이 국화꽃을 놓으며 목놓아 울었다.

채 전 회장은 "폭동이라 불려온 세월이 참 길었다. 80년이나 된 10월항쟁에 이렇게 많은 분이 모이니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10월항쟁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대구·경북에서 1만5천명 이상이 학살됐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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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에 첫 대통령 추도사
“명예 회복, 상처 치유 노력”
채영희(82) 전 10월항쟁유족회장과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인 이용수(98) 할머니가 1일 대구시 달성군 10월항쟁 위령탑 앞에서 열린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에서 헌화하며 울고 있다. 김규현 기자
“아부지, 아부지….”

“오빠, 오빠….”
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 10월항쟁 위령탑 앞에서 열린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두 노인이 국화꽃을 놓으며 목놓아 울었다. 채영희(82) 전 10월항쟁유족회장과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인 이용수(98) 할머니였다. 채 전 회장의 아버지(고 채병기)와 이용수 할머니의 오빠(고 이종팔)는 1950년 7월 대구형무소에 수감돼있다가 집단 학살된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10월항쟁에 참여했다는 등의 이유로 붙잡혀갔다고 한다.

2020년에 가창골에 위령탑이 선 뒤 해마다 10월1일 위령제가 열렸는데, 정부 부처가 후원하고 많은 단체들이 참여하는 추념식 형태로 행사가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98개 시민단체와 정당이 모인 ‘10월항쟁80주년 행사위원회’가 주최하고,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후원했다. 위령탑 양쪽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조정식 국회의장이 보낸 화환이 놓였다.

채 전 회장은 “폭동이라 불려온 세월이 참 길었다. 80년이나 된 10월항쟁에 이렇게 많은 분이 모이니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우리는 할 일이 많다. 우리 아버지들이 포승줄에 묶인 채 이 나라 골짝 골짝마다 누워 계신다. 물속에서, 산야에서 눈비에 썩어가고 햇빛에 말라가고 있다. 국가에서 빨리 유해 발굴 작업을 해주길 바란다. 국가가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줘야 한다”고 말했다.

1일 대구시 달성군 10월항쟁 위령탑 앞에서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김규현 기자

80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추도사도 발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대사의 첨예한 이념 대립 속에 불이익과 낙인을 피해 침묵하고 두려워해야 했던 유가족 여러분께 거듭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정부는 지난날의 아픔을 바로 마주하며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대통령 추도사는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대신 읽었다.

3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10월항쟁과 관련해 1946~1950년 공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민간인 학살을 직권조사하겠다고 밝혔다. 1960년 국회에 보고된 ‘양민학살사건 보고서’에 적힌 희생자들을 우선 조사하고, 대구·경북 지역 피해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10월항쟁80주년 행사위원회’는 국가 차원의 직권조사를 통해 유가족의 온전한 명예 회복, 국가 차원의 역사 기록과 교육, 국가기념일 지정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1일 대구시 달성군 10월항쟁 위령탑 앞에서 ‘10월항쟁 80주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김규현 기자

10월항쟁은 1946년 10월1일 미군정의 쌀 강제 공출, 식량난, 경찰 등 친일파 득세에 반발해 대구에서 시작된 저항 운동이다. 시위 첫날 경찰의 발포로 2명이 숨지면서 파장이 커졌고, 전국적으로 23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부까지 항쟁 참여자들을 남로당 편으로 낙인 찍어 탄압했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 뒤인 1950년 7월 대구 가창골,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경북 칠곡 신동재에서 집단 학살됐다. 학계에서는 10월항쟁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대구·경북에서 1만5천명 이상이 학살됐다고 추정한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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