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무너진 삼성전자의 리더 육성 시스템… “사람이 없다”

황민규 기자 2026. 10. 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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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인사철이 되면 삼성전자 안팎에서 '(내년에 리더를 맡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진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믿고 맡길 만한 사업부장으로 내세울 인물이 선뜻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2020년에는 세계적인 D램 소자 전문가 진교영 전 사장이 갑작스럽게 메모리사업부장에서 삼성종합기술원장으로 밀려났다.

개발 출신이 아닌 VD사업부장은 2007년 최지성 전 부회장 이후 20여 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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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인사철이 되면 삼성전자 안팎에서 ‘(내년에 리더를 맡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진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믿고 맡길 만한 사업부장으로 내세울 인물이 선뜻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불과 10여 년 전 차기 사장 후보군에 전문경영인들과 성과가 출중한 부사장급 차기 주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오르내렸던 것과 대조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가 어쩌다 이런 ‘인물난’을 겪게 됐을까.

삼성전자의 전문경영인 체제는 전통적으로 사업별 계보가 뚜렷했다. 일례로 가전 사업은 윤부근, 김현석, 한종희로, 스마트폰은 신종균, 고동진, 노태문으로 이어졌다. 차기 주자는 이미 현장에서 검증을 마친 상태였다. 물론 이들 역시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고 다양한 직책을 거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뒤 사업부장 자리에 올랐다.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승계였다.

이 구도에 금이 간 시점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사업지원TF(현 사업지원실)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한 무렵과 겹친다. 인물난이 가장 심각했던 곳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역대급 호황을 누리는 DS(반도체)부문이다. 삼성 반도체 부흥의 기틀을 만든 이윤우를 시작으로 황창규, 진대제 등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꿰뚫는 경영자들이 사업을 이끌었고, 권오현 체제에서 수퍼사이클이 완성됐다. 삼성 반도체의 성취는 ‘전문가가 전문가를 키운다’는 경영자 육성 시스템의 결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권오현 전 회장 퇴임 이후 사업지원TF가 인사와 재무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영현 당시 메모리사업부장은 특별한 사유도 알려지지 않은 채 2017년 삼성SDI로 자리를 옮겼다. 2020년에는 세계적인 D램 소자 전문가 진교영 전 사장이 갑작스럽게 메모리사업부장에서 삼성종합기술원장으로 밀려났다.

이렇게 차기 부문장 후보군을 줄줄이 쳐낸 삼성 반도체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김기남 전 회장이 DS부문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부문장을 맡을 후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당시 삼성전기를 이끌던 경계현 전 사장을 궁여지책으로 DS부문장으로 불러들였지만, 결과는 실적 부진에 의한 경질이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삼성 반도체를 떠났던 전영현 부회장을 ‘구원투수’ 격으로 다시 데려와야 했다.

디바이스경험(DX)부문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완제품 사업을 총괄하던 한종희 부회장이 지난해 3월 별세한 뒤 모바일 전문가인 노태문 사장이 부문장 직무대행을 거쳐 정식 부문장에 올랐고, 스마트폰은 물론 TV와 가전까지 사실상 전 사업을 떠안았다. 가전, TV 사업 전반을 주도할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TV 개발자 출신인 용석우 사장이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마케팅 전문가인 이원진 사장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개발 출신이 아닌 VD사업부장은 2007년 최지성 전 부회장 이후 20여 년 만이다. 각자의 사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경영자 수업을 받아 사업부장까지 올라오는 과거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경영자 육성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기업들과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현주소가 더 선명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경우 스티브 발머의 퇴진 발표 이후 이사회 산하 위원회를 꾸려 내외부 후보까지 반년 넘게 검증했고, 클라우드 사업에서 성과를 낸 내부 출신 사티아 나델라를 최고경영자(CEO)로 선택했다. 나델라 취임과 함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고, 회사는 클라우드 등 신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취임 당시보다 약 10배로 불어난 시가총액이 그 선택의 결과를 말해준다.

이 같은 모범 사례들이 공통으로 갖춘 조건은 분명하다. 복수의 후보를 오랜 기간 지켜보는 ‘파이프라인’(실무자에서 경영자까지 리더가 성장하는 각 전환점을 정의한 모델), 핵심 보직을 돌며 검증받는 순환 구조, 이사회가 주도하는 결정, 비상 상황에 대비한 승계 계획이다. 오늘날 삼성전자는 이를 충족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후보군은 사업지원실의 인사 개입 속에 두터워질 틈이 없고, 최종 결정은 이사회가 아닌 소수 본사 조직에 쏠려 있다.

지금의 실적 호조가 내부의 문제를 가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가 MS에서 배워야 할 것은 후보의 숫자가 아니라 사업을 아는 리더를 키우고, 그 리더에게 충분한 권한을 위임하는 기술 기업의 원칙이다. 지금 같은 호황기에 ‘넥스트 삼성’을 이끌 후보군을 키우는 시스템을 정립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닥칠 위기 상황을 구원투수에 의존하는 악순환을 끊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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