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절반이 신용불량? 브라질, ‘쉬운 빚’의 함정에 빠지다[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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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인구의 절반이 신용불량자이고, 5명 중 1명은 온라인 도박에 빠져 있습니다. 연임을 노리는 현직 대통령이 나서서 부채 탕감과 함께 도박 금지를 선언한 나라, 바로 브라질 얘기죠.
2025년 중앙은행 추정에 따르면 브라질 국민이 온라인 베팅에 지출한 금액은 월 200억~300억 헤알(약 5조2000억~7조8000억원). 국가 전체 소비의 3% 이상을 온라인 도박이 차지할 정도입니다.
그게 바로 룰라 대통령이 9월 25일 채무탕감 계획과 함께 전격적으로 '온라인 도박 전면 금지'를 발표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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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인구의 절반이 신용불량자이고, 5명 중 1명은 온라인 도박에 빠져 있습니다. 연임을 노리는 현직 대통령이 나서서 부채 탕감과 함께 도박 금지를 선언한 나라, 바로 브라질 얘기죠.
남미 최대 경제국 브라질이 심각한 가계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긴커녕 점점 더 수렁에 빠지고 있단 점인데요. 빚에 중독된 브라질이 걱정스러운 이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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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 채무, 또 탕감해 드립니다
8398만명. 신용평가사 세라사가 집계한 8월 기준 브라질의 금융채무 불이행자 수입니다. 빚을 제때 갚지 않아 금융권 ‘블랙리스트’로 등록된 숫자이죠. 인구 2억1400만명 브라질의 성인 인구가 1억6500만명인 걸 생각하면, 성인 중 무려 절반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신용카드 발급이나 금융권 대출이 불가능하고요. 본인 명의로 휴대전화 후불 요금제에 가입하거나, 주택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지난 8월 브라질의 가계대출 연체율(90일 이상)은 6%. 2011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0.42%인 한국과 비교하면, 이게 얼마나 심각한 수치인지 알 수 있죠.

여론조사에서 룰라 대통령이 앞서곤 있지만 격차가 1~3%포인트로 미미한 상황. 그러자 81세의 노련한 좌파 정치인은 9월 25일 깜짝 발표를 내놨습니다. 개인의 오래된 연체 채무를 90% 탕감해 주는 프로그램을 11월 가동하기로 한 거죠.
구체적으로는 일단 정부가 나랏돈을 들여 금융회사로부터 연체 채권을 90%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합니다. 어차피 회수가 어려운 악성 채권이기 때문에 금융회사 입장에선 그 10%만 건져도 괜찮은 장사이죠. 이렇게 채권이 정부로 넘어오면, 해당 연체자는 바로 채무불이행 기록이 삭제되고요(신용 사면). 이후 개인은 10분의 1로 대폭 줄어든 빚을 정부에 나눠 갚으면 됩니다.
이 사업에 투입될 예산은 150억 헤알(3조9000억원). 이를 이용해 1만 헤알(260만원) 이하 소액 연체자 수천만 명의 채무 1500억 헤알 어치를 매입해 정리해 주겠다는 계획인데요.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엉킨 것을 푼다’는 의미가 담긴 ‘데센롤라 3.0(Desenrola 3.0)’입니다. 왜 3.0일까요? 이미 2023년과 2026년 5월 각각 데센롤라 1.0, 2.0이 시행됐으니까요. 즉, 룰라 정부 주도의 대규모 채무탕감이 3년 만에 벌써 세 번째인 겁니다.
핀테크 혁명과 쉬운 빚
‘핀테크 혁명’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높은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저소득 서민층이 디지털 기술 덕분에 저렴하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걸 일컫는 용어인데요. 이 핀테크 혁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나라가 브라질이죠. 누뱅크(Nubank) 같은 핀테크 기업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이전엔 은행 계좌조차 없었던 수천만 명의 저소득층이 단숨에 제도권 금융시장에 진입했고요.(누뱅크 브라질 가입자 수 1억1800만명) 특히 2020~2024년 사이에만 활성 신용카드 수가 75%나 급증합니다.
금융서비스 문턱이 낮아진 건 좋은 일이죠. 지점에 갈 필요 없이 모바일로 간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소비자는 편리해졌고요. 하지만 바로 그 편리함이 문제였습니다. 대출받기가 너무 쉬워지자, 너도나도 빚을 내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브라질의 리볼빙 서비스는 금리가 ‘연’이 아니라 ‘월’ 15%나 됩니다. 복리로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5개월만 지나면 빚이 2배로 불어나 버리죠(1년 이자율은 435%). 무심코 리볼빙 서비스를 연장하다 보면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겁니다.
‘소비자의 무분별한 신용카드 사용+카드사 고금리 대출의 덫’이 만나면서 카드 대금 연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2023년 1월 룰라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을 때, 금융채무 불이행자 수는 이미 역대 최대인 7190만명에 달했죠. 룰라 대통령이 개인의 연체 채무를 최대 90%까지 깎아주는 ‘데세놀라 브라질(Desenola Brazil)’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유였습니다. 당시 약 1500만명이 연체 채무 90% 감면의 혜택을 받았죠.
하지만 연체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소득이 늘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금융 지식이 갑자기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애초에 빚을 내야 생활이 가능했던 저소득층은 연체 기록이 사라지자 또다시 빚을 냈습니다. 기준금리가 두 자릿수에 달하는 초고금리 상황에서 말이죠. 그리고 이들을 코너로 몰아넣은 또 다른 치명적인 덫이 있었으니. 바로 온라인 도박입니다
고금리 대출과 온라인 도박의 콜라보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축구 베팅이 인기를 끄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브라질에선 2018년 말부터 스포츠 베팅 도박에 대한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죠. 당시 미셸 테메르 전 대통령이 ‘스포츠 베팅 합법화’ 법안에 서명했는데요.
하지만 세부 규정이 없었던 탓에 이후 수년간 해외 도박업체들이 세금도 내지 않은 채 브라질 시장을 잠식했고요. 이에 2023년 말, 룰라 대통령은 도박업체 매출에 12% 세금을 부과하는 ‘베츠(Bets) 법’을 통과시킵니다. 도박업체를 제도권으로 편입해 규제하는 동시에, 정부가 막대한 세수를 챙기게 된 거죠.

2025년 중앙은행 추정에 따르면 브라질 국민이 온라인 베팅에 지출한 금액은 월 200억~300억 헤알(약 5조2000억~7조8000억원). 국가 전체 소비의 3% 이상을 온라인 도박이 차지할 정도입니다. 브라질 유명 경제평론가 호세 코보리는 브라질에서 특히 저소득층이 도박에 빠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불행히도 도박은 가장 가난한 계층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들은 도박을 삶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낼 기회, 즉 희망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을 받아서는 30년이 지나도 같은 처지일 테니까요.”
문제는 앞서 설명했던 고금리 대출의 유혹이 온라인 도박 열풍과 결합했다는 점입니다. 브라질에선 중앙은행이 만든 수수료 제로의 송금 서비스 ‘픽스(Pix)’를 전 국민이 이용하고요. 온라인 도박 플랫폼에 입금할 때도 이 픽스를 통해야 하는데요. 언뜻 생각하면 현금이 떨어지면 픽스 송금이 막혀서 도박도 못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누뱅크 같은 핀테크 앱이 만든 ‘픽스 신용결제’가 있거든요. 계좌에 잔액이 없어도 손가락 터치만으로 단 몇초 만에 신용카드로 대출을 받아(일종의 현금서비스 개념) 픽스로 바로 송금할 수 있어요. 참 쉽죠.

베팅에 대한 충동을 가라앉히고 잠시 이성을 찾을 시간조차 주지 않는, 너무나 쉽고 빠른 대출. 도박에 빠진 이들은 그렇게 판돈을 키웠고요. 결국 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감당 못 할 신용카드 대금 청구서와 초고금리 리볼빙, 그리고 연체의 늪입니다.
그게 바로 룰라 대통령이 9월 25일 채무탕감 계획과 함께 전격적으로 ‘온라인 도박 전면 금지’를 발표한 이유입니다. 아무리 빚을 탕감해 줘도 그들이 다시 온라인 도박에 빠진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니까요. 3년 전엔 온라인 도박 제도화를 주도했던 그가 입장을 180도 바꿨죠.
이로써 브라질에선 10월 6일부터 모든 온라인 도박 사이트 접속이 끊길 예정입니다. 업계를 대표하는 전국합법게임협회(ANJL)는 “이 조치가 3000만명 넘는 이용자를 불법 도박사이트로 내몰 것”이라고 반발하죠. 아마도 업체들이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큰데요. 일단 국민 여론은 정부 조치를 지지하는 쪽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75%가 도박 금지에 찬성한다고 응답했죠. 룰라 대통령은 이 정책이 득표에 도움 될 거라는 점을 다 계산했을 겁니다.
사실 모든 전문가가 알고 있습니다. 도박 금지, 부채 탕감 같은 땜질식 처방만으론 브라질 경제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없다는걸요. 빚으로 소비를 자극해서 GDP를 부풀려온 취약한 경제구조 자체가 한계에 부딪혔으니까요. 결국 정공법, 즉 교육과 과학에 투자해서 인재를 양성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요. 선거를 앞두고 당장 표를 얻는 데 급급한 정치인들은 이런 데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게 슬픈 일이죠. 그게 바로 최근 이코노미스트지가 ‘브라질은 미래에 등을 돌렸다’고 일갈한 이유일 겁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9월 30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고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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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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