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역사 왜곡 논란은 어떻게 극우 포퓰리즘으로 조직되는가[위근우의 리플레이]

위근우 칼럼니스트 2026. 10. 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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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8일 한 시민이 서울의 한 극장에 걸린 영화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역사 왜곡.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에 대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비롯해 보수 정치권 상당수가 이렇게 규정하고 비판하며 심지어 불매 운동까지 벌이는 중이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 대해 이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영부인 육영수가 죽은 이 사건을 마치 박정희 정권의 자작극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신문기자 김재환(박해일)과 형사 박철구(유해진)는 사건 수사 과정의 미심쩍음에 대해 추적하면서 검거된 범인에게 공범이 있으며 어쩌면 공범의 존재를 비롯해 이 모든 상황은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해 박정희 정권이 계획한 것일 수 있다고 추리한다. 영화는 음모론에 기반해 역사적 사실의 빈틈 사이사이 영화적 상상력을 끼워 넣는다. 박정희 암살 미수와 김대중 납치 사건, 수도권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한일 커미션 의혹, 동아일보 광고 탄압 등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묶어 풀어낸 이야기는 꽤 그럴싸하다. 이 그럴싸함이 역사 왜곡이라는 게 보수 정치권의 주장이다.

장동혁은 페이스북을 통해 “2002년 박근혜 대통령 방북 당시 북한 김정일은 직접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며 이미 북한 소행으로 밝혀진 사실을 좌파들이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추후 오마이뉴스가 보도했듯 김정일이 사과한 건 1968년 남파 무장 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이었다. 반면 공범 의혹을 포함 문세광의 배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심지어 그가 쏜 총에 육영수가 맞은 건지도 의심스럽다는 의문은 2000년대 초중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이미 대중적으로 공론화된 바 있다. 당시 수사와 재판은 범인 문세광의 사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반면 증거나 진술에 모순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고, 그에 대한 의문을 자유롭게 제기하기엔 유신 정권은 너무 엄혹했다. 정보와 언로의 통제가 강력한 독재 권력일수록 그 안에서 종결된 사건들의 진실은 더없이 불투명하고 많은 의혹을 남긴다. 장준하 의문사를 떠올려보라. 음모론이 발아하기 최적의 환경이다. 그리고 그것이 <암살자(들)>이 드러내는 유신 치하 대한민국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다. 음모론은 진실이 아닐지언정, 음모론을 경유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대한 진실.

이번 역사 왜곡 논란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다들 육영수 피격 사건이 자작극일 수 있다는 음모론에 대해서만 비난할 뿐 영화 내내 등장하는 언론에 대한 검열과 대통령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의 초법적 권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암살자(들)>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민 주권을 침해하는 긴급조치 1호, 4호를 선포하고 해외에 있는 정적을 납치하며 기사 내용을 일일이 검열하고 죄 없는 이들도 남산에 끌고 가 고문하는 야만적 시대에, 오직 문세광에게 제기된 혐의와 수사와 판결만큼은 왜곡되지 않은 투명한 진실이라고 말하는 중이다. 그러니 그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그보단 시대의 맥락에 육영수 피격 사건이라는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위치시키면 권력의 개입에 대한 음모론이 당대 공식 발표보다 훨씬 개연성 있게 도출된다는 얘기다. 개연성 있는 가상과 모든 게 뒤죽박죽인 현실 사이의 간극과 긴장. 이것이 <암살자(들)>이 영화적 상상력을 경유해 최대한 왜곡 없이 전달하려는 국가 폭력의 역사에 대한 서사적 진실이다. 영화에서 신문사에 상주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은 김재환에게 왜 기사가 아닌 소설을 쓰느냐고 윽박지르고 검열한다. 진실에 대한 질문을 소설로 몰아 묻어버린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려면, 예술가는 기사가 불가능한 시대에 대한 소설을 써야 한다. 개연성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대한 멀리.

영화 <암살자(들)>에서 서울 중부경찰서 경감 철구(유해진)와 신문사의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막내 취재 기자 영일(이민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물론 그 소설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사건이 의혹투성이라는 것과 사건 자체가 자작극이라는 것, 그리고 영부인의 죽음까지 대통령의 의도일 수 있다는 각 주장 사이엔 분명 거리가 있다. 허구를 통해서만 역사적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 허구가 자칫 진실을 뒤덮지 않을 만큼의 거리는 어디 쯤인가. 하지만 현재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은 무엇이 역사의 총체적 진실이냐는 논의와는 아무 상관없이 진행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역사 왜곡’이라는 기표를 재빨리 선점해 진보 세력에 의한 역사 전쟁의 피해자라는 지위를 전유하는 것이다. 장동혁은 “5·18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감옥에 간다. 6·25 북침론, 천안함 미국 잠수함 충돌 주장은 ‘표현의 자유’다. 노무현 대통령 건드리면 줄줄이 고소·고발 당한다”며 “박정희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는 좌파의 전유물인가”라 비난한다. 같은 당 주진우 의원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권양숙 여사가 사주했다는 영화가 나온다면 그것도 표현의 자유인가”라고 비슷한 주장을 한다. 심지어 장동혁과 앙숙인 무소속 한동훈 의원조차 “만약 5·18이 북한 소행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면, 세월호 참사가 민주당 소행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면 정말 많은 비판을 받았을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진보 좌파에게 유리한 역사인 5·18, 노무현 자살, 세월호 참사는 성역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본인들의 표현의 자유만 누리는 건 진보의 ‘내로남불’이라는 논리.

이 논리는 얼핏 그럴싸하지만 <암살자(들)>의 음모론보다도 허술하다. 장동혁이 말하는 ‘5·18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감옥에’ 가는 대안 세계는 대체 어디에 있는지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제시하는 역사 왜곡의 어떤 반례도 <암살자(들)>을 비판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 5·18은 민주화 운동을 군 병력으로 제압한 국가 폭력 사태이자,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고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진 광주 지역에서의 반국가 폭동 사태로 왜곡되어 알려진 권력에 의한 대표적인 역사 왜곡 사례다. 심지어 이러한 역사 왜곡은 일베의 ‘민주화’ 같은 밈을 통해 근래에까지 이어졌다. 반면 육영수 피격 사건은 신군부와 비슷한 국가 폭력의 시대에 관련 의혹을 권력으로 묻어놨다가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야 실체적 진실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었고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겨놓고 있다. 이 둘이 같거나 비슷한가? 육영수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이 가능하면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해도 되느냐는 질문(물론 그게 질문이 아닌 건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 <암살자(들)>의 음모론은 여러 상반된 정황 안에서 대통령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숨길 수 있는 절대 권력의 시대에 가장 개연성 있어 보이는 허구로서 제시된다. 반면 노무현은 권력을 잃고 검찰의 무자비한 수사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딱히 앞뒤가 맞지 않는 것도 없거니와 만에 하나 그의 죽음에 어떤 음모가 개입했다 한들 그를 죽음에 가깝게 몰아넣었던 게 이명박 정권이라는 역사적 맥락은 변하지 않는다. 이 둘이 같거나 비슷한가? 다시 말해 장동훈 류의 보수 정치인들은 비슷하지조차 않은 사례를 마치 같은 것처럼 가져와 진보 편향적인 역사 왜곡이라는 가짜 전장을 만드는 중이다.

그들이 이러한 가짜 전장을 만드는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주진우는 영화에 중국계 자본이 들어갔으며 현재 네이버 평점은 중국 댓글 부대가 장악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동시에 스타벅스와 배재고 사태엔 발끈했던 민주당의 침묵에 대해 비난했다. 진보=친중=5·18과 노무현 성역화=박정희 시대 비판=표현의 자유 독점=내로남불=역사 왜곡이라는 담론의 의미망을 형성해 그동안 국가 폭력에 의해 발생한 실제 역사 왜곡과 혐오표현을 바로 잡으려 한 모든 노력을 진보의 역사 왜곡과 기득권 독점으로 몰아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극우 포퓰리즘 정치다. 이러한 담론 구조에서 구체적인 맥락은 지워지고 혐오표현의 해악에 대한 우려는 진보만의 성역화로, 현대사의 파시즘적 국가 폭력에 대한 비판은 진보의 내로남불이 된다. 그들이 계속 <암살자(들)>이 제기하는 국가 폭력에 대한 총제적 문제를 오직 박정희-육영수와 그 유족이라는 개인의 비극에 대한 왜곡으로만 환원하려는 건 그래서다. 다시 말하지만 그 지점을 따로 비판적으로 다룰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하나로 영화가 묘사한 언론 탄압과 고문 같은 독재 권력의 문제를 지워버리고 자신들을 역사 전쟁의 피해자로 묘사할 때 바로 그들이 말한 역사 왜곡이 벌어진다. 아니 벌어지는 중이다. 이딴 야바위를 보며 분노하지 않기란 어렵다.

그리고 이들에게 분노하게 되는 이유 하나 더. 나는 이 영화에 오달수가 출연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달수와 배성우, 엄태웅까지 사이좋게 출연하는 줄은 미처 모르고 영화를 봤고 많이 불쾌했다. 이건 허진호 감독과 제작사의 잘못이 더 크지만 만약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이따위 말도 안 되는 마타도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이 영화를 내가 극장에서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이 분노까지 그들 잘못으로 셈하겠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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