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글 쓰고, 음악 골라… 큐레이터 된 RM “이번 전시는 아주 긴 내 소개”
BTS 리더 RM 소장품 특별전 공개

김환기의 블루에서 시작한 전시는 윤형근의 다색(茶色)으로 끝을 맺는다. 거장 김환기가 뉴욕에서 수만 번 반복해 찍어 내린 푸른 점이, 길고 긴 여정 끝에 그의 사위 윤형근의 타버린 검정에 이른다. 컬렉터 RM이 가장 깊이 감동받은 두 화가의 만남이다.
전시장 오디오 가이드에 RM의 목소리가 흐른다. “저는 김환기가 뉴욕에서 시작한 꿈을 사위 윤형근이 완성했다고 생각해요. 둘의 그림이 하늘과 땅, 블루와 다색의 대비를 이루는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니고요. 그분들의 치열한 역사가 저라는 다리를 통해서 70년 만에 결국 미국 서부의 중심에 닿게 된 거죠.”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수집하고, 선별하고, 해설까지 직접 쓴 전시가 미국 서부 대표 미술관에 펼쳐졌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 RM의 개인 소장품을 선보이는 특별전 ‘RM x SFMOMA: 너와 나 사이(Between You and Me)’ 개막을 앞두고 29일(현지 시각) 미디어 프리뷰를 개최했다. RM의 소장품을 세상에 공개하는 첫 미술관 전시다. RM의 개인 소장품 142점과 미술관 소장품 36점 등 총 178점을 선보인다. 출품작 절반은 한국 작가, 나머지 절반은 해외 작가의 작품이다. RM은 미술관의 아메리카 카스티요·김효은과 함께 공동 큐레이터로 작품 선정, 전시 구성 등 기획 전반에 참여했다.
RM은 이날 “한 사람이 자신의 돈과 노력을 쏟아 오랜 기간 일궈낸 컬렉션만큼 그 사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며 “이번 전시는 결국 제 자신을 길게 소개하는 자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있을 때나 서울에 있을 때나 늘 어딘가로 떠다니고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런 감정 때문에 미술에 많이 의지하게 됐다”며 “미술과 음악은 매체가 다르지만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했다.

김효은 공동 큐레이터는 “RM의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관심사와 감정을 바탕으로 8개의 섹션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첫번째 섹션인 ‘파아란 물’을 시작으로, 동반자로서의 동물과 자연을 탐구하는 ‘친구가 있는 풍경’, 작품과 함께 살아가는 ‘집’, 백남준과 권진규의 부처가 놓인 ‘포토붓다!’,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전시가 이어진다.
RM의 컬렉션과 미술관 소장품이 서로 대화하듯 배치됐다. 정상화와 아그네스 마틴은 ‘반복’과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도상봉과 조르조 모란디는 일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으로, 유영국과 밀턴 에이버리는 자연을 추상화하는 고유의 방식으로 호응한다. 김 큐레이터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의 작가들이 공유하는 질문을 함께 살펴봤다”며 “익숙한 작품 속에서 새로운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RM의 목소리가 전시장 길잡이가 됐다. RM이 직접 한국어와 영어로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는 두 번의 즉흥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여기에 그가 직접 작성한 전시장 벽면 글과 작품 해설, 직접 고른 배경음악이 어우러진다. 음악인이자 수집가, 감상자로서의 RM을 한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만나는 경험이다.

곡을 만드는 창작자로서 RM은 자기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간 화가들의 열정에 공감했다. “열정은 고통의 친구죠. 인고의 세월을 보낸 작가들, 끝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사람들의 신전을 한 섹션에 만들었습니다.” 전쟁 중 세 아이를 두고 파리로 떠난 이성자, 청각 장애가 있던 남편의 통역자이자 아내·어머니·화가로서 스스로 ‘삼중 통역자’라 부른 박래현, ‘여류’라는 호칭을 거부한 최욱경, 구순 넘어 만개한 김윤신… 그는 특히 박래현에 대해 “볼 때마다 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분”이라며 “‘내 고통은 진짜 별것 아니구나’ 하는 힘을 얻는다”고 했다.

하이라이트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화가 윤형근이다. 마지막 섹션 ‘다색’에 윤형근 작품 16점이 한데 모였다. 윤형근은 전쟁을 지나며 세 번 끌려갔고, 한번은 사형 직전까지 갔다. 그러고도 돌아와 그림을 그렸다. RM은 “가장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가장 보편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이라며 “그 많은 고초를 겪고 나서 울분과 화를 오로지 캔버스에 토해내듯 그렸다”고 소개했다.

검은 기둥 같은 윤형근의 그림이 마크 로스코의 회화, 도널드 저드의 금속 상자와 삼각형을 이루며 배치됐다. RM은 “윤형근의 그림을 마크 로스코와 닮았다고들 한다. 거대한 색면 앞에서 말이 없어지는 점은, 정말 그렇다”면서도 “하지만 둘은 같은 어둠이 아니다”라고 했다. “로스코의 어둠이 ‘열리는’ 어둠이라면, 윤형근의 어둠은 한껏 버텨 낸 뒤에 남는 어둠입니다. 한쪽은 공중의 일이고, 한쪽은 땅의 일. 닮은 건 어둠뿐입니다. 그 어둠마저, 하는 일이 다르고요.”
RM의 컬렉션은 6세기 토우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한국의 근현대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1500년 세월을 아우른다. 그는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은 식민 지배와 전쟁,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발전을 겪으며 많은 것이 사라졌고 동시에 찬란한 문화가 만들어졌다”며 “한국 출신의 젊은이로서 조금 더 새롭고 젊은, 어쩌면 더 나은 관점과 감성을 더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집해 왔고, 그 여정이 이번 전시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개막 전부터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크리스토퍼 베드퍼드 관장은 “우리 미술관 92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한국 미술품 전시이자 RM의 첫 큐레이팅 도전”이라면서 “멤버십 회원을 위한 프리뷰 관람권은 매진됐고, 주말 티켓 판매 속도도 매우 빠르다”고 했다.
아메리카 카스티요 공동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 ‘당신과 나 사이’의 공간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3일 개막해 내년 2월 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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