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주 더봄] 정지용의 '홍시'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2026. 9. 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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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주의 美詩]
시가 그림으로 완성되어 마음에 내려앉다
정지용 시에 담긴 기다림과 그리움의 회화
한 편의 시가 불러낸 어린 날의 홍시 추억

홍시

정지용

어적게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왜 앉었나.

우리 옵바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 딱

훠이 훠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엄마! 까마귀가 또 날아왔어.

—쫓아!

—이젠 가지도 않아.

—나무를 좀 흔들어봐.

—안 돼. 그러다 홍시 떨어지면 어떡해!

예분이는 걱정이다. 매일 이 시간이면 까마귀가 날아와 나무에 앉는다. 그것도 달랑 하나 남은 홍시가 매달린 나뭇가지에. 안 그래도 감이 한껏 익어 떨어질까 걱정인데, 예분이의 마음은 익어가는 가을만큼이나 빨갛게 두근거린다. '저 까마귀를 어떡하지? 우리 오빠 홍시 줘야 하는데.' 맘이 타는 예분이, 살며시 감나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가늘고 긴 나뭇가지에 앉은 까마귀를 조용히 불러본다. 

—까마귀야, 까마귀야. 올해는 그냥 가. 서울로 공부하러 간 우리 오빠 온다고 했어. 지난 추석에 못 와서 이제 곧 올 거야. 까마귀야, 까마귀야.

예분이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까마귀가 들어줄라나. 홍시를 무척 좋아하는 하나뿐인 오빠에게 홍시를 주고 싶은데. 내가 오빠에게 줄 것은 이것밖에 없는데.

우리에게 노래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의 시다. 동시처럼 느껴지는 이 시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읽자마자 얼른 마음에 내려앉는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남겨 놓는다는 것, 그것과 함께 그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 이것은 비단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리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과 함께 그와 했던 추억, 기다리는 사람이 오면 함께 할 시간, 그리고 그 사람과의 기쁜 마주봄. 이 모든 것을 함께하기 위해, 그를 위해 줄 선물과 더불어 그와 만날 시간을 기다린다. 

문청시절 나에게 정지용 시인의 시는 놀라움이었다. 그의 시에는 그림이 있었다. 읽자마자 한 장의 그림처럼, 눈으로 시가 보였다. 옛 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회화적인 여백이 있었다. 시가 그림으로 완성되어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채색되어 있었다. 시인의 서정이 갤러리에 걸린 어느 화가의 그림처럼, 아니면 서촌 어디쯤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처럼,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회화로 다가왔다. 예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한 편의 그림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것. 그리하여 그 마음을 쫓는 이에게 공감을 구하는 것. 하나의 통일된 감동을 가지고. 흔한 말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꼭 말로 해야 해!' 

왕유의 시 속에는 그림이 있는 듯하고 그림 속에는 시가 있는 듯하다. - 소동파

왕유는 중국 성당의 시인이자 화가이다. 그의 시와 그림을 보고 소동파(중국 북송 시대 시인이자 문장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혜안을 가진 사람은 시와 그림을 하나로 삼았는지 모른다. 높은 안목과 식견을 가지고 바라본 것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런 시인이나 화가, 문장가가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은 누구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눈으로 단번에 들어와 그 즉시 가슴을 울리는 문장이 그림이 음악이 있다면 우리도 그것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진정 세련되고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것을."   

겨울방학이면 으레 외할머니 댁에 갔다. 감을 싫어하는 나에게 외할머니는 홍시를 내밀었다. 힘주어 쳐다보기만 해도 툭 터질 듯한 홍시는 붉고 붉었다. 그 잘 익은 홍시를 당신의 은수저로 한 숟가락 듬뿍 퍼서 내 입에 불쑥 들이밀었다.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때, 그 차고 진한 홍시가 혀끝에 닿는 순간 그해 겨울 추위를 다 먹은 것처럼 시렸다. 그러나 달콤했다. 이때를 위해 외할머니는 감나무 아래 외손녀를 그리워하며 일 년을 기다린 것이 아닐까. 어떻게라도 이 진하고 붉은 홍시의 달콤함을 주기 위해, 겨울이 올 때까지 찬 항아리 속에 잘 묻어놓은 것이 아닐까. 홍시 하나 얼른 따서. 까마귀가 쪼아 뚝 떨어지기 전에. 까마귀가 먼저 콕콕 쪼아 먹으면 안 되니까.  

  여성경제신문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zoo-mouse@hanmail.net

양선주 시인·작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문단에 데뷔해 시집 <사팔뜨기>를 출간했다. 건강 문제로 인한 긴 공백기 끝에 2025년 시집 <열렬한 심혈관>, 산문집 <시는 내 곁으로 와 눕고>(공저)를 펴내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소설미학>에서 동화, <월간문학>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역량을 펼치고 있으며, 동화책과 동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