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만은 내가 가족이 되어”…고통의 곁을 지키는 스님 [신의 일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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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신은 법당과 성당, 교회 안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신의 일터'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래 사람들의 곁을 지켜온 종교인들을 만나는 연속 기획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도 그런 자리를 오래 함께 지켜왔다.
고국의 가족이 곁에 없는 자리에서, 낯선 나라의 스님들이 그들의 다음 생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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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신은 법당과 성당, 교회 안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신의 일터’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래 사람들의 곁을 지켜온 종교인들을 만나는 연속 기획입니다. 세 번째 일터는 절 밖입니다. 무연고 사망자 추모 현장에서 지몽 스님을 만났습니다.
■ "살아오면서 서운했던 모든 일들 내려놓으시고, 편히 안녕히 가십시오."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고인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영정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상주 자리에 선 자원봉사자들이 고인에 대해 아는 것은 이름과 생년월일 뿐.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도 그런 자리를 오래 함께 지켜왔다.
■ 절 밖으로 나간 스님들
스님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때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곁에 서고, 참사가 남긴 슬픔의 자리를 지킨다. 고국의 가족이 오지 못한 이주노동자의 장례도 함께 했다.
"중이 절에나 있지, 왜 여기 와서 데모질이냐."
스님들이 처음 거리로 나섰을 때,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상처를 받고 다시 나오지 않은 스님들도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조계종 안에서 이런 활동의 중심에 서 있는 사회노동위원회. 지난 2012년 만들어졌다. 스님들은 노동과 인권, 재난과 죽음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사회노동위원회에는 승복을 입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양한웅 집행위원장이다. 오랫동안 KT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해오다 조계종으로 적을 옮겼다. 지금은 사회노동위원회에서 스님들과 함께 현장을 다니며 위원회 살림을 꾸려 가고 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편에 서 왔던 사람과 산사에서 수행해 온 스님들이, 이제 같은 현장에 나란히 선다. 왜 스님이 절을 떠나 이런 곳까지 와야 할까? 지몽 스님은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다.
"자비가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딥니까?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라고. 일터에서 다치고 돌아가시는 분, 차별과 혐오로 상처받고 고통받는 분들, 그런 분들 곁에 서는 게 자비의 실천이고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가족이 오지 못한 사람, 가족이 오지 않은 사람
스님들이 만나는 죽음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고국에 가족이 있지만 한국까지 올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지난달 경기도 이천. 일하다 숨진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분향소에 스님들이 섰다. 올해 3월에는 경북 고령의 한 주물공장을 찾았다. 외국인 노동자가 기계에 깔려 숨진 자리였다. 스님들은 그곳에서 추모 기도를 올렸다. 지난해 8월에는 산재로 숨진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합동 49재를 지냈다. 49재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 49일 동안 다음 생을 기다린다는 불교의 믿음에 따라 지내는 의식이다. 고국의 가족이 곁에 없는 자리에서, 낯선 나라의 스님들이 그들의 다음 생을 빌었다.
가족이 있어도 마지막 장례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국내 무연고 사망자는 7천여 명. 그러나 네 명 중 세 명은 실제로는 연고자가 있었다.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시신을 인수하지 못한 경우였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해 온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이제 '법으로 정한 가족'만이 마지막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바야흐로 고립의 시대. 이제 기존에 유지해 온 혈연과 가족의 개념을 뛰어넘어야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몽 스님도 한 아들을 기억했다. 오래전 연락이 끊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은 아들이었다. 아들은 장례만큼은 직접 치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 그리고 공영장례 빈소를 찾아와, 추모하는 내내 대성통곡했다.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그렇게 울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었고, 남겨진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 "회의가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겠죠"
보람도 있었지만,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회의가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스님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현장을 떠올렸다. "그런 현장은 어떤 현장이든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들더라고요." 그런데도 다시가는 이유는 뭘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부조리하고 부당함에 고통받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힘들어하시는 분도 많고요. 부처님은 그런 분들 곁에 있으라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 "그 순간만은 우리가 가족이 되어"
경기 파주의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 가족이 찾아가지 않은 유골함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누구와 사랑했고,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스님들이 그 앞에서 목탁을 두드렸다.
"살아오면서 힘든 감정이 있었다면, 불안이나 분노나 원망이나 이런 게 있었다면 내려놓으시고, 살아오면서 기뻤던 기억들, 행복한 기억들만 가져가시라고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다음 생에서는 못다 이룬 꿈을 이루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빈단다.
"우리는 이어져 있거든요.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하는 존재예요. 홀로 살 수도 없고, 홀로 행복할 수도 없고, 홀로 고통스러운 게 혼자만의 일로 끝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바라는 장례의 모습도 거창하지 않다. "예전에는 한 마을에 연고가 없는 분이 돌아가시면, 마을 전체가 나서서 장례를 치러 드렸지 않습니까. 가족이 없지만 그 순간만은 우리가 가족이 되어 줘서, 그분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그런 공영장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국의 가족이 오지 못한 장례식에도, 오래전에 헤어진 가족이 끝내 오지 못한 빈소에도, 누군가는 남아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잘 가시라고. 당신의 삶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그 순간만큼은, 낯선 사람들이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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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혜 기자 (grace3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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