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찾아 떠났는데 ‘마약 운반책’ 돼 있었다···필리핀 싱글맘 벨로소, 16년 만의 귀가 [시스루피플]

최경윤 기자 2026. 9.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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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있단 말에 인도네시아로 갔다가 마약 운반 혐의로 16년간 옥살이를 한 메리 제인 벨로소가 지난 26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인근 케손시티에서 가족과 지지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0년 필리핀에서 어린 두 아들을 홀로 키우던 메리 제인 벨로소(41)는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해외로 떠났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16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공항에서 그의 가방에 숨겨진 마약이 발견됐고 사형 선고와 오랜 수감 생활이 이어졌다. 그사이 아버지는 70대 노인이 됐고, 두 아들은 훌쩍 커버렸다.

28일(현지시간) 필리핀 매체 래플러에 따르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25일 벨로소를 사면했다. 2010년 인도네시아 법원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지 16년 만이다. 교도소를 나선 벨로소는 가족과 재회할 수 있게 해준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벨로소 사건은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드러내며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지 일간 마닐라불레틴은 “벨로소의 사례는 단순히 생존과 사면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자유를 되찾기 위한 그의 여정을 조명했다.

필리핀 루손섬 누에바에시하에서 1살과 7살 두 아들을 키우던 벨로소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이웃의 제안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 결혼해 출산한 뒤 남편과 헤어진 그에게 생계 수단은 절실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을 때 약속된 일자리는 없었다. 이웃은 새 여행 가방과 500달러(약 67만원)를 건네며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로 갈 것을 제안했다. 벨로소는 당시 가방이 무거워 보였지만 비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2010년 4월 욕야카르타 공항에 도착한 그는 수하물 검색대에서 체포됐다. 가방 안감에서 알루미늄 포일에 싸인 약 50만달러(약 6억7800만원) 상당의 헤로인 2.6㎏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체포 6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가족과 인권단체들은 벨로소가 취업을 미끼로 한 범죄 조직에 속았다며 구명 운동을 벌였다. 국제 청원사이트 ‘체인지’에서 진행된 ‘벨로소 사형 반대 청원’에 127개국에서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필리핀 정부도 수차례 사면 또는 재심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마약 척결을 공언하며 사형을 선고받은 마약 사범에 대한 사면 요청을 모두 기각했다.

필리핀 매체 필스타에 따르면 벨로소는 2015년 4월29일 다른 수감자 8명과 함께 총살형에 처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당시 필리핀 대통령의 호소로 집행 예정 시각을 20분도 남기지 않은 순간 극적으로 형 집행이 연기됐다. 벨로소는 2024년 양국 합의에 따라 14년 만에 본국으로 송환됐지만 이번 사면 전까지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벨로소의 사례는 미흡한 사회 안전망 속에서 위험에 노출된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필리핀은 오랜 기간 자국 노동력을 해외로 수출해왔지만, 불법 취업 브로커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필리핀 재외 노동자 연합 ‘미그란테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필리핀을 떠나는 사람은 하루 약 8000~1만명에 달한다. 이 단체 대변인인 챗 디마아노는 해외에서 어려움을 겪는 필리핀인이 수천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부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형사·이민·노동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필리핀 노동자는 약 3000명이며, 이 가운데 25명은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다.

벨로소를 변호해 온 ‘시민을 위한 변호사협회’(NUPL)의 에드레 올랄리아 변호사는 “메리 제인은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뿐”이라며 “왜 우리 국민이 가족과 아이들을 떠나 해외에서 일해야 하는지, 왜 정부가 애초에 그들을 돕지 못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벨로소는 이제 잃어버린 일상을 하나씩 되찾으려 한다. 가장 하고 싶은 일로 ‘학교에 아들 데려다주기’를 꼽았다. 그는 “아들은 이제 다 컸지만, 그래도 반 친구들이 ‘아, 이 분이 네 엄마구나’라고 알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난 그런 걸 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2024년 12월18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에서 송환돼 필리핀 마닐라 만달루용시 여성교도소에 도착한 벨로소가 가족과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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