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워 울면서도 밥 먹는 게 인생"… '스미레 미용실' 정의신의 위로 [인터뷰]

김소연 2026. 9. 3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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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해."

재일동포 극작·연출가 정의신(69)의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1960년대 일본 규슈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다.

정 연출가의 실제 가족사처럼 수미네 가족은 일본 국적을 택한 나루히로, 조선적을 끝까지 놓지 않는 홍길 등 한국 국적과 조선적,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다.

작은 재일동포 사회 안에서 연애하고 결혼하며 가족과 가족의 관계가 더욱 촘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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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정의신 연출작, 日 초연 14년 만에 한국 초연
'자이니치 3부작' 완결작… 1960년대 규슈 탄광촌 배경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웃고 먹고 사랑하는 인간의 삶
연극 '스미레 미용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해."

재일동포 극작·연출가 정의신(69)의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1960년대 일본 규슈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제비꽃, '스미레'의 이름을 내건 미용실을 열겠다는 꿈을 품은 세 자매의 둘째 수미다. 하지만 탄광 사고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발작 등 비극적 상황이 잇따르고, 아버지 홍길은 절망에 빠진 딸 수미와 사위 나루히로에게 삶의 의지를 전한다.

'스미레 미용실'은 '이를테면 마치 들에 피는 꽃처럼'(2007), '야끼니꾸 드래곤'(2008)에 이은 정 연출가의 '자이니치 3부작' 마지막 작품이다. 일본 초연 14년 만에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나고 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정 연출가를 만났다.


영웅 대신 묵묵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

정의신 극작·연출가.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일동포 밀집 지역인 오사카 인근 히메지시에서 나고 자란 정 연출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무대에 올려왔다. 전작들에서 그랬듯 그는 역사에 기록된 영웅이 아닌 사람들, 특히 자이니치의 삶을 통해 역사의 굴곡을 바라본다. 연극은 탄광 폭발에 대한 자세한 묘사보다 이 사건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으로 사람이 바뀌어 가고 인생이 일그러져 가는 것을 보여주면 사고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무엇보다 지금의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나 자이니치를 배척하지만 이들과 가난한 일본인 노동자들이야말로 일본 경제를 떠받쳐 왔다는 사실을 희곡 안에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 연출가가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인간의 이상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무대 위 사람들은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먹고, 싸우고, 사랑한다. 그는 "고통받고 슬플 때에도 울면서 밥을 먹는 게 이상하지만 그 모습이 인간 존재 그 자체"라며 "슬픔과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는 것,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서로 다른 국적의 가족 공동체

연극 '스미레 미용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오늘을 버텨내야 한다는 메시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정 연출가의 실제 가족사처럼 수미네 가족은 일본 국적을 택한 나루히로, 조선적을 끝까지 놓지 않는 홍길 등 한국 국적과 조선적,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다. 세 자매의 강한 성격에는 네 자매였던 정 연출가 어머니의 삶도 투영돼 있다.

그는 "우리 가족은 국적은 서로 달라도 여전히 다 같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며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도 가족이라는 기묘한 연결과 유대감으로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가족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도 정 연출가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는 "자이니치는 가족 간의 애증이 큰 듯하다"고 했다. 작은 재일동포 사회 안에서 연애하고 결혼하며 가족과 가족의 관계가 더욱 촘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연극, 관객과 배우의 '제의'

정의신 연출가. 세종문화회관 제공

그렇다면 정 연출가는 왜 자이니치의 기록을 다른 예술 장르가 아닌 연극으로 남기고 싶어할까. 할머니와 지내던 어린 시절 그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내뱉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인생이란 그런 것이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에게 연극은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 놓는 일이다. 혼자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이야기를 바라보고, 잠시 위안을 얻는다. 그는 "연극은 관객과 배우가 한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고독을 인정하고 위로하는 하나의 의식이자 제사"라며 "무대란 나 한 사람의 꿈이 아닌 관객과 무대에 있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하나의 꿈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연극이 필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고 교류하며 서로의 열기를 느끼는 연극의 생생함이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사의 파도에 사라져간 사람들

연극 '스미레 미용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정 연출가의 관심은 자이니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음에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은 작품은 일본에서 여러 차례 공연된 '바다의 아이들'이다. 마임과 음악, 춤이 어우러진 무언극으로, 바다에서 놀던 아이들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그는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스미레 미용실'을 한국 관객에게 보여주며 바라는 것도 거창하지 않다. 먼 옛날 일본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 주변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는 프로그램북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등장인물들의 외침이 한국 관객 여러분의 가슴에 닿기를, 길가에 피어난 작은 제비꽃 한 송이 같은 희망이 그 가슴에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공연은 다음 달 3일까지.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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