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건조해도… 글로벌 선주들, K엔진 찾아

한예나 기자 2026. 9. 30. 0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中 조선업 호황에 韓 수주 급증

HD현대중공업은 올해 1~8월 국내외에서 선박 추진용 대형 엔진만 128대, 9억95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어치를 수주했다. 선박 추진용 엔진은 프로펠러를 돌려 수만~수십만t짜리 배를 움직이는 핵심 장비로, ‘선박의 심장’이다. 예컨대 30만t급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에 들어가는 엔진은 높이 17.7m, 무게만 900t(톤)에 달할 정도이고, 선박 가격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HD현대마린엔진 창원공장에서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고 있는 모습. HD현대마린엔진이 올해 1~8월 공시한 선박 엔진 공급 계약 중 65.4%(금액 기준)가 중국 조선소에서 따낸 것이다. /HD현대

이런 엔진을 HD현대중공업에서 가장 많이 사들인 고객은 다름 아닌 중국 조선소였다. 올해 따낸 엔진 수주 물량 중 74.9%(이하 금액 기준)가 중국 몫이었다. 글로벌 선박 수주 경쟁에선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조선소가 매년 점유율 70~80% 안팎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 뒤에서 HD현대중공업의 엔진기계사업부, HD현대마린엔진, 한화엔진, STX엔진 등 우리 선박 엔진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수퍼 을’ 역할을 하며 조용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선박 수주는 中에 밀려도, 엔진은 안 밀려

HD현대의 엔진 계열사 HD현대마린엔진은 올해 1~8월 국내외에서 8706억원어치 엔진 수주 계약을 따냈다. 계약의 65.4%가 중국 기업이었다. 한화엔진도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9768억원을 수주해 전체 수주액의 45% 정도를 중국에서 따냈다. STX엔진도 지난 7월 중국 뉴타임즈조선(NTS)과 786억원 규모의 엔진 공급 계약을 맺었다. NTS가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에서 수주한 배에 들어간다.

조선업계에선 친환경 규제가 확대되면서, 기존 벙커C유 외에도 LNG(액화천연가스)나 메탄올, 암모니아 등을 엔진 연료로 함께 쓰는 ‘이중 연료’ 선박이 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화엔진의 경우 올해 6월 말 선박 엔진 수주 잔고의 83%가 이중 연료 엔진이다. 기존 디젤 엔진과 비교해 기술 난도가 높아 선주들이 누가 만든 엔진인지, 그 엔진을 장착한 배의 운항 실적이 어떤지를 까다롭게 따진다고 한다. 특히 엔진은 고장이 나면 선박 운항 자체가 어려워져, 가격보다 품질과 사후 관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실제 세계 최대 해운국인 그리스의 해운 전문지 ‘나프티카 크로니카’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그리스 선주가 운영·관리 중인 선박 가운데 중국산은 약 1700척인데, 이 중 한국산 엔진을 쓴 선박은 약 42%에 달했다. 중국산 엔진을 쓴 선박 비율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中서 일감 따내는 K기자재

엔진뿐만 아니라 선박의 연료 공급 및 제어 장치 등 기술력과 경험이 필요한 다른 기자재도 한국산을 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경기 화성에 본사를 둔 선박 기자재 기업 에스엔시스는 지난 4월 중국 뉴장저우조선소가 건조하는 3만3000DWT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에 선박감시제어시스템과 메탄올 연료 공급 시스템(LFSS)을 패키지로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LFSS는 선박에 저장된 메탄올을 엔진이 요구하는 압력과 온도에 맞춰 공급하는 장비다. 에스엔시스가 중국에서 따낸 첫 친환경 연료 공급 시스템 패키지 수주다.

부산의 친환경 선박 기자재 업체 파나시아는 아예 중국 현지 생산에 나선다. 중국 장쑤성 루가오에 회사의 첫 해외 생산 기지를 마련해 오는 12월부터 선박용 스크러버를 생산할 계획이다. 스크러버는 선박 엔진의 배기가스에 포함된 황산화물(SOx) 등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장비다. 파나시아는 국내 최초로 선박용 스크러버를 개발해 2019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한 조선 기업 고위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이 오랜 기간 쌓아온 엔진·기자재 경쟁력이 중국이 만드는 선박 내부를 조금씩 파고들고 있는 것”이라며 “기술력으로 중국의 물량을 극복하는 사례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