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예하의 진주찐주 “색을 지어가는 풀꽃누리”

경남일보 2026. 9. 2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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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를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천연염색이 그러했다.

"화학염색 단지에 가면 못 내는 색이 없어요. 예전엔 화학염색과 싸워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해요. '그건 당신의 색이고, 이건 자연에서 찾은 나의 색입니다.' 자연에서 온 수많은 색을 화학이 따라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매력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일은 맥이 끊어질거에요. 천연염색은 언젠가 사라질 문화예요. 그래도 다른 작가들과 만남을 많이 가져보고 싶어요. 저는 색을 들이는 염색가이니, 이 색을 뽐내고 표현해줄 작가를 만나 예술로서 풀어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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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연스러운 빛깔을 찾아서, 풀꽃누리
세월이 흐를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천연염색이 그러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의 것으로만 여겨왔던 빛깔이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워보였다.

풀꽃누리는 산청에 위치한 전통염색공방이다. 남사예담촌에서 '순이진이갤러리'라는 카페와 '풀꽃누리'라는 공방을 함께 운영하는 부부는 그곳에 평생을 일궈낸 작품들을 함께 걸어두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바람에 실려 온 천들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쪽빛, 황토빛, 붉은 홍화빛이 나란히 걸려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시간이 그대로 걸려있는 듯하다. 가을 바람이 좋은 오늘, 그 이야기 속으로 발을 내디뎌본다.
 
풀꽃누리 공방으로 들어서면 펼쳐지는 빛깔. 사진-예하


Q. 안녕하세요! 입구에서부터 펄럭이는 천들이 아름답습니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전통 염색가 박영진입니다. 항상 저를 소개하는 말은 이걸로 충분해요. 색을 만드는 사람은 색으로 표현하면 그만이니까요."
 
남사예담촌에 간다면 이 간판을 찾아야만 한다. 새로운 빛깔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사진-예하


Q. 천연 염색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지만 잘은 모릅니다. 천연염색이란 무엇인지요?

"이것이 천연 염색이냐?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 경계가 참 모호해요. 크게 보면 석유로 만든 것도 자연에서 온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기준을 최소한으로 좁혔어요. 건강한가 아닌가? 자연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를 기준으로요. 건강이라는 건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모든 존재에게 해당되는 거죠. 순환의 고리 안에 들어가 있느냐,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건강한 염색이라고 봐요.

제가 정한 기준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전통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자연에게 이로운 염색, 저는 그것이 천연염색이라 생각합니다."

나아가는 길목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이 자연의 순환 고리 안에 들어가 있는가?" 그 질문을 안고 고문헌을 뒤지며 답을 찾아 나갔다.

정의를 묻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정의 내리기를 경계했다. 이름보다 원칙이, 원칙보다 질문이 먼저였던 사람. 그 질문들이 쌓여 지금의 풀꽃누리를 만든 셈이다.
 
순이진이갤러리 맞은 편에 있는 풀꽃누리 공방 안에서. 옷보다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장면. 사진-예하


Q. 이 길에 접어들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환경 운동가셨던 어머니께서 생활 속에서 천연염색을 하셨어요. 그 일을 돕다가 우연히 시작했어요. 처음엔 재미가 없었어요. 황토 염색, 숯 염색만 해서 색이 안 예뻤거든요."

그 후 다양한 빛깔을 위해 전국을 돌며 배우는 과정에서 색을 잡아두기 위해 쓰이는 화학 재료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스스로의 색을 완성하기까지 13년이상이 걸렸다고 그는 말했다.

"올해로 26년째예요. 전국을 다 다녀보고 나서야, 다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어요. 주변에 있는 걸 제대로 활용하는 게 전부라는 거요. 그 노하우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지나온 시간을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재미없던 색이 자신만의 색이 되기까지, 그 사이에는 숱한 실패와 되풀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을 억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더딤이야말로 천연염색을 천연염색답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카페 마당에서 키우시는 쪽. 쪽은 수확해서 발효를 거치면 자연이 가진 파란빛을 보여준다. 사진-예하


Q. 계절마다 쓰시는 재료나 색이 달라지나요?

"모든 건 자연에서 구해야 한다, 해로움이 있으면 안 된다- 그 원칙을 지키며 구하고 사용해요. 홍화와 쪽은 직접 농사짓고, 황백은 약초 캐는 할아버지께 부탁해서 구해요. 동백나무는 천연 백반 역할을 하는데, 가지치기할 때 챙겨오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재료를 나열하는 그의 말에는 물건의 목록이 아니라 사람의 목록이 섞여 있었다. 약초 할아버지, 가지치기하는 손, 함께 농사짓는 이웃들. 색 하나를 얻기까지 마을 전체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세월이 흐르며 함께 물들어버린 손 끝. 박영진 염색가의 손 끝에는 수많은 색의 시간이 담겨있다. 사진-예하


Q. 인공적인 개입으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 이 일만의 매력이 있을까요?

"화학염색 단지에 가면 못 내는 색이 없어요. 예전엔 화학염색과 싸워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해요. '그건 당신의 색이고, 이건 자연에서 찾은 나의 색입니다.' 자연에서 온 수많은 색을 화학이 따라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매력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Q. 먼 훗날, 이 공방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세요? 요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으신 작업이 있다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일은 맥이 끊어질거에요. 천연염색은 언젠가 사라질 문화예요. 그래도 다른 작가들과 만남을 많이 가져보고 싶어요. 저는 색을 들이는 염색가이니, 이 색을 뽐내고 표현해줄 작가를 만나 예술로서 풀어내보고 싶어요."
 
그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배우자인 김옥순 대표. 얼굴에 드러나는 고운 빛과 선에서 지나온 세월을 엿본다. 사진-예하


Q. 선생님처럼 자연을 곁에 두고 무언가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조언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삶이 있는 거니까 만나서 교류하면 좋겠어요. 나만의 색에 갇혀있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는 염색만으론 부족하다고 했다. 프랑스 오트쿠튀르에서는 장인들이 모여 한 벌의 옷을 만드는 데 반년이 걸린다고 한다. "존중과 기다림이 있는 그 관계가 부러워요. 얼마 전 서울에 있는 봉제 공장을 찾아갔더니 막내가 예순다섯이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그는 "숙련이 되면 쉬워진다"고 말했다. 천연 염색은 결국 식물과 발효, 화학반응과 역사까지 알아야 하는 종합학문이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공방을 나서는 길, 다시 한번 입구의 천들을 올려다봤다. 쪽빛은 쪽빛대로, 홍화빛은 홍화빛대로 제 속도로 빛나고 있었다. 화학염색이 만들어내는 색이 한 번에 완성되는 색이라면, 그가 만든 색은 여전히 진행 중인 색이었다. 173가지 색을 향해 가는 길에서 그는 아직 몇 걸음째인지 세지 않는다. 다만 계속 걸을 뿐이다. 언젠가 이 빛깔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지만, 동시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 빛깔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했다. 모든 것이 순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그의 말처럼, 풀꽃누리에서 만난 빛깔들도 그 오랜 순환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 순환의 다음 자리에,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순이진이갤러리의 모습. 부부는 이 공간에서 다음을 함께 그려갈 예술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예하


글·사진=이예하 시민기자·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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