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육영수 피격 사과?…당시 박근혜 "들은 적 없다"

김시몬 기자 2026. 9. 2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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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북한 자백했다며 영화 '암살자(들)' 비판
장동혁·주진우 "김정일 이미 직접 사과했다"
당시 박근혜 "어머니 사건 사과 들은 적 없다"
"나의 방북은 사과 받으러 간 것도 아니다"
자서전에도 김신조 청와대 습격 관련 사과만
정세현 전 통일장관 "김정일 어떻게 사과하나"
"김정일이 사과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있겠나"
'김정일 사과' 근거는 2002년 일본 통신 보도
베이징 익명 소식통 인용…박근혜는 당시 부인
'암살자(들)' 제작진,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해
"낡은 색깔론, 사상통제…시대착오적인 폭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 6일 만에 163만 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했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는 추석 연휴 기간(9월 24∼27일)에만 140만 7000여 명이 관람하고 5일 연속 박스 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총을 발사해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실제 사건에서 발생한 여러 의문과 진실들을 좇는 사람들 이야기다. 영화는 암살 사건 배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 등 국내 권력이 있었을 가능성을 영화에서 암시하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2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02년 박근혜 대통령 방북 당시 북한 김정일은 직접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주진우 의원도 SNS를 통해 같은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힘 강명구·구자근 의원도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고 김정일도 2002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기도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사실상 북한 소행임을 자백한 것"이라며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건 악질적인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은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체부 소관 법률안을 심사하던 중 최휘영 문화체육부 장관을 향해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돼 있느냐" "6·25 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물었다. 이에 최 장관이 "제 업무와 관련된 걸 물어보면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영화 '암살자(들)'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김 의원은 "육영수 여사를 죽인 사람, 문세광이 맞냐"면서 "시중에 '암살자'라는 영화가 나와 있냐"고 따졌고, 법안 심사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는 최 장관을 향해서도 "대한민국 장관할 자격 있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육영수 여사 시해로 북한 김정일이 박근혜에게 이미 직접 사과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한 누리꾼이 자신의 SNS에 공유하고 있다. 2026.09.29. X(전 트위터) 갈무리.

'북한이 이미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사과해 결론이 난 사건'이라는 취지의 국민의힘 주장은 다른 SNS에도 일파만파 퍼지면서 영화를 비판하는 소재로 쓰이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행미디어시대 등 여러 언론도 잇따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사과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는 2002년 방북해서 김정일 전 위원장과 만난 뒤 "1·21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는 했으나 어머니 사건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의 방북은 사과 받으러 간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육영수 피격 사건과 김정일 사과의 의문

정쟁의 소재가 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진행된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던 도중에 발생했다. 반세기를 지나서도 사건과 관련한 의문은 여러 번 제기됐다. 당시 수사 발표에 따르면 현장에 모두 7발의 총성이 울렸는데 문세광은 4발을 발사했다. 문세광이 쏘지 않은 총성을 두고 누가 어디로 발사했느냐는 의문이 나왔다.

1974년 사건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으로 수사본부에 참여했던 고 이건우 경감은 사건 발생 15년 후인 1989년 "문 씨가 쏜 총알은 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에 맞았다"며 "현장 검증 전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미리 수거해 가 탄두를 확보 할 수 없었다"고 폭로했다. 문세광이 비표도 없이 총을 가진 채 대통령의 행사장에 입장할 수 있었던 경호 경비와 육영수 여사의 총상 위치, 한일의 수사 결과가 다른 점 등이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오른쪽 한복 입은 여성)가 문세광의 총에 맞고 쓰러져 있다. 2026.09.29.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장하는 북한의 사과도 의문이다. 육 여사 피격에 대한 사과는 명확하게 확인되는 사실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는 2002년 방북한 뒤 "1·21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는 했으나 어머니 사건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언급한 이후에도, 여러 번 김 전 위원장의 '사과'를 언급하기는 했다. 박 씨는 지난 2007년 7월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도 김 위원장이 1968년 김신조 등 남파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얘기를 꺼내며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육영수 피격 사건에 대한 김 위원장 발언은 찾을 수 없다.

박 씨가 방북한 2002년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도 시민언론민들레와 통화에서 "당시는 박근혜 1인 중심 정당 대표(한국미래연합) 시절로 르네상스 호텔에 있을 때 만났다. 2002년 5월에 (북한에) 갔다. 박근혜 요청에 의해서 '평양 가서 뭐 어떤 걸 조심해야 되느냐'며 자문을 받겠다고 해서 만났다"며 "문세광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김정일이 사과를 하느냐. (사과했다면) 내가 모를 수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정 전 장관은 "김정일이 (당 중앙위원회 위원을 맡아) 일을 시작한 것은 (1972년) 만 30살 됐을 때"라면서 "사실상 그때 즈음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이 됐지만, 김정일이가 그 사과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과 여러 언론이 '북한 김정일이 직접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 출처는 2002년 9월 일본 언론의 미확인 보도였다. 베이징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한 이 보도에는 당시 박근혜 씨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한 내용도 함께 담겨 있었다.

2002년 9월 13일 일본 지지(時事)통신과 교도(共同)통신은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974년 8·15 광복절에 발생한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기도에 대해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박 씨는 측근을 통해 "1·21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기는 했으나 어머니 사건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며 "회동 내용 공개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과 상의한 바도 없다"고 부인했다(2002년 9월 14일자 한국일보, 「"김정일, 74년 박정희 암살기도 사과"/日언론 "5월 박근혜 방북때"」). 이후로 북한이나 박 씨를 통해 이 사실이 확인된 바는 없다.
박근혜 씨가 지난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09.29.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리하면 일본 통신은 베이징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육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김 위원장과 직접 대화한 당사자 박 씨는 당시 "어머니 사건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확인해 준 것이다.

2002년 5월 16일 연합뉴스가 박 씨의 구술을 정리한 <박근혜 위원장 방북기-2>에서도 육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한 사과 언급은 없다. 박 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1·21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일순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를 보였다"면서도 "내가 북한 방문을 마친 뒤 일부에서는 '아웅산 테러, 문세광 사건 등에 대해 북한의 사과를 받지 않고 김 위원장 말만 듣고 왔다'고 하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나의 방북은 사과 받으러 간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역사계도 국민의힘의 북한 사과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배기성 역사 강사는 민들레와 통화에서 "(김정일이) 사과했으면 벌써 우리 같은 (역사계) 사람들이 난리가 났을 것이다"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황현필 역사 강사도 이번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문세광이 북한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고 해야 일본의 책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본 신문사가 1·21 사태 사과를 문세광 사건 사과로 둔갑시켜 낸 '지라시성 보도'"라고 말했다.

취재에 응한 외교 전문가들도 "사과했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박근혜는 이미 육영수 사건이 아니라 김신조 사건으로 김정일이 유감표명한 것이라고 몇번 공개발언 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27일 자신의 SNS에 북한 김정일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려는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희생된 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며 북한 소행임을 자백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당사자인 박 씨의 주장이 담기지 않은 기사를 공유했다. 2026.09.29. 주진우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주진우 의원 등 국민의힘 인사들은 일본 보도를 인용해 북한이 사과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박 씨가 당시 해당 보도를 직접 부인했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주 의원은 지난 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북한 김정일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려는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희생된 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며 "북한 소행임을 자백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도, 당사자인 박 씨의 주장이 담기지 않은 기사를 공유했다.

국힘 시의원, 영화 감독·제작진 고발…"사상통제 시대착오적 폭거"

한편 영화 '암살자(들)'의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은 이날 경찰에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고발인 이종배 국민의힘 전 서울시의원은 서울경찰청에 "영화 제목도 '암살자'가 아니라 복수형인 '암살자(들)'로 정해 문세광 외에 다른 암살 주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면서 "관객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 배후에 있었거나 범행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 왜곡 비판과 관련해 영화 제작진은 "'암살자(들)'은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당시 사건과 관련해 작성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고 입장을 낸 바 있다.

진보당 노정현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과 극우세력을 향해 "국민의힘을 필두로 극우 유튜버와 보수 매체들이 일제히 가세해 영화 한 편을 좌표 찍고 낡은 색깔론 공세를 퍼붓고 있다"면서 "영화 '암살자(들)'를 암살하려는 마녀사냥을 즉각 중단하라"고 말했다.

이어 "창작물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통제하려는 행태는 군사독재 시절의 폭력적인 사전검열과 사상 통제라는 낡은 유산을 고스란히 되살려내는 시대착오적 폭거"라고 지적했다.

simonn0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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