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살았고, 너는 나를 그린다”…그림으로 나눈 모자의 가장 따뜻한 대화

조혜정 기자 2026. 9. 2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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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엽 할머니는 어느 날 빈 종이에 그린 사과 한 알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화가이지만 생계를 위해 택배기사를 겸업하던 막내 아들의 칭찬이 듣기 좋고, 그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다가 83세에 화가가 된 할머니.

일제강점기에 오사카에서 태어나 80세까지 바느질을 하며 삶을 이어갔던 김두엽 작가(1928~2024)의 그림 인생은 83세 어느 날 달력 뒷장에 사과 한 알을 그리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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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도가헌미술관 다음달 10일까지
김두엽·이현영 모자展, 두 작가 생애 담아
미술 교육 통해 ‘배운 그림’ 그리던 아들과
83세 나이에 ‘그림 그리는 할머니’ 변신
‘삶-예술’ 세대 간 공유·탄생 과정 선봬
김두엽·이현영 모자전 ‘나는 너를 살았고, 너는 나를 그린다’가 열리는 제1전시장 전경. 도가헌미술관 제공

김두엽 할머니는 어느 날 빈 종이에 그린 사과 한 알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화가이지만 생계를 위해 택배기사를 겸업하던 막내 아들의 칭찬이 듣기 좋고, 그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다가 83세에 화가가 된 할머니. 202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가 남긴 700여점의 작품과 아들 이현영 작가가 치열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용인 도가헌미술관에서 전시된다. 

용인 도가헌미술관은 10월 10일까지 ‘나는 너를 살았고, 너는 나를 그린다-10년의 여정 김두엽·이현영 모자전’과 이현영 초대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어머니 김두엽 작가의 작품과 아들 이현영 작가의 작품이 미술관을 차지하지만 각자 1전시장과 2전시장에 배치돼 결이 다른 두 작가의 생애를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 오사카에서 태어나 80세까지 바느질을 하며 삶을 이어갔던 김두엽 작가(1928~2024)의 그림 인생은 83세 어느 날 달력 뒷장에 사과 한 알을 그리며 시작됐다. 미술 교육을 통해 소위 ‘배운 그림’을 그리던 막내아들 이현영 작가는 어머니의 사과 그림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김 작가는 그것을 동력 삼아 ‘그림 그리는 할머니’의 삶을 이어간다. 이 작가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 무언가를 이토록 치열하게 생산해내는 삶이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열심히 그림을 그리셨다”고 어머님의 모습을 회상했다.

생계를 위해 택배업을 겸하던 이 작가는 퇴근 무렵이면 어머님이 그려놓으셨을 새 작품을 볼 기대감에 설렘을 느꼈다. 어머니 김 작가 역시 자신의 그림에 아들이 보일 반응을 기다렸다. 이 작가는 “어머님이 남긴 마지막 생애는 설렘의 연속이었다”며 “어머님은 배움이 없는 자신의 그림보다 아들 그림이 낫다고 하셨지만 과감하고 용기있는 어머님의 색채 선택과 표현력 등 모든 것이 아들의 그림보다 훨씬 나았다”고 평했다.

이현영 작가(왼쪽)와 생전 김두엽 작가의 모습. 갤러리M 제공


이 작가는 어머님의 조력자이기 전에 자신만의 독립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2~3㎜ 남짓한 점으로 캔버스를 채우는 작업을 하는 그는 “평범한 붓터치와 표현력으로는 치열하지 않은 느낌,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느낌이 든다”며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고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도 점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고수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는 ‘부끄러움’이라는 화두와 맞닿는다. 점을 찍는 작업이 글을 쓰는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 작가는 문득 윤동주 시인을 떠올렸고, 그의 작품 ‘서시’는 작가 개인의 예술세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하늘과 바람, 나무와 숲, 대지와 별빛 등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존재, 삶의 시간을 탐색해 온 이현영 작가의 회화세계가 이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집약돼 있다.

‘나는 너를 살았고, 너는 나를 그린다’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로 독립된 두 전시인 동시에 삶과 예술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어떻게 건너가고 다시 새로운 언어로 태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어머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생명을 창조하고 길러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자식을 길러내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팔순이 넘은 나이엔 붓을 들어 생명력을 이어가셨죠. 그런 어머님의 작품과 삶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를 기억하며 저 역시 치열하게 그리겠습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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