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전기차 가속, 미국은 역행… 기름차 살리는 트럼프 속내는

이윤정 기자 2026. 9. 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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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충격 속에서 세계 각국이 전기차(EV) 보급 정책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오히려 완성차 기업에 적용하는 연비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내연기관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주요 완성차 기업이 전동화 전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다, 대형 픽업트럭 중심의 시장 구조와 석유 산업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린 결과다.

미국 전기차 전문 매체 인사이드EV는 "전 세계가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하는 가운데, 미국은 규제 완화가 자동차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구시대적인 기술을 고수하는 기업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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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교통부, 기업평균연비제 대폭 완화
“전기차 판매 핵심 정책 후퇴시킨 것”
유럽·中·韓은 전기차 대세… 美는 역행
‘빅3’ 전동화 적자에 대형차 선호 작용
내부선 “車 산업 경쟁력 퇴행” 우려도

고유가 충격 속에서 세계 각국이 전기차(EV) 보급 정책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오히려 완성차 기업에 적용하는 연비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내연기관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주요 완성차 기업이 전동화 전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다, 대형 픽업트럭 중심의 시장 구조와 석유 산업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은 전기차 흐름을 외면할 경우 미국 완성차 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이 후퇴할 것이라는 지적도 거세다.

미 교통부는 28일(현지시각) 기업평균연비제(CAFE) 기준을 기존 갤런당 50.4마일(L당 21.4㎞)에서 34.9마일(L당 14.7㎞)로 대폭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CAFE는 완성차 업체가 한 해 동안 판매한 모든 차량의 평균 연비를 정부 기준에 맞추도록 하는 제도다. 이번 완화안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생산되는 승용차와 경트럭 전체에 적용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자동차 업계에 차량 효율 개선과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유도했던 핵심 정책을 완전히 후퇴시킨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텍사스주의 한 주유소./AFP 연합뉴스

실제 미국은 전기차 판매 독려를 위해 마련한 각종 정책을 폐지 또는 수정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CAFE 위반 벌금을 폐지해 규제의 실효성을 없앴다. 여기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방 전기차 보조금 집행을 중단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 근거가 됐던 오바마 정부 시절의 과학 연구 결과까지 폐기했다”고 전했다.

이는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의 행보와 정반대다. 독일과 프랑스는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늘렸고, 영국도 지난해부터 3만7000파운드(약 6700만원) 이하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대 10%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 역시 가격 비례식 보조금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도 대당 최대 600만원대의 보조금을 지급 중이다.

정책의 차이는 시장 성적표로 나타났다. 유럽은 지난 8월 전기차 판매량(24만3207대)이 내연기관차(20만2931대)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중국은 전기차를 포함한 신에너지차 비중이 이미 60%를 넘어섰으며 2030년까지 7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한국 역시 올해 8월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9.3% 증가하며 올해 누적 26만5917대를 기록했다. 전체 신차 판매량 중 비중은 24%로, 전년 동기(12.7%) 대비 두 배가 됐다.

반면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의 전기차 판매 비중은 전체 신차의 5.7% 수준에 그쳤다. 2025년 전체 평균인 7.4%보다 감소한 수치다.

고유가 국면에도 미국이 내연기관차로 유턴한 배경에는 미국 빅3(GM·포드·스텔란티스) 완성차 업체의 현실적 비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주력 차종인 픽업트럭과 대형 SUV의 전동화 전환에 수조 원을 투자했으나 막대한 적자를 냈다. 제조사들은 바이든 시절의 강경한 연비 규제와 보조금 정책이 “시장 수요를 무시한 채 전기차 배정을 강요한다”며 반발해 왔다.

미국의 지리적 특성도 일조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에 불리한 측면이 많다. 도심 중심의 짧은 주행 거리에 적합한 소형 전기차가 인기를 끄는 유럽과 달리, 미국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주행이 흔하고 대형 차종 선호도가 절대적이다. 대형 차종을 전기차로 만들 경우 배터리 원가가 급증해 차값이 치솟는 한계가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GM이 전기 픽업트럭을 생산하려던 미시간주 공장을 대형 가솔린 픽업트럭과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생산 라인으로 전격 전환할 예정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석유 업계의 영향력도 크게 작용했다. 트럼프는 지난 2024년 재선에 도전하면서 석유 및 천연가스 시추 확대 공약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내세운 바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공공연하게 드러낼 순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석유를 더 많이 쓰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이 시장의 본질적인 변화까지 막지는 못하고 있다. 미 자동차협회(AAA) 기준 이날 미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48달러로 역대 최고치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에 따라 콕스 오토모티브가 집계한 지난 8월 미국의 중고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4.7% 증가한 4만4350대를 기록했다. 고유가 부담으로 인해 3분기 대형 내연기관 트럭 판매량은 약 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의 내연기관 지키기가 단기적으로 차값 안정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자동차 산업 전체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 전기차 전문 매체 인사이드EV는 “전 세계가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하는 가운데, 미국은 규제 완화가 자동차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구시대적인 기술을 고수하는 기업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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