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은행에 맡기면 만능? “수수료, 행정비용 등 부담” 호소
“땅 주인하고 정식 계약서 써서 농지은행에 가져오라고요? 세금 혜택 못 받을까 봐 주인들이 싫어합니다.”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싸고 “농사짓던 땅을 뺏길 수 있다”며 농민들이 들끓자 당정이 지난 21일 관행적 불법 임대차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하면 합법적 임대차로 전환할 수 있게 해준다는 등의 보완책을 내놨다.
하지만 충남 공주시 우성면에 사는 농부 박종민(62)씨는 전수조사뿐 아니라 이런 보완책마저 탁상행정이라고 했다. 농지 소유주가 8년 이상 직접 경작해야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 보니 임대차를 공식화하는 것을 땅 주인이 꺼린다는 것이다. 실제 1만평쯤 빌려 농사짓던 박씨는 전수조사가 시작된 직후인 6월 “이제는 직접 농사짓겠다”는 땅 주인 요구로 마늘을 캐자마자 땅을 돌려줬다. 쫓겨나는 임차농을 보호한다며 정부가 신고센터를 운영하지만, 아는 사이라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정은 또 보완책에서 맹지, 경사지처럼 농사짓기 어려워 방치하고 있는 휴경 농지도 농지은행에 관리를 위탁하면 불법으로 보지 않겠다고 했다. 마치 농지은행이 관행으로 이뤄지던 경미한 불법들의 ‘만능키’나 ‘출구’가 된 셈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농지은행에 위탁하면 추가 비용이 나갈 수 있는 데다, 농지은행의 부족한 인력 탓에 업무 처리가 지연되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농지은행, 임대인 수수료 5%
먼저 농지 소유주의 금전적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다. 농지은행은 임대 수탁 대가로 매년 소유주에게 연간 임차료의 5%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 농업인은 올해부터 이 수수료가 면제되지만, 비농업인은 그렇지 않다. 그간 구두계약으로 농사를 맡기고 있던 도시에 사는 농지 소유주는 농지은행에 맡기는 순간 없던 부담이 생기는 셈이다. 충남 공주의 한 공인중개사는 “농지은행이 임차인을 찾아준 것도 아니고 중간에서 특별히 역할을 한 게 없는데 부동산 중개수수료보다 많이 받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땅 주인이 수수료 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실제 상속 농지를 마을 사람에게 맡기고 매년 쌀 네 포대를 임차료 격으로 받고 있던 서울 사는 최모(62)씨는 향후 임차료를 얼마로 책정할지 고민 중이다. 최씨는 “나만 손해를 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휴경 농지를 농지은행에 관리 위탁할 때도 수수료가 붙을 수 있다.
농지은행에 맡기는 행정 비용도 부담이다. 모바일로 간단히 신청할 수도 있지만, 임대인, 임차인이 각자 4~5종류의 서류를 준비해야 하니 고령자들은 적지 않은 경우 행정사에게 대행을 맡긴다. 한 행정사는 “기본적으로 농지 1필지당 50만원이고, 여기에 1필지씩 추가될 때마다 20만원 더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사당 임대 업무 인력 평균 4명”
정부는 불법 임대차를 해소하기 위한 임대 수탁시, 신청하면 모두 받아준다는 입장이다. 이에 전국 93곳의 농지은행 업무가 급증할 것이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농지 임대 업무 담당자는 지사별로 평균 4명 정도”라고 말했다. 기본조사 결과, 전국 조사 대상 농지의 27%인 약 284만필지가 불법 임대차, 무단 휴경 등 농지법 위반 의심 농지로 분류됐다. 정부는 관행적 불법 임대차를 정리하는 ‘임대차 특별 정비 기간’을 11월 15일까지 운영한다. 행정사 정모(60)씨는 “이달 중순 농지은행 여주·이천 지사에 갔더니 방문자가 많아서인지 전자 번호표 기계가 새로 생겼더라”고 했다. 정씨가 지난 6월 접수한 임대 수탁 건은 3개월 만에 절차가 마무리됐다.

◇농지값 하락에 농지연금도 ‘과부하’
한편 최근 전수조사 등을 이유로 농지값이 급락하자 농민들의 농지연금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농지연금은 농지를 맡기고 매달 연금처럼 일정액을 지급받는 방식인데, 농지값이 조금이라도 높을 때 신청해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지가 안 팔리자 급전이 필요한 농민들도 농지연금으로 눈을 돌렸다.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전국 농지연금 신청은 4988건으로 이미 작년 한 해 신청 건수(3907건)를 넘어섰다. 대기자만 3688명이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경남 밀양시의 경우 지금 신청해도 10년을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고 한다. 양준석 가톨릭대 교수는 “성난 농민을 달래기 위해서 정부가 수습책을 내놓았지만 정교한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며 “일단 정책을 질러 놓고 국민 반응에 따라 조정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男 핸드볼, 8년 만의 AG 메달 사냥 실패...44년 만에 일본에 패배
- 국민의힘 내달 3일 서울 숭례문서 ‘李정부 규탄’ 장외집회 예고
- 생활고에 둔기로 편의점 종업원 위협하며 돈 요구한 50대 검거
- 한국 복싱 골든 데이 온다 ... 장동환·김민성 나란히 AG 결승 진출
- 살 꽉 찬 태안 신진도 가을 수꽃게 조선몰 단독 최저가 공동구매
- 대학생 공교육비, 중·고생보다 745만원 적어
- 경찰, 김길성 서울 중구청장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청 압수수색
- 인천 태권도장서 화재, 1명 연기 흡입… 전기 합선 원인 추정
- 명절 고향 찾아 ‘호기심’ 범행… 50대, 차 번호 조회로 체포
- 스타십, 첫 지구 궤도 진입…스타링크 26기 실전 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