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현 한예종 무용원 교수 "누구나 자기 안의 스승을 발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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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대를 누비는 제자들을 키워낸 한국 발레 교육의 거목, 조주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그는 '자기 안의 스승'을 깨우는 철학과 한예종 시스템으로 한국 발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50대에 들어선 지금, 조 교수는 박선미(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무용수)·전민철(마린스키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최영규(네덜란드 국립 발레단 수석무용수)·채지영(보스턴 발레단 수석무용수)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제자들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학생은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경쟁하며 도전을 즐겨야 합니다. 부모님은 아이보다 앞서 달려가지 말고, 아이가 뒤돌아봤을 때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따뜻한 그림자가 되어주셔야 해요. 스승으로서 제자들이 무대 위의 일시적 환호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진정성을 품은 무용수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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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전민철 ABT 박선미의 스승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조주현 교수
워싱턴발레단 무용수에서
귀국 후 후학 양성...K발레 꽃피워
세계 무대를 누비는 제자들을 키워낸 한국 발레 교육의 거목, 조주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그는 ‘자기 안의 스승’을 깨우는 철학과 한예종 시스템으로 한국 발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조주현(54) 교수는 이화여대 무용과에 재학 중이던 20대 때 미국 워싱턴 발레단에 입단, 서구 발레의 현장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했다. 30대에는 귀국해 한예종 무용원에서 수학하는 동시에 교육자이자 안무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궁중문화축전의 단골 레퍼토리인 ‘수제천’을 비롯해 지난 8월 한예종 무용원 3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19~20세기 초 상징적 레퍼토리를 재구성에 선보인 ‘K-ARTS 콘서버토리 2026’과 갈라 무대의 ‘파키타’ 군무 재구성을 맡기도 했다.

50대에 들어선 지금, 조 교수는 박선미(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무용수)·전민철(마린스키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최영규(네덜란드 국립 발레단 수석무용수)·채지영(보스턴 발레단 수석무용수)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제자들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스승이자 선배로서 K-발레 역사의 가장 뜨거운 현장을 지켜온 그를 아르떼가 만났다.
교육과 예술, 그리고 무용수의 삶
“공연과 무대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는 지식입니다. 인간의 몸에는 물론 한계가 있죠.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을 키워주고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조주현 교수는 학생들이 스승을 수동적으로 따라 하는 방식을 경계한다. 그래서 ‘이것이 답’이라고 처음부터 틀을 정해주지 않는다. 이 움직임을 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알려주고 스스로 탐구하게 만든다. 그는 “거창한 교육론을 갖고 있진 않다”며 “기술적으로 틀린 점은 명확히 짚어주되 학생들이 동작의 원리를 이해해 자기 것으로 소화하도록 돕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제자들이 잘 배워 정형화된 클래식발레 안에서도 ‘자기 안의 스승’을 꺼내 쓰길 기대한다. 정답이 없는 무대예술, 그 속에서 제자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춤을 펼쳐 보이길 바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조주현 교수는 무용원 본과생 13명과 영재원 34명 등 학생 성향에 맞춘 지도를 이어가고 있다. “군불을 때듯 학생들 개개인에게 공을 들이다 보면, 아이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한 해석을 준비해 와요. 그럴 때마다 스승으로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제가 오히려 배우는 셈이죠.”
한예종을 거쳐 간 보석 같은 제자
제자들의 면면이 화려한데, 박선미·전민철·김기민·채지영·최영규 등 세계적 무용수가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지난 7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박선미에게 더욱 깊은 애정을 내비쳤다. “영재원 시절부터 ‘100% 특별한 아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관객과 소통하는 능력을 타고났죠. 과거 네덜란드 주니어 컴퍼니 등 해외 러브콜을 받았을 때도 더 배우고 가겠다며 한예종에 남아 깊이를 다지는 선택을 했을 만큼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제자라 더 기특했어요.”
요즘 누구보다 주목받고 있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전민철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감각과 영리함을 높이 평가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다음 단계까지 미리 읽어낼 정도예요. 스승을 엄청나게 생각하고 준비하게 만드는 무용수입니다.” 전민철 역시 조주현 교수에 대해 “선생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제가 가진 10개 중 하나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을 것 같다”고 최근 아르떼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K-발레의 요람, 한예종 영재원
한국 무용수들이 어린 나이에 해외 유학을 떠나지 않고도 세계 최고 권위의 콩쿠르를 석권하고 명문 발레단에 직행하는 배경에는 한예종 특유의 영재원 연계 시스템이 있다. 발레는 ‘젊음의 예술’인 만큼 조기 발견과 단계별 맞춤 성장이 매우 중요하다. “발레는 신체가 자라는 시기에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평생을 좌우합니다. 영재원에서 조기 발굴된 아이들이 무용원 본과로 이어지는 체계가 구축되면서 학생들의 성장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어요. 거울로 둘러싸인 연습실에서 사춘기 신체 변화와 싸우는 아이들이 서로를 보며 긍정적 자극을 받고, 함께 세포가 진화하듯 동기부여를 얻는 구조가 만들어진 거죠.”
변화는 현장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2010년대 초반 박세은(파리 오페라 발레단 에투알), 원진호(서울시발레단 시즌 무용수) 등이 학생일 당시만 해도 해외 조기 유학은 필수 코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한예종의 티칭 노하우와 교육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이제는 해외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에도 국내에 남아 수학한 뒤 해외 무대로 나아가는 흐름이 정착됐다. 남성 무용수에 대한 교육체계가 체계화되면서 남학생 수가 크게 늘어난 점도 결정적 변화다.
다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프로 무대에 진출한 제자들이 처음부터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해외 무용단에 진출한 후 코르드(군무)나 언더스터디(대역)를 맡으면서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는 아이들이 있다”며 “무대 구석에서 연습하며 상실감을 느끼는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3~4번째 캐스팅을 받고 구석에서 연습하다 보면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인가 싶어 자존감이 떨어지기 쉽죠. 하지만 그건 개인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무용단이라는 조직의 시스템 때문입니다. 낙담하지 말고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위해 스스로 솔리스트 역할을 시뮬레이션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준비된 사람만이 진짜 프로가 되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제자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세발자전거처럼 함께 타는 발레
그는 발레라는 긴 여정을 “학생과 학부모, 스승이 함께 바퀴를 이루는 세발자전거”에 비유했다. 어느 한 바퀴라도 균형을 잃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학생은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경쟁하며 도전을 즐겨야 합니다. 부모님은 아이보다 앞서 달려가지 말고, 아이가 뒤돌아봤을 때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따뜻한 그림자가 되어주셔야 해요. 스승으로서 제자들이 무대 위의 일시적 환호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진정성을 품은 무용수가 되길 바랍니다.”
정책 당국을 향한 뼈 있는 제언도 덧붙였다. 지금의 K-발레를 만든 시스템 지원에는 깊은 감사를 표하면서도, 한예종 무용원의 협소한 연습실 공간 개선과 국립 발레학교 설립 등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자들이 단순히 무용수나 지도자로만 남지 않기를 바라요. 문화행정가, 공연 기획자, 무용 전문 사진작가, 레오타드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해 한국 무용계의 저변을 다각도로 넓혀주는 주역이 되길 꿈꿉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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