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물리학자와 'AI 미술'을 이야기하다
카메라 등장에 흔들렸던 19세기 화가들처럼
생성형 AI 앞에 다시 선 오늘의 예술
기술의 위기마다 새로운 문법 만들어 왔듯
인간은 또 다른 미술의 길을 찾을까

가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도서관에서 이 글을 씁니다. 오늘 이곳에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과 과학자의 명쾌한 시선으로 근현대 서양 역사와 미술을 교차하며 시대를 통찰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이야기는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미술의 역사를 과학기술의 발전과 엮어 해석하는 독창적인 접근 덕분에 예술을 한층 더 넓고 깊은 호흡으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의 소용돌이에 들어선 19세기 유럽은 뉴턴의 수학과 광학 사진기의 발명으로 좌뇌 중심의 합리주의 시대로 급격히 전환했습니다. 파리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색과 원근법적 구도를 화폭에 정밀하게 재현하던 아카데미 화가들은 카메라의 등장 앞에서 크나큰 위기감에 휩싸였습니다. '기계가 현실을 완벽히 복제하는 마당에 회화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공포였습니다.
그러나 근대 서양미술은 기술이 안겨준 절망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치열한 '창작의 강박과 열정'으로 승화시키며 회화의 본질로 파고들었습니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화가의 주관적 내면과 빛의 찰나를 좇았고, 대상을 단순 모사하는 대신 근본적인 형태를 해체해 현대 추상화라는 거대한 반전을 이뤄냈습니다. 사과를 원, 원뿔, 원기둥이라는 입체적 기본 구조로 통찰하며 회화의 새로운 문법을 연 폴 세잔이 바로 그 상징적인 분기점이었습니다.
당시 동양이 전통의 계승과 반복을 미덕으로 삼으며 옛 문법에 머무는 동안 기술 혁명의 한복판에 있던 유럽 미술계는 살아남기 위해 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파 등 수많은 화풍을 쉼 없이 태동시켰습니다. 거센 기술의 파도 속에서 예술적 존재 이유를 증명하려 했던 그 처절한 강박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인류 예술을 진일보시킨 가장 뜨거운 마중물이었던 셈입니다.
문득 19세기 화가들이 카메라 앞에서 느꼈을 그 막막함이 오늘날 생성형 AI를 마주한 현대 예술과 우리의 불안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강연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다 번쩍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미술은 어떻게 변해갈까요? 프롬프트 몇 줄로 정교한 그림을 단숨에 완성해 내는 AI 작품들이 미술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될까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특유의 담백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섣부른 예단이나 거창한 예측 대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그의 대답에서 과학자다운 엄정한 정직성과 깊은 신뢰가 묻어났습니다. 그는 이어 차분하게 말을 덧붙였습니다. "인류가 AI라는 거대한 잠재적 위협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수많은 기술 혁명과 반역, 좌절을 극복하며 전진해 온 인간의 역사가 그래왔듯 이번에도 숱한 굴곡을 겪으면서 결국 희망적인 길을 찾아내지 않을까요."
미래를 속단하지 않는 유연하고도 낙관적인 태도는 기업을 경영하며 불확실한 시대를 고민해 온 내게도 신선하고 묵직한 영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공부 많이 한 대중지식인 정도로 알고 있던 그가 사실은 과학적 사유로 예술을 탐구하는 진지한 미술 도슨트였다는 사실 또한 반가웠습니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광학 산업 현장에서 기업을 이끌며 물리학의 매력에 깊이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물과 현상을 정밀하게 분석해 체계화하는 이과적 사고와 영혼을 흔들며 삶을 위로하는 예술적 감수성. 이 두 시선의 균형감이야말로 급변하는 세상과 인간을 입체적으로 읽어내는 가장 단단한 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체감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과학의 시선을 미술로 이동시켰고 저는 경영적 사유에서 미술로 옮긴 지점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을 품은 잔잔한 호숫가를 걷는 산책길은 또 다른 전시의 연장선입니다.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내 청춘을 '회심(回心)'해 봅니다. 마음을 돌이켜 가만히 안을 들여다본다는 그 뜻처럼 미술사를 공부하고 예술을 음미하면서 나는 젊은 날의 뜨거운 호기심과 감각을 찾았습니다.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설렘으로 가슴 뛰는 오늘, 이 호수를 걷고 있는 나는 여전히 청량한 바람에 푸르게 물든 청춘입니다.
과학의 이치를 깨닫고 미술을 향유하는 일은 반복되는 무채색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가장 따스한 에너지입니다. 지도를 켜고 미술관을 검색해 보니 굳이 먼 곳을 찾지 않아도 우리 곁에는 예술을 품은 공간들이 참 많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가까운 동네 작은 갤러리를 찾아가 보려 합니다. 운이 좋아 작가를 만나 소박한 담소를 나누든, 그저 마음에 머무는 그림 한 점 앞에서 조용한 위안을 얻든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풍요로워질 테니까요.
사람이 손으로 붓을 들었든 인공지능이 대신 그려냈든 예술은 당신과 내 일상 아주 가까운 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sebastianchoi@hanmail.net

최익준 산업정책연구원(IPS) 연구교수
부산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헬싱키 경영경제대학원(Aalto University)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칼 자이스 비전(Carl ZEISS Vision)' 한국법인 대표이사를 12년간 역임하며 시장 지배력을 혁신한 전략가형 CEO로 평가받았다. 현재 경영학 박사로서 기업 강연과 경영 자문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집필과 봉사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독자들과 진실하고 따뜻한 공감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