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흐빈더가 들려준 모차르트의 매력…꾸미지 않은 음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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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든 살을 맞은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들을 다뤘다. 그가 저절로 노래하듯 있는 그대로의 모차르트를 표현하자 새롭게 들리는 음악이 탄생했다.
2026년, 우리 앞에 선 부흐빈더도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이미 그 안에 있는 힘을 믿었다. 결국 부흐빈더의 이번 모차르트 프로젝트는 모차르트 음악 그 자체가 품은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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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여든의 루돌프 부흐빈더가 들려준
6곡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오래된 악보에서 그는 무엇을 새롭게 읽었나
올해 여든 살을 맞은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들을 다뤘다. 그가 저절로 노래하듯 있는 그대로의 모차르트를 표현하자 새롭게 들리는 음악이 탄생했다.
좋아하는 책은 한 번 읽고 끝내지 않는다. 몇 년 뒤 다시 펼쳐보면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장을 발견하고, 같은 이야기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의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책을 읽는 사람과 그 사이에 쌓인 시간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수백 년 전 쓰인 악보는 언제나 같은 음표를 품고 있지만, 그것을 다시 읽는 연주자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부흐빈더가 다시 모차르트를 선택한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모차르트를 꾸준히 연주해온 그는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9월 17일과 20일, 피아노 협주곡 9번과 20번, 21번, 22번, 23번, 27번까지 여섯 곡을 연주했다. 이미 수없이 연주했고, 수없이 악보를 들여다봤을 작품들이다.

그러나 오래 연주했다고 해서 음악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작품일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젊은 시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순간 덜 중요해지기도 하고, 예전에는 강하게 말하고 싶었던 곳에서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게 되기도 한다. 또 미처 지나쳤던 짧은 화음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을 수도 있다. 이번 이틀간의 공연은 그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오랜 세월 모차르트와 함께한 한 피아니스트는 지금 이 오래된 악보에서 무엇을 새롭게 읽고 있을까.
끝에서 시작한 모차르트
첫날 첫 곡은 피아노 협주곡 27번이었다. 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협주곡이다.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은 저절로 특별한 의미를 불러온다. 생의 끝을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나 작별의 정서를 강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부흐빈더는 이 작품을 공연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에 놓았다. 그리고 연주에서도 ‘마지막 협주곡’이라는 사실을 특별히 의식하게 만들지 않았다.
느린 악장의 고요함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끌어가지 않았고, 아름다운 선율도 오래 붙잡아두지 않았다. 어떤 순간을 특별히 부각하기보다 음악이 정해진 흐름을 따라가도록 뒀다. 마지막이라는 정보보다 지금 들리는 음악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연주였다.

이어진 23번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부흐빈더의 태도가 드러났다. 밝고 경쾌한 바깥 악장 사이에 놓인 2악장은 어두운 음악이다. 모차르트 협주곡 가운데서도 유난히 불안하고 낯선 분위기를 지닌 악장이다. 부흐빈더는 이 어둠을 거대한 비극으로 크게 키우지 않았다. 불안은 불안한 채로 뒀고, 앞뒤 악장의 대비되는 밝음 역시 화려하게 과시하지 않았다. 이미 강한 대비가 있는 음악을 굳이 더 강하게 만들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21번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선율이 등장했다. 특히 2악장은 너무나 유명해서 연주자가 감정을 덧붙이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쉬운 음악이다. 부흐빈더는 여기서도 선율을 과도하게 노래하지 않았다. 시간을 늘려 감동을 강조하기보다 음악 전체의 흐름 속에 선율을 놓았다. 익숙한 음악을 새롭게 꾸미기보다 이미 그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믿었다.
둘째 날에는 22번과 20번, 9번이 이어졌다. 22번에서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활발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모차르트 특유의 유머와 재치를 드러냈다. 특히 2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이 한층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여러 악기의 선율이 차례로 떠오르고 사라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들리면서 피아노 협주곡이라기보다 한 편의 오페라나 교향곡을 듣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20번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D단조 협주곡은 여섯 작품 가운데 가장 강한 긴장과 드라마를 품고 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부딪히고 불안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부흐빈더는 이 음악을 낭만적인 비장함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강한 부분을 더 크게 만들기보다 악보에 이미 존재하는 긴장을 다시 믿었다. 특히 2악장에서는 그 담담한 연주 속에서도 유난히 드라마틱한 순간이 만들어졌다. 감정을 크게 끌어올리지 않았는데도 음악 안의 긴장과 움직임이 살아났다. 오히려 애써 드라마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장면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부흐빈더가 연주한 9번에선 훗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아노 협주곡 여섯 곡을 나란히 두고 듣고 나니 더욱 그랬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자유롭게 말을 주고받고, 진지한 흐름 속에 갑자기 유머가 끼어든다. 이후의 모차르트에서 만나게 될 여러 모습이 이미 이 작품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서도 부흐빈더의 연주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음악 안에 뒀고, 아름다운 선율을 오래 붙잡지 않았으며, 강한 대비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았다.
여섯 작품 내내 여든의 부흐빈더는 템포를 절대 늦추지 않았다. 고령의 연주자에게는 노화나 체력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주 속도가 느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부흐빈더의 모차르트는 여전히 빠르고 또렷했다. 이것 역시 음악을 대하는 그의 거리감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자신의 감정으로 모차르트를 바라보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이미 완성된 작품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느끼는 감동이나 나이에서 비롯된 감정을 이유로 음악의 흐름을 늦출 필요도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속도를 끝까지 지켜가는 것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정한 템포를 포기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죽음에 최대한 가까운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덧붙여 부흐빈더의 연주가 더욱 절제돼 들린 것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가 부흐빈더와 다른 방식으로 모차르트 음악에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오케스트라는 강약의 차이와 악상의 변화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냈고, 밝음과 어둠, 긴장과 이완의 대비도 뚜렷하게 표현했다. 오케스트라가 적극적으로 악상을 만들어낼수록 부흐빈더가 얼마나 담담하고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는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 연주
결국 부흐빈더는 모차르트를 더 특별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오래 붙잡지 않았으며, 명암의 대비를 필요 이상으로 키우지도 않았다. 피아노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려 하지 않았고, 여든의 나이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덜어낸 자리에서 오히려 익숙했던 음악이 새롭게 들렸다.
사실 잘 연주된 모차르트는 그 자체로 이미 드라마틱하고, 또 저절로 노래하기 마련이다. 굳이 무언가를 연출하지 않아도, 애써 감정을 더하지 않아도 음악 안에 있는 드라마와 노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때 연주자의 역할은 음악을 억지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음악이 흘러갈 길을 내어주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6년, 우리 앞에 선 부흐빈더도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이미 그 안에 있는 힘을 믿었다. 여든의 부흐빈더가 모차르트를 다시 읽는 방법이었다. 담담하게 연주해도 음악은 충분히 깊었고,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선율과 드라마는 살아났다. 오히려 연주자가 한 걸음 물러서자 음악 안에 있던 것들이 더 분명하게 들리기도 했다. 익숙한 선율도, 빠르게 흘러가는 악구도, 조용히 이어지는 순간도 저마다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부흐빈더의 이번 모차르트 프로젝트는 모차르트 음악 그 자체가 품은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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